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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이 Oct 01. 2023

|차가운 상실

 나의 이별은 너무 차가웠다. 겨울 같은 추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닿으면 소름이 끼치는 금속 같은 것. 아무런 감각도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서늘함. 그런 면에서 겨울 같은 추위는 따듯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겨울 하면 차가운 바람과 눈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의 온기와 이불속 따듯함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하니까. 그리고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기대한다. 추운 겨울 뒤에는 따듯한 봄이 올 거라는 걸. 그 기대가 없었다면 겨울의 낭만 중 절반은 얼어 죽었을 것이다.


 어떤 이별은 분노하고 어떤 이별은 우울하고 어떤 이별은 공허하듯, 그 이면에는 언제나 아픔이 동반하고 있다. 나는 이별의 아픔을 느끼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의 이별은 너무 차가웠으니까. 너무 차가워서, 아픔을 느껴야 할 마음까지 마비됐다. 그때 나를 채운 건 작은 눈물조차 흐르지 못하게 마음을 꽝꽝 얼려버린 냉기뿐이었다. 돌이켜보면 그게 싫지는 않았다. 만약 그때, 내 마음이 얼어붙지 않았다면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폭포에 마음이 잠겨 익사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중한 이의 이별에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까닭. 담담하게만 보였던 표정은 곧 찾아올 폭풍을 기리는 고요였다. 그 서늘한 냉기가 가고 내게도 겨울이 왔을 때, 나는 겨울 눈밭의 포근함에 파묻혀 마음껏 울분했다. 마음을 굳게 닫아버렸던 쇠 냄새를 토해내기 위해 울고 또 울면서 몇 번이고 눈물로 마음을 게워냈다. 그렇게 남은 잔해까지 모두 내보냈어도 나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이 눈물은 이제야 네가 없다는 것을 실감해 버린 친구의 절규였으니까.


 아무리 울어도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더 소리쳐야 했다.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떠나간 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만 했다. 이 눈물이 천상의 너에게 닿을 수만 있다면 나의 색채, 나의 소리, 나의 숨. 그 모든 것을 내어주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현실뿐이었다. 네가 없다는 것. 그리고-

 네가 없다는 것.


 현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차라리 잊고 싶었다. 정말 잊으려 했지만 존재의 기억은 그렇게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원래 존재라는 건 잊으려 할수록 머릿속에 더 강하게 박혀버려서, 잊어야 했다면 처음부터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 거다. 잊지 않음으로 잊을 수 있는 게 존재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의 삶으로 너를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잊을 수 없다면 너로 가득 채울 거라고, 그렇게 내 모든 삶을 너에게 주겠노라고.


 이건 단순한 이별이 아닌,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꿈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꿈에는 언제나 네가 있다. 진짜 현실은 될 수 없지만 나에게만큼은 현실적인 세상. 몽환적이다 못해 멍해진 세상. 너와 나의 삶과 꿈으로 가득 채워진 이곳만이 내가 평생토록 가져갈 온전한 감정이다.


 차가운 상실


 나의 정서는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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