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으른 사람입니다

by 구덕골 이선생

명리학자 세 분은 나의 사주 구성을 '게으름'으로 표현했다. 각각 "안 움직인다", "생각이 많네", "답답한 게 없다"라는 표현을 썼지만, 결국 '게으르다'는 충고를 돌려 한 말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 말에 의아해한다. "니가? 니가 게으르면 나는?"이라고 반문을 지만, 나는 대체로 그 말에 수긍한다.


그들이 말하는 게으름은 '씻지 않는다. 청소를 안 한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행의 기준(목화토금수)으로 본다면 나를 생해주는 기운이 왕성해서, 현실에 안주하는 기운이 강하다는 의미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위급한 상황이 생길 때 언제든 달려와 줄 엄마가 넷이라는 말인데, 실제로도 막강한 어머니가 곁에 계신다.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오래 생각하다, 행하지 못한 채 끝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하면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도 실천하지 못해 그 끝을 보기 어렵고, 재성(재물)을 만들어낼 능력도 부족하다. 내 사주는 인성(공부, 문서)과 비겁(동료, 경쟁자)만이 가득하다. 재성(재물)이 하나 없는 무재 사주로, 옛날로 치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내가 이 얘기를 하면 또 묻는다. 니가? 니가 돈이 없다고? 남들처럼 대기업, 공기업에 그럴싸한 직업을 가진 적은 없지만, 남들보다 적게 벌었다 말하기도 어렵다. 물론 20대 학생으로 살았고, 온갖 자격증을 따느라 돈 모을 겨를도 없었다. 30대 역시 그럴듯한 회사에 입사할 기대조차 없으니, 강사로서 발품 파는 정도로 그쳤다. 그저 내 수중에 남겨진 많은 자격증이 내 자존심을 보존케 했다. 30대 중반 결혼과 출산이 이어지면서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10년간 슈퍼맘으로 살면서 평생 써야 할 에너지를 한 번에 토해냈다.


[ 알기 쉽게 배우는 정통 명리학 개론, 김형근, 원각전통문화연구원 ]


그렇다면 나의 핵심 코드인 게으름을 어떻게 극복한 걸까. 그것은 재성(재복)ㆍ식상(노동) 대운과 인연(남편, 아들)이다. 조열한 내 사주에 강물이 범남하면서 촉촉한 땅이 만들어졌고, 내게 없는 에너지가 대운으로 흘러들었다. 그동안 비축해 둔 자격증이 내 가치를 높여주었으니, 가난한 예술가의 이름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재성을 좇으면 인성이 상한다'는 명리학 이론이 맞아떨어졌다. 내 그릇은 재성(돈)을 좇기에는 턱없이 작고 소박하다. 사람과 생명을 살리는 데 흥미가 있지, 수치 계산에 눈이 어둡다. 확실하지 않으면 시행하지 못하는 강박에 가까운 제어 장치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런 내가 30대 일에 치여 살았으니, 심신이 무너져 내린 건 예고된 일이 아닐까. 번아웃과 우울함이 내 마음을 붙잡았기에,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깊은 이치를 깨달았다.


40대 들어 모든 걸 내려놓고, 내 삶을 돌보는 중이다. 삶의 균형을 인생 과제로 삼고 있으니 행복이 따로 없다. 명리학자들은 "60 넘어서도 제자가 있겠는데" 혹은 "60 이후에도 돈을 벌겠어"라는 말로 나를 위로한다. 그것은 '반드시'라기보다 '가능성'이다. 가만히 앉아 나태함에 빠진다면 뜬구름으로 남을 게 분명하다. 못다 한 꿈을 이룰 거라는 기대가 현실이 될 때까지 성실히 살아야 한다.


인생 바코드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내 선택에 있다. 가만히 앉아 헛된 꿈으로 날려 버릴지, 부지런히 실천해서 현실로 이룰지. 분명 변화하는 운명의 흐림을 읽고, 능동적으로 움직일 때 보다 나은 삶을 수 있다. 그게 명리학을 공부하는 가장 큰 이유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누군가와 소통한다. 균형 잡힌 나의 삶을 위하여. [발행했던 두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응원남겨주신 분>

청년 클레어 님, 야인 한유화 님, 언더독 님, 꿈꾸는 소년 님, AI러 이채문 님, 려명 씨 님, 봄날 님, 김요섭 님, 셀코북 님, 진인사대천명 님, 초들 김경호님


<댓글 내용>

* 려명 씨: 어느 때보다 인간과 기계, 기술의 경계가 사라지는 지금에 오히려 고전과 세상 이치에 눈길이 가는 것이 참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늘 응원합니다~

* 구덕골 이선생: 저도 인간과 기계, 기술의 경계가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최근 들어 '옛말이 틀린 게 없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명리학'을 제대로 알리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좋은 말 남겨주시니, 큰 힘이 됩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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