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들보의 역사
한옥의 대들보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 놓여 집 전체의 하중을 지탱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그 크기와 형태는 안정성과 직결된다.
대들보의 굵기는 지붕의 무게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기와로 마감된 집은 지붕 자체가 무겁기 때문에 이를 받쳐줄 대들보도 자연스럽게 굵고 튼튼하게 제작된다. 반면 초가지붕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편이어서 대들보도 더 가늘고 간결하게 만들어진다.
따라서 집을 볼 때 대들보가 유난히 굵고 단단해 보인다면, 그 집의 지붕 역시 무겁고 견고하게 구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한옥에서 대들보는 단순한 구조 부재를 넘어 그 시대 건축의 정신과 미적 감각까지 담고 있다. 옛 목수들은 지금처럼 설계도가 없기에 오로지 경험과 스승에게서 전수받은 지식으로 집을 지었다.
대들보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대와 지역 집의 쓰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고 그중 고려 시대의 대들보는 특히 항아리처럼 배가 불룩한 형태를 띠어 ‘항아리 보’라 불리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구조적인 형태를 넘어서 당시 장인들이 집을 짓는 데 있어 미적인 조화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13세기 이후 목조건물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의 하나는 기둥이나 대들보, 종보,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나머지 세부들이 모두 시각적 아름다움을 고려해 정교하게 가공되고 건물 각각의 독특한 형태를 표현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 한국건축의 역사 (김동욱)
고려시기를 지나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대들보의 형태에도 점차 변화가 생긴다. 고려시대의 항아리형 대들보에서 벗어나 조선 초기에는 형태가 보다 단순하고 실용적으로 바뀌는데 이 시기의 대들보는 대체로 길쭉한 장방형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날카로운 모서리는 둥글게 마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구조적인 안정성은 물론, 재료의 갈라짐을 방지하고 미관적으로도 부드러운 인상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위 그림 참조)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대들보의 제작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목재를 인위적으로 곧게 다듬는 대신 자연스럽게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는 단순히 재료 수급의 문제나 비용 절감 차원만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의 형태를 존중하고 그것을 설계에 반영하려는 전통적 건축 철학과도 관련이 깊다. 결과적으로 휘어진 부재를 그대로 활용함에 따라 대들보의 단면 형태도 점차 다양해지고 인위적으로 통일된 모습보다는 각 건물마다 개성 있고 유기적인 구조미를 가지게 된다.
특히 전통 한옥에서는 원목 그대로의 결과 휘어짐 굽은 선이 오히려 더 큰 가치를 지닌다.
굳이 곧게 다듬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사용함으로써 집 자체가 마치 산과 들 나무와 조화를 이루며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단순한 미학을 넘어서 오랜 세월을 견뎌낼 수 있는 구조적 유연함을 제공하기도 한다. 나무가 가진 자연스러운 탄성과 휨은 지진이나 외부 충격에 더 잘 적응하는 특징을 가지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 후기의 대들보는 단순히 건축을 위한 재료가 아니라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그 흐름을 따라 집을 짓고자 했던 선조들의 지혜와 미학을 담고 있는 상징이기도 하다.
대들보 하나에도 시대의 변화 자연과의 조화 장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집안의 평안과 복을 빌기 위해 집을 지키는 신령을 모시는 전통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성주신(城主神)’은 집 전체를 관장하는 가장 중요한 신으로 여겨졌으며 가족의 안녕과 번영을 책임지는 존재로 믿어졌다. 특히 성주신은 집안의 가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여겨졌고 그 좌정하는 자리 즉 신이 머무는 장소로는 대들보 위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역마다 신의 거처로 여기는 위치는 조금씩 달랐다. 대청마루의 대들보를 성주의 자리로 삼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안방 윗목 그러니까 방 안의 따뜻한 구석에 성주신이 머문다고 믿는 곳도 있었다.
그만큼 대들보는 단지 구조적인 의미를 넘어 집의 영적인 중심이자 신성한 공간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대들보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은 단지 전통적인 신앙 때문만은 아니다.
'보'는 구조, 형태, 사용 장소에 따라 여러가지가 있으나 지붕하중을 받는 '지붕보' 와 상층마루 하중을 받는 '층보'로 대별하고, 단일제를 쓴 '단순보'와 여러재를 조립하여 만든 '짠보'가 있다. - 목조 (장기인)
대들보는 기둥과 보에 의한 구조로 13세기 이후 건물의 큰 특징의 하나는 고주와 퇴보를 사용해서 넓은 개방된 실내 공간을 확보, 삼국시대에는 널리 사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한국건축의 역사 (김동욱)
한옥에서 대들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기둥과 기둥을 연결해주는 다리이자 지붕의 무게를 받아내어 그 하중을 기둥으로 전달하는 핵심 구조물이다.
한옥을 구성하는 여러 부재 중에서도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들보는 건물의 측면 폭에 따라 길이가 달라지며 지붕이 무거울수록 더 굵은 나무가 사용된다.
기와지붕처럼 무거운 지붕을 얹는 집은 자연히 대들보도 크고 튼튼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구조적으로 보면 대들보는 기둥 위에 바로 결속되거나 혹은 기둥 위에 설치된 ‘주두’라고 불리는 받침대 위에 놓여 건물의 뼈대를 이룬다. 이 대들보를 중심으로 건물 전체의 골격이 짜여지며 집의 형태와 안정성도 함께 결정된다.
한옥에서는 대들보의 위치와 역할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퇴보, 귀보, 귀잡이보, 충량, 우미량 등은 대들보가 어디에 위치하고 어떤 기능을 하느냐에 따라 나뉘는 명칭이다. 또한 모양에 따라서도 다양한 이름이 붙는다.
끝이 소의 꼬리처럼 가늘게 빠졌다고 해서 ‘소꼬리보’, 아치형으로 휘어진 곡선을 그린다고 해서 ‘홍예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대들보는 그 기능과 형태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각각의 이름에는 그만큼의 역할과 의미가 담겨 있다.
결국 대들보는 단지 지붕을 지탱하는 구조물이라는 차원을 넘어 한옥의 구조적 중심이자 이름 하나하나에도 장인의 손끝과 전통의 지혜가 깃든 상징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대들보 하나만 제대로 들여다보아도 그 집의 규모와 무게 구조적 안정성은 물론 과거 장인들의 건축 철학까지 엿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