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멘솔로숀 Sep 06. 2019

마음을 놓으면 생겨

난임의 마음(2)

 나는 대학교 합격자 발표도 정해진 딱 그 시간에 들어가서 확인해야 하는 사람이다. 10분 지나서 본다고 합격이 불합격으로 바뀌고 하는 게 아닐 텐데도. 그냥 성격이 그렇다. 그런데 벌써 네 번째다. 단호박 같은 임신테스트기 한 줄.


나는 매 달 임신테스트기를 샀고 생리일 아침마다 칼같이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결혼하던 해에 남편과 산전검사를 했다. 정확히는 병원에서 남편은 검사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 나만 초음파 검사와 채혈을 했다. 풍진 항체가 없어 풍진 주사를 맞았다. 검사 결과 자궁 내 1cm 정도의 작은 근종이 관찰되지만 위치나 크기로 봤을 때 임신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고, 배란일을 맞춰서 임신 시도를 하면 금방 아이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소소한 성취가 성공 자신감을 높여준다고 했던가,

하지만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꾸준히 성공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벌써 네 번의 기회가 차감됐다.

대학 재수보다 임신 재수의 마음 고생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친구 1이 말했다.

- 의외로 배란일 계산을 잘못하고 있는 거 아니야? 배란 테스트기를 사보는 건 어때? 나는 그렇게 하니까 바로 되던데.


솔루션을 사랑하는 나는 그 주에 바로 배란테스트기를 구입했다. 비용을 들여 정확성을 높여보았고 결과는, 3만 원만큼 더 좌절스러웠다.


친구 2가 말했다.

- 임신은 입력한다고 그 달에 출력되고 그런 게 아니야, 나도 임신되기까지 6개월 정도는 걸렸는걸.


입력과 출력이 비례하지 않는다니 무섭다. 노력해도 안될 수도 있는 일. 근데 나는 임신 시도한 지 6개월이 지난 것 같다.


친구 3이 말했다.

- 나도 몇 번 그렇게 하다가, 임신 때문에 마음 졸이는 거 싫어서. 안되면 둘이 재밌게 살지 뭐! 하고 남편이랑 여행 갔거든. 근데 거기서 생겼어.


가장 많은 케이스였다. 실제로 여행 지명을 딴 태명을 가진 조카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하와이에서 생긴 로하, 제주도에서 생긴 올레 같은. 그들의 비결은 무심함이었다. 마음을 놓는 것.


맞벌이 부부였던 우리는, 바쁜 일정 속에 틈틈이 휴가를 맞추어 여행을 떠났다. '보라카이에서 생기면 태명은 보라로 해야 하나, 카이로 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제주도의 올레도, 삿뽀로의 뽀로도 생기지 않았다. 실패의 요인이라면, 나는 목적의식이 분명했다는 것. 무심한 상태가 되기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난 ‘안되면 둘이 살지 뭐!’가 안 되는 사람이다. 마음.. 어떻게 놓는 거지?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던 친구들은 모두 '의외로 임신이 쉽지 않았다' 고 말했다. 그렇게 함께 엄마 예비합격자에 이름을 올려두고 기다리는 시간이 있는 것 같다고. 임신 시도를 한 달에는 술도, MSG도 좀 덜 먹고, 감기 기운이 있어도 약 대신 유자차를 먹었다. 그렇게 1년쯤 지나니 대기자 명단에 합격 공지가 뜨기 시작했다. 처음엔 모두에게 좋은 시그널이었다. 하지만 그 애들 모두가 출산 병원에 등록하는 동안에도 나는 이렇다 할 소식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대학도 예비합격으로 뺑뺑이를 돌았다. 편입도 일단은 불합격이어서 재수를 준비해야 하나, 다니던 학교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T.O. 가 나서 붙었다는 식의 합격 연락을 받았다.


- 뭐든 한 번에 되는 일이 없어!


뭔가 잘 안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 일상의 억울함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이전 01화 난임의 통점은 마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