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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덕골 이선생 May 25. 2024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

명리학자 세 분은  나의 사주 구성을 '게으름'으로 표현했다. 각각 "안 움직인다", "생각이 많네", "답답한 게 없다"라는 표현을 썼지만, 결국 '게으르다'는 충고를 돌려  말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 말에 의아해한다. "니가? 니가 게으르면 나는?"이라고 반문을 지만, 나는 대체로  말에 수긍다.


그들이 말하는 게으름은 '씻지 않는다. 청소를 안 한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행의 기준(목화토금수)으로 본다면 나를 생해주는 기운이 왕성해서, 현실에 안주하는 기운이 강하다는 의미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위급한 상황이 생길 때 언제든 달려와 줄 엄마가 넷이라말인데, 실제로도 막강한 어머니가 곁에 계신다.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오래 생각하다, 행하지 못한 채 끝나경우가 다. 쉽게 말하면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도 실천하지 못해 그 끝을 보기 어렵고, 재성(재물)을 만들어낼 능력도 부족하다. 내 사주는 인성(공부, 문서)과 비겁(동료, 경쟁자)만이 가득하다. 재성(재물)이 하나  없는 무재 사주로, 옛날로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내가 이 얘기를 하면 또 묻는다. 니가? 니가 돈이 없다고? 남들처럼 대기업, 공기업에 그럴싸한 직업을 가진 적은 없지만, 남들보다 적게 벌었다 말하기도 어렵다. 물론 20대 생으로 살았고, 온갖 자격증을 따느라 돈 모을 겨를도 없었다. 30대 역시 그럴듯한 회사에 입사할 기대조차 없으니, 강사로서 발품  정도로 그쳤다. 그저 내 수중에 남겨진 많은 자격증이 내 자존심을 보존케 했다. 30대 중반 결혼과 출산이 이어지면서 삶에 변화가 일어났다. 10년간 슈퍼맘으로 살면서 돈과 문서, 빚을 얻었.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평생 써야 할 에너지를 한 번에 토해냈다.


[ 알기 쉽게 배우는 정통 명리학 개론, 김형근, 원각전통문화연구원 ]


그렇다면 나의 핵심 코드인 게으름을 어떻게 극복한 걸까. 그것은 재성(재복) 대운 인연(남편, 아들)이다. 조열한 내 사주에 강물이 범남하면서 촉촉한 땅이 만들어졌고, 내게 없는 에너지가 대운으로 흘러들었다. 그동안 비축해 둔 자격증이 내 가치를 높여주었으니, 가난한 예술가의 이름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 그릇은 재성(돈)을 좇기에는 턱없이 고 소박다. 사람과 생명을 살리는 흥미가 있지, 수치 계산에 눈이 어둡다. 확실하지 않으면 시행하지 못하는 강박에 가까운 제어 장치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런 내가 30대 일에 치여 살았으니, 심신이 무너져 내린 건 예고된 일이 아닐까. 번아웃과 우울함이 내 마음을 붙잡았기에,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깊은 이치를 깨닫게 되었.


40대 들어 모든 걸 내려놓고, 내 삶을 보는 중이다. 삶의 균형을 인생 과제로 삼고 있으니 행복이 따로 없다. 명리학자들은 "60 넘어서도 제자가 있겠는데" 혹은  "60 이후에도 돈을 벌겠어"라는 말로 나를 위로한다. 그것은 '반드시'라기보다 '가능성'이다. 가만히 앉아 나태함에 빠진다면 뜬구름으로 남을 게 분명하다. 못다 한 꿈을 이룰 라는 기대가 현실이 될 때까지 성실히 살아야 한다.


인생 바코드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내 선택에 있다. 가만히 앉아 헛된 꿈으로 날려 버릴지, 부지런히 실천해서 현실로 이룰지. 분명 변화하는 운명의 흐림을 읽고, 능동적으로 움직일 때 보다 나은 삶을  수 있다. 그게 명리학을 공부하는 가장 큰 이유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누군가와 소통한다. 균형 잡힌 나의 삶을 위하여. [발행했던 두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응원남겨주신 분>

청년 클레어 님, 야인 한유화 님, 언더독 님, 꿈꾸는 소년 님, AI러 이채문 님, 려명 씨 님, 봄날 님, 김요섭 님, 셀코북 님, 진인사대천명 님, 초들 김경호님


<댓글 내용>

* 려명 씨: 어느 때보다 인간과 기계, 기술의 경계가 사라지는 지금에 오히려 고전과 세상 이치에 눈길이 가는 것이 참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늘 응원합니다~

* 구덕골 이선생: 저도 인간과 기계, 기술의 경계가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최근 들어 '옛말이 틀린 게 없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명리학'을 제대로 알리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좋은 말 남겨주시니, 큰 힘이 됩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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