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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낱 Sep 29. 2022

모험 용사의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저, 분실 신고된 카드인데요.”

 “네? 아! 죄송합니다. 다른 카드 드릴게요.”

 옆에서 친구가 깔깔거리며 웃지 않았다면 카페 직원의 의심 어린 눈빛을 피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함께하면 유쾌한 우리는 자주 여행을 떠났다. 여기서 우리는 나와 내 딸, 딸의 친구와 그녀의 엄마를 말한다. 우리는 딸아이가 네 살 때 ‘맘 카페’에서 만나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첫 여행이었던 후쿠오카는 감동적이었고 싱가포르에서는 손색없는 여행 메이트로 더욱 무르익었다. 이제 아이들도 많이 컸으니 매년 어디론가 훌쩍 떠나자며 약속했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사람 일은 야속하게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팬데믹 상황은 우리의 발을 하염없이 붙잡고만 있었다. 안전제일주의자인 두 엄마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조금 더 지켜보자, 아직은 무섭다며 언젠가 만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이번 여름 우리는 서울에서 만났다. 비록 해외여행은 아니지만 1박 2일 동안 해외여행보다 더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언어의 장벽도 없었고 길을 못 찾을 일도 없었다. 친구네는 부산에서 KTX로, 우리는 군산에서 고속버스로 이동하여 서울 삼성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삼성역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기 때문이다. 나와 친구는 파리든 밀라노든 전 세계 그 어디를 가든(그런 날이 올까?) 그곳의 카페에 앉아 이야기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는 게 제일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삼성역에서 움직일 일이 없다는 말이다.      

 

 호텔에서 잠깐 쉬다가 본격적으로 코엑스를 구경하러 나섰다.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다니고 싶어 했다. 카카오 뱅크에 용돈을 적당히 넣어주고 따로 행동하도록 허락해주었다. 이렇게나 다 커버렸다니. 우리는 감격스러워하면서 우리의 자유시간을 만끽했다. 처음 이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친구가 가고 싶었던 곳은 단 하나였다. ‘카멜 커피’. 나는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고 카멜 커피가 뭔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러자 했다. MBTI 중 P인 우리는 그 외 다른 계획은 하나도 세우지 않았다. 그때그때 상황을 봐서 움직이자는 게 우리의 여행 스타일. 당연히 특별한 목적 없이 코엑스를 둘러보다가 적당한 밥집을 찾아 저녁을 먹자는 게 전부였다. 돌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별마당도서관’을 발견했고 지방 사람답게(아! 친구는 고향이 서울이구나) TV에서 본 곳이라며 반가워했다. 딱 거기까지다. 반가워는 했지만 구석구석 찾아 들어가 구경할 생각은 둘 다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앉을 곳이 필요했을 뿐. 조금 걷다가 적당히 요즘 트렌드에 충실한 레스토랑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기 10분 전이었기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 입장했다. 아이들에게도 위치를 설명해 주었더니 야무지게 잘 찾아왔다. 거기서 건강에 좋아 보이는 것들과 몸에 나쁠 것 같지만 맛있는 것들을 먹으며 오랜만에 만나 그동안 못한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나누며 한껏 흥분했다.     

 

 “오늘 밥은 내가 살게.”

 나에게는 예전부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면 ‘쏘는’ 습관이 있다. 의기양양하게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 앞에 서서 지갑을 뒤지는데 내가 주로 쓰는 카드가 사라졌다. 오 마이 갓!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내 뒤로 계산하려는 사람들이 밀려 일단은 다른 카드로 계산하고 나와 다시 가방 안을 샅샅이 뒤졌다. 없다! 지갑은 있는데 카드만 없다니. 일단은 급한 마음에 카드 분실 신고를 하고 정지시켰다. ‘그 카드는 거기서만 썼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스토랑에 들어가기 전에 예쁜 액세서리들을 파는 가게에 들렀다. 거기서 아끼는 인형에 꽂을 반짝이는 헤어핀 두 개를 구입했다. “거기야! 거기다 놔두고 왔나 봐!” 친구와 나는 서둘러 그 가게를 더듬더듬 찾아갔다. 역시나 내 카드는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쉽게 가면 우리가 아니지.” 우리는 그 자리에서 배가 찢어져라 웃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유쾌 발랄하게 숙소로 돌아왔다. 그곳에서는 그저 가는 시간이 아깝고 아쉬울 뿐이었다. 잠깐의 만남을 위해 기꺼이 시간과 돈을 들여 만나는 사이. 어떻게든 시간을 맞추고 맞춰, 쪼개고 쪼개어 만나는 사이인 우리 스스로가 대견하고 예뻤다. 일방적인 관계는 금방 지쳐버린다. 짧더라도 함께 하는 시간을 간절히 원하고 그런 시간을 자주 가지려고 서로가 노력하며 이어 나가야 오래오래 유지할 수 있다. 알아온 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깊이 있는 만남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두루마리 휴지처럼 밤을 끝도 없이 풀어내고 싶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다음 날의 일정이 있었고 우리에게는 저질 체력이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은 자기들의 계획대로 롯데월드로 떠났다. 이제 보호자인 엄마들이 옆에 붙어서 비서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자기들끼리 알아서 지하철을 타고 잘 찾아가 무사히 입장하고 로커에 가방까지 맡겼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 정말 다 컸구나’ 또 한 번 느끼며 조금 더 여유 부린 후에 우리는 체크아웃을 했다. 그리고는 우리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카멜 커피’로 향했다. 숙소 근처에 있는 백화점의 1층에 있는 카페였다. 원래는 ‘블루보틀’이 있던 자리라고 했다. 나는 그 유명한 ‘블루보틀’도 아직 못 가봤는데. 서울의 트렌드의 변화는 역시 광속이다.     

 

 커피를 사기 위해 당당하게 카드를 내밀었다. 내가 전날 분실 신고를 한 카드인지도 모르고 습관적으로 늘 쓰던 카드를 또 내민 것이다. 분실 신고한 카드를 따로 분리하지 않고 지갑 속 자기 자리에 그대로 넣어두었기 때문이다. 어제 분실 신고를 하며 그 난리를 쳤던 사건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친구는 또 빵빵 터지며 웃어주었다. 만약 친구가 웃지 않았다면 내가 신고당할 뻔했다는 슬픈 이야기다. 아직도 그 직원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잊히지 않는다. 우리는 삼성동 테헤란로(라고 했다)에 앉아 주말 오전의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을 했다. 이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그렇게 많은 해프닝을 겪었나 싶었다. 그 값어치는 충분했다. 커피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러우면서도 깊이가 있었고 우리의 수다는 지치지 않았다. 자리 잡기도 힘든 곳인데 ‘한 잔 더?’를 외치려다 우리는 그냥 일어났다. 슬슬 기차 시간에 맞춰 아이들과 합류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의 여행은 카드 분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뻔한 일에서 끝나지 않았다. 롯데 타워 코인 로커에 맡겨 둔 짐을 찾으려고 하자 하필 그날 그 락커 시스템에 오류가 나서 직원과 통화하며 한참을 동동거리다 짐을 찾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호남선 터미널에서는 딸아이가 화장실에 핸드폰을 두고 나왔다. 다행히도 곧 어느 예쁜 귀인을 만나 무사히 찾을 수 있었다.      

 

 1박 2일의 짧은 국내 여행이 해외여행보다 수월하다고 했던 말은 취소해야겠다. 철저한 계획이라는 말은 남의 나라 말인 줄 알고 있는 네 명이 하는 여행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게 묘미다. 우리는 여행을 가서 조식을 먹은 기억이 없다. 숙박비에 포함되어 있는 조식 정도는 쿨하게 잠과 바꾸는 네 명이다. 모든 것을 자신의 통제 안에 두고 컨트롤하려는 꼼꼼함은 없다. 어떤 돌발 상황이 와도 특유의 임기응변으로 고비고비를 넘기는 우리의 여행은 다소 불안하고 위태롭지만 지루할 시간이 없다. 우리에게 여행은 어드벤처의 시작이다. 이 어드벤처의 해프닝들은 일상이 다소 무료할 때 한 번씩 꺼내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려 먹는 깔깔 웃음 사탕이다. 친구, 우리 또 모험 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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