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의 마음(3)
남편과 나는 급여에 통신요금이
포함되어 있는 직장인이다.
나는 홍보 대행사 5년 차, '모바일'을 대상으로 하는 홍보팀에서 이제 막 팀장 직함을 달았다. TV광고가 시즌제 ‘미니시리즈’ 라면 디지털 매체의 홍보란 ‘일일연속극’과 같다. 콘텐츠의 제작과 수정, 기획이 모두 데일리 업무다. 무엇보다 기업의 디지털 채널이란 소비자에게 24시간 열려있는 공간이라, 직업상 사무공간에서의 퇴근은 가능하지만, 스마트폰 계정 로그아웃은 불가능하다.
한 팀에서 한 달 동안 올라가는 콘텐츠는 100건 이상이다. 관리자 계정으로 연동되어 있는 내 스마트폰 앱에는 하루 몇 백개의 댓글과 DM알림이 떠있다. 물론 브랜드별 모니터링 요원들이 있어서 매분 매초 그것들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지만, 많은 텍스트들 사이에서 '문제시될만한' 혹은 '하이라이트를 쳐서 보고할 만한' 글자를 찾아내는 것도 나의 일이다.
휴가 때 들었던 가장 고마운 인사는 ‘잘 다녀오세요. 연락 안 할게요’였다. 나는 해외에서 굳이 와이파이 존을 찾지 않는다. 공항에서 와이파이 도시락 같은 것도 빌려가지 않는다. 응급 상황에 해외 통화료를 온전히 물게 되더라도 그것 역시 나의 휴가 비용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았다. 그렇게 데이터를 차단하고 쉴 수 있는 기간이라야 1년에 한두 번 정도였지만 말이다.
남편은 외국계 회사 영업팀 대리다.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회사로 업무 특성상 해외 출장이 잦고 여러 나라 담당자와 연결되어있다. 나름 건실한 이 회사에서는 해외 무제한 데이터와 통화료까지 지원했다. 메일 알림부터 메신저, 전화 알람까지 남편의 스마트폰은 참 알뜰살뜰하게 기능한다.
해외 출장은 길면 2박 3일, 짧게는 당일 일정도 가능하다. 새벽 5시쯤 일어나 공항으로 출발한 남편은
다음 날 집이 아니고 회사로 복귀해 근무시간을 모두 채우고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래도 회사에 ‘가정의 날’ 같은 게 생겨서 주 2회 정도는 오후 7시 이전에 집에 들어오기도 했다. 좋은 사내 문화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은 긍정적인 것이었지만 당연한 것에 복지라는 이름을 붙여 지킨다고 해서 좋은 회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남편은 두통이 잦은 편이었다. 퇴근해서 들어오면 와이셔츠만 벗은 채 침대에 겨우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몇 번 봤다. 그럴 때면 잠자는 아기라도 본 듯, 안방을 어둡게 하고 혼자 거실에 나와 밥을 먹고 TV를 봤다.
뉴스에 해외 지진 관련 보도가 났다. 한 시간쯤 지나서였나. 남편의 스마트폰은 유난히 신경질적으로 울려댔다. 고객사의 항의 전화였다. 해외 이슈에 대한 즉각적인 보고가 없다는 이유였는데 아무리 퇴근을 했어도 그 문자 하나 남기는 게 어려운 일이냐면서 남편을 다그쳤다.
조직에서 사용 요금까지 지원하는 이 편리한 기계를 통해서, 합리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일하는 우리는 21세기의 평범한 30대 부부다. 그렇게 메신저를 통한 업무, 퇴근 시간 외 연락하지 않기 같은 기본적인 규칙쯤 돈 받았으면 없는 셈 쳐야 하는.
그렇게 우리 부부는 단 한 시간의 지체도
허용하지 않는 일상을 살면서 몇 개월 째 오지 않는 아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래 남은 대출금을 갚아나가면서.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피곤과 긴장이 겹쳐 자주 소름이 돋았다. 집중하기 위해서 가끔 숨을 참고 생각하는 버릇도 생겼다. 오랫동안 켜 둔 전구의 필라멘트처럼 신경 줄이 껌뻑이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대표님과 면담을 신청했다. 대표님은 탁자 위에 각티슈를 내려놓고 사무실 쪽 블라인드를 내렸다. 내가 하는 모든 말에 힘든 것을 안다며 동의해주셨다. 하지만 일을 그만두는 것은 안된다고 일주일의 휴가를 줬다. 여행이고 뭐고 이제 놀 기운도 남아있지 않다. 어찌어찌 인수인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몸살 기운이 돌았다. 입맛이 없어 조금 뜯어먹은 카스텔라를 모두 게워내고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교감신경 항진이라는 진단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