20대 초반,여행은 삶의일탈이었다.그저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로 즐거웠다. 그중 필리핀에서의경험은평생잊을 수 없는추억이되었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사람들의 순수한 미소, 그 뒤 숨겨진 각양각색의 문화가 새롭게 다가왔다.
가장 기억 남는 건'숭고의 아름다움'을경험한 일이다.그곳은 <지옥의 묵시록>의 촬영지로 유명했는데, 사진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큰규모였다. 배를 타고 한참을 갔을까. 신비롭고도 거대한 그 실체가 눈앞에 나타났다.하늘에 맞닿은 절벽사이를 통과하는 순간, 온몸을타고 흐르는 전율이밀려왔다.자연이 주는 공포와아름다움에 몸이 떨렸다. 그날 나는인간이모방할 수 없는경지의아름다움을 보았다. 자연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나의 육체, 그 경이로움과 찬란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삼원스케치북, 스텐들러, 신한물감)
나는 달음산휴양림으로 향했다. 휴양림은 산 꼭대기에위치하여, 비포장 길을 10여 분간올라야 한다. 절벽을 눈앞에 두고 아슬아슬 달리니,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넓은 잔디 위에 공을 차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사방으로 퍼지니, 천국에 온 듯 따스함이 밀려왔다.
잔디 끝으로조그마한 2층집들이 즐비하고, 그 아래로 좁은 산책로가 보였다. 빼곡히 심어진 숲을 본 것이 얼마만인가. 저 멀리 산등성이 아래로 잔잔한 바다가 보이니, 그 풍치는 명작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산과 바다를발아래두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나는 자연 속에서 걱정과 시름을 내려놓았다. 산산이 부는 바람에 나의 근심도 날려버렸다.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과 삶의 무게를 잠시 잊고있었다. 온전히 자연 속에 녹아들진 못했지만, 일탈의 해방감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누구나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힘든 지점이 있다. 나에게 가장 걸림돌이 되는 부분은 자연이다.아이들은 자연을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얼마 전 한 학생이 "수필에는 왜 기행문이 많을까.돌이 다 같은 돌이지 다를 수 있나. 10일 동안 해수욕장에 머물며 매일 딴생각을 할 수 있나'라는 질문을 쏟아냈다.
나는 '수필가는 일상에서 소재를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숲과바다를 가까이 한 우리 선조에게 자연은좋은 소재가 되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자연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으니,하루하루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때론 같은 사물을 어떻게 보냐에 따라 달리보일 것이다'라고 설명해 주었다.자연에 대한 감흥을 말로 설명하자니,마음 한 편에 안타까움이느껴졌다.
세대마다자연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다수의아이들은 자연과 접할 기회가 적다. 자연 속에서 느끼고 배우는 경험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들은인공 수영장, 인공 산책로에서 놀며, 사람이 만든 놀잇감에 즐거움을찾는다.학교에서도 학생들의안전을위해 과학관, 에버랜드, 롯데월드로 현장학습을 떠난다. 안전함과 편리함을 추구하게 되면서,자연을 접할 기회가줄어든 것이다.
자연과 벗하며 놀자
무위자연(無爲自然). 물아일체(物我一體)라는 말은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삶을 대표하는 말이다. 자연 속에 녹아들어, 나와 세상이 하나임을 깨닫자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 속에 티끌로 존재하는 걸 알고, 매 순간 겸손함을 잃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자연의 위대함을 깨우치는 순간, 마음의 갈등은 사라지고 온전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