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감정은 공포다. 양손 가득 무거운 짐을 지고 타박타박 길을 걷던 어머니, 그 뒤로 코흘리개 동생의 손을 잡고 종종걸음 치던 어린 소녀. 그들은 담벼락 아래 즐비하게 놓여 있는 단칸방 골목으로 들어선다. 얼마나 지났을까. 자물쇠를 매만지던 어머니 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스친다. 하얀색 보자기로 어머니의 얼굴을 휘감던 사내는 푸른 식칼을 휘두르며 달아난다. 놀란 소년은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소녀는 통곡하는 어린 소년을 끌어안는다.
나의 초년은 아픔과 슬픔으로 얼룩져 있다. 평생 한 번도 겪지못할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겪었고, 대상관계에 두려움을 느끼며 위축된 삶을 살았다. 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으로 무거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 철학과 진학후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찾으려 노력했지만소용없었다.대학 졸업이후 심리학에 전념했고, 성격장애를 주제로학위도 받았다. 그러나 내적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고,안갯속을 헤매는일도멈추지않았다.
어느 순간대학에서 철학이사라졌다. 지도 교수님의 퇴직이 결정되자, 강사로서의 내운명도 막을 내렸다. 이제 글쓰기 교육에 전념할까 했는데, 수능 준비로 바쁜 아이들은 하나 둘 글쓰기를 포기했다. 국어 교육으로 바꿔보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나는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그뒤아이들과 이별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도 많아졌다.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작가가 쓴 <명리심리학>은 명리학에 대한 호기심으로접하게된책이다. 내담자의 사주팔자를 참고하여심리 상담을 진행한다는그녀의 글을 보니무너진 학구열이 다시타올랐다. 평소 가졌던몇 가지 의문점에답을 찾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심리학은부모의 양육 태도를 우선적으로본다.그러나 똑같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라도 성장 과정을 다르게 겪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외부적 요인(대상관계와 트라우마)이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기질에 따라 상황을 다르게 수용하는 부분도 크다.<명리심리학>은 사주팔자가 기질 연구에 도움이 될 거라는확신을 주었다.
자신의 기질과 잠재력을 아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그럼에도 모른 채 지나치는 경우가 더많다. 진로 상담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의 추천,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 꿈을정하는 일이허다하다. 간혹 성인이 된 후새로운 세계로 정착하는 경우도있는데,그것은본래의 자기를 회복하는 일이니 다행이다. 반면 내적 욕망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모습에만족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이에서양의MBTI보다동양의 사주 명리학이기질 연구에 더 적합하다고 느낀다. 자신의 욕망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궁금하다면 명리심리학에서 말하는 8가지 카드를 활용해보는 것도 좋다.
문득 소문난 명리학자가 20년 전 내게 한 말이 떠오른다. 임용고시 합격운이 있겠냐는 질문에 '큰 산을 몇 번 넘어서야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라는다소추상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당시합격운이 없다라는 말로 여겼는데, 20년이 지난 후에야 그 뜻을 알라차렸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분의 말이 대체로현실 속에 구현됐다는 점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돈이 생기면 거제도에 땅을 사두라했고,얼마 안 있어 생각지도 못한 친척이 운명을 달리할 거란말도 건넸다. 며칠이 지났을까. 외사촌 오빠가심장마비로 돌아갔고, 수년 후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 건설계획이 발표됐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던 스승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사람의 운명은 늘 변한다. 그러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그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오직 자신만이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알고 정진할 때내 삶도 변할 것이 분명하다. 나는 삶의 무게를 덜어 내는 일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심리학과 명리학의 통합을 목표로 나만의 형식을 만드는 중이다. 동시에 학생들의 글쓰기 지도에 정성을 다하고, 각양각색의 식물도 기르며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고 있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자 사명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 [발행했던 두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