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도끼에 발등찍힌다?

by 유원썸

어린 시절 우리집에는 개 두마리를 동시에 키웠는데 한 놈은 진돗개의 팔촌정도로 제법 똑똑해서 진순이라 불렀고 한 놈은 그냥 똥개, 복실이라고 불렀다. 복실이는 완전 인기폭발, 요즘의 아이돌마냥 숫캐들이 컹컹거려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기 일쑤였다.


진순이는 머리도 좋고 족보도 있는데 어머니는 왜 그러셨는지 진순이는 묶어두고 복실이는 풀어 키우셨다. 대문을 열라치면 냄새맡은 숫캐들이 어느사이 나타나 복실이를 졸졸졸 따라다닐 때 진순이는 목을 길게 빼고 최대한 눈앞의 상황을 보려했다.


인기녀란 증거는 복실이의 배였다. 어느 사이 불러오더니 똥개답지않게 딱 한마리를 낳았다. 어린 나이때문인지 복실이는 새끼는 내팽겨쳐두고 자신의 YOLO LIFE를 외치면서 싸돌아다녔다. 결국 새끼는 내 손안에서 차갑게 죽었다.

모정(母情)은 모든 여자, 암컷이 갖고 있는 건 아닌게다.


복실이의 인기는 새끼를 낳은 이후 솔직히 전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대문을 꼭 잠궜다. 연애는 커녕 수컷이 전혀 근접하지않는 진순이에 대한 배려였을까?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고 복실이의 배가 또 불러왔다.

누구야? 이 철벽대문을 뚫고 들어온 놈이? 실한 놈일세.


그 날은 새벽무렵 현관등이 여러번 켜졌었다. 누군가의 발자국소리도 들렸다. 모두들 선잠을 했다. 어머니가 복실이의 산파노릇을 하셨던거다. 모두가 깊이 잠들었고 현관문이 닫히면 밖의 소음도 닫히는데 어떻게 아셨을까? 나중에 들은 말로는 복실이가 소리한번 지르지않고 혼자 흙을 파고 애를 쓰는데 그 소리가 들리셨단다. 어머니는 한 마디로 대단, 엄지척이다. 그 미세한 소리가 들린게 아니라 배아파 낳는 복실이의 산통을 들으셨겠지

모두가 눈을 비비면서 "복실아 힘내"를 외쳤다. 이미 서너머리는 나와서 꾸물거렸고 이후에도 계속 계속 나왔다. 일곱마리까지 낳고 쾡한 눈이 된 복실이, 어머니가 내민 고기국물에도 그다지였다.

얼마간은 축제분위기였다. 새끼들은 걸어다니는 인형이었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강쥐들은 바로 눈을 뜨지못한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아침에 새끼들을 보느라 등굣길은 전력질주, 하교길은 새끼보고싶어서 전력질주 미안하지만 복실이는 이제 퇴물이 된듯, 진순이와 동급으로 여겨졌다.

우리가 새끼들에 폭 빠져있을 때 어머니는 복실이한테 더 많은 애정을 주셨던 기억이다. 팍삭 늙어보이는 외모에 쯧쯧쯧, 축 쳐진 배를 쓰다듬고 칭찬하고 고깃국도 무한리필로 주셨다.

그러는 사이....새끼 한마리가 사라지고 또 한마리가 사라지고 학교갔다 돌아오면 줄어든 숫자에 애가 탔다.


" 엄마, 얘들은 아무에게도 주지마"

"알았어" 라고 대답하신 어머니는 무엇을 알았다는 것인지 동심을 박살내셨다.

복실이와 진순이만 남은 실버타운이 되었다. 집안에 가득했던 활기참,온기도 사라지고 등하교의 전력질주도 필요가 없어졌다.


어느 날, 복실이마저 사라졌다. 녀석이 어린 나를 개무시해서 물기는 했어도 그래도 제일 많이 놀아준 건 나였다.

" 엄마. 복실이 어디갔어?"

" 음. 누구 줬어."
" 아. 왜????????????"


짖궃은 오빠의 TMI로 엄마 미워를 백번은 외쳤나보다

" 엄마가 개장수한테 팔았지롱"


진순이보다 연애 몇번, 출산 두번을 해봤고 한 때 동네 수컷들의 아이콘였다는 것, 그럼에도 최종 승자는 결국 진순이였다. 복실이 입장에서는 믿는 도끼에 제대로 발등 찍힌 게다.

그래서인지 tv 동물농장의 유기견, 안락사 장면은 개장수를 보고 덜덜덜 떨었을 복실이를 늘 생각나게 한다.

가엾은 복실이, 먹어봐야 한 그릇일텐데. 그거 먹어서 뽀빠이나 삼손되었을리도 없겠드만.


식물이든 동물이든 확실히 키워본 사람들의 경험은 정서적인 공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헤어질 때의 고통도 감내해야겠지만 말이다.

특히 동물은 남다른 감각으로 사람을 깨갱하게 만드는데 잔잔한 일상뿐 아니라 초자연적인 현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진이 나고 대형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회자되는 동물들의 본능은 얼마나 놀랄 노자인지!

지진을 미리 알고 쥐떼가 줄을 지어 도망간다거나 재해 전 며칠간은 젖소조차 우유를 생산하지않는다던가 물밖으로 물고기들이 튀어나온다거나 동면을 취하는 뱀이 놀라 깨어난다거나등은 설명할 방법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말못하는 짐승조차 아는 일을 천하를 호령하는 사람도 AI도 모른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내가 키웠던 개들은 그런 기이한 능력을 보인 적이 없다. 서울은 평화스러웠다.


어린 시절 개를 키운 아름다운 정서와 그들의 우수한 능력에 침튀기게 이야기했다만 사실 개와 고양이를 키워보니

"이러니 동물이지, 사람한테 지배당하는 이유가 있다니깐" 란 생각도 자주 한다.

일단 같은 개과끼리라도 먼저 잇몸보이는 놈이 있다. 기선제압인 셈이다. 덩치 큰 놈과 작은 놈이 마주친다해도 큰 놈이 이기는 것도 아니다. 무조건 피하거나 납작 엎드리는 평화주의자도 있고 우회전 좌회전할 때마다 어디 화풀이할 데 없나 으르릉대는 전쟁주의자도 있다. 주인에게 간신처럼 딸랑거리다가도 간식앞에서는 눈이 훽.돌아가기도 한다.

껌하나를 위해 손주고 발주고 온 몸을 다주며 "난 너거야, 니 맘대로 해" 라고 하면서도 배변판 놔두고 일부러 엉뚱한 곳에 싸질러놓고 " 너도 나를 위해 해주는 게 있어야지"라고 염장을 지르게도 한다.


정말 동물처럼 보일 때가 바로 개장수앞이다. 자기소개를 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꼬리는 축 져지고 겁먹은 눈으로 심지어는 도망갈 생각도 못한다. 큰 개고 투견이고 다 그렇단다. 목소리의 위압감? 동족상잔의 냄새? 어떤 이유때문인지 궁금하다.

사람이라고 이런 위기본능이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닌듯하다. 원시시대부터 따지자면 도끼를 들고다녔다 하고 자기 사람인지 아닌지 늘 긴장해야하고 싸워 이기거나 져서 죽거나 하는 구도로 배워왔는데 악수의 기원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 난 당신과 싸울 의도가 없소. 난 빈손이오. 그러니 나를 해치치마오." 란 신호로 맨 손을 들어보였고 악수로 인사를 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많아져도 당신이 나를 해치지않는다는 확신이 들었을 거고 나 또한 싸움보다는 평화가 좋은 것을 나누다보니 동물처럼 항상 주변을 경계하고 긴장할 필요가 없어졌을 거다.

그런 본능보다 머리를 쓰고 문명을 개발하는데 주력하다보니 사람은 경계의 대상이 아닌 서로 기대는 영어로 하면 we are the world가 되었으리라.


개 돼지가 가끔 놀랄만한 행동을 보인다해도 여전히 그들은 사람위해 존재하는 동물들이다. 천년이 지나도 여전히 개 돼지는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겠지만 만화처럼 그들이 우리를 지배할 거라곤 상상도 할 수 없거니와 그런 능력도 없어보인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란 속담처럼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하나 동물과 다르게

" I HAVE NO WEAPON. I AM NOT WILLING TO FIGHT AT ALL" 란 표현을 악수로 청할 줄 알고 미친 놈이 아니고서야 어디 싸울 데 없나 두리번거리지도 않는다.


사람은 그런 존재다. 동물보다 훨씬 부족한 능력으로 언제 어디서 우리를 해할지 모르는 위기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못하지만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이 빈 손으로 악수를 청할 것이라 믿고 사는 그런 존재.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다란 말은 사람에게는 쓰고싶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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