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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가 중인데… 회사는 왜 자꾸 연락할까요?

내가 쉬는 게 그렇게 불편한가요

by 강호연정

오늘의 증상 : 의사 선생님 조언대로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더니 오히려 수면의 질 향상에 효과.

오후에 회사에서 온 전화와 문자메시지 보고 스트레스 급상승. 손이 떨리고 얼굴에 스트레스성 두드러기 발진이 생김.


병가 4일 차. 이제는 조금 마음을 내려놓고, 일상의 균형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네요.


오늘, 몸이 좋지 않아 오후엔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눈을 뜨니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 장문의 문자 두 통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순간 다시 현실로 끌려오는 기분이었습니다.


병가이니 가능한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그렇게 부탁했는데, 결국, 연락이 오고 말았군요. 고작 4일 만에.

그런데 내용은 더 어처구니없었습니다. 신사업의 계약 방법에 대한 질의였어요.


10번은 넘게 설명한 것 같습니다. 신사업인데 계약 공고나 방법을 결정할 때 저 같은 말단에게 권한이 있었을까요? 몇 번이나 보고하고, 계약팀에 문의하고, 심지어 나라장터 관리팀에까지 문의하고 팀장, 과장까지 다 보고하고 결재한 내용이에요.


그런데 의회를 앞두고 있다며 또 또 또! 같은 문제로 저를 못살게 굽습니다.


지난 2월 12일이 떠오릅니다. 안구에 문제가 있어 정기적으로 대학병원 안과에 다니고 있어요. 병원 때문에 휴가를 내기 전 날, 검사 시간이 길고, 눈에 동공확장제를 넣어서 글자가 안 보일 테니 연락이 안 될 거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바꿔가며 전화, 카톡, 문자메시지까지... 하늘이 무너질 정도로 뭔가 큰 사건이 생긴 줄 알았습니다.


눈에 약을 넣어서 누가 무슨 일로 연락했는지도 안 보이는데, 시끄럽고 복잡한 병원 한구석을 찾아 전화를 했습니다. 결과는 오늘과 같았어요. "그때 왜 긴급입찰공고를 올렸더라?"였습니다.

저는 다시 고장 난 라디오처럼 설명을 반복했었지요.


그저 연락을 안 받는 게 아니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그들은 왜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걸까요? 몇 번쯤 설명해야 만족한다고 할까요?


병가를 낸 사람에게 반복되는 같은 질문들. 그 안에는 어떠한 배려도 존중도 없었어요.

저는 마치 아파서 쉬는 게 아니라 죄인이 도망간 것 같은 압박감마저 들었어요. 덕분에 손이 떨리고 얼굴에는 스트레스성 두드러기까지 올라오기 시작하네요.

'병가'라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 회복이 필요하다는 의미예요. 앞으로도 계속 이처럼 반복적으로 연락이 온다면 저의 병가는 무엇을 위한 시간인가요?

화가 치밀어 오는 와중에도 저는 상황과 절차를 상세히 써서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똑같은 질문을 할 거라면 그냥 다 제 탓이라고 하고 제발 저를 잘라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돌아온 답장.

"잘 전달하겠습니다. 쉬세요. ^^"

말하자면, 이제 저를 정리하겠다는 뜻일까요?

저는 앞으로 회사에서 오는 연락과 메시지를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회사의 괴롭힘으로부터 최소한으로 저를 보호하고 싶어서요.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부디 기억해 주세요.

병가 중인 사람은 '쉴 권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쉼'이란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해서는 안 되는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쉼은, 다시 일어서기 위한 최소한의 존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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