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드북,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내가 나라는 이유로 죄가 되고
내가 나라는 이유로 벌을 받는
문제투성이 세상에
하나의 오답으로 남아
뮤지컬 레드북,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나는 뮤지컬을 좋아하는데,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제대로 본 뮤지컬이 손에 꼽지 않아 뮤지컬 관람이 취미라고 말하질 못한다. 유튜브로 프레스콜이나 일부 넘버 영상만 보며 맛보기만 콕 먹어보았기에 취미라고 말하기엔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 지방에서 거주하는 터라 화려한 춤과 연출을 보여주는 무대를 볼 기회가 쉽지 않은데, 그럼에도 뮤지컬 관람은 여전히 내 소망이자 사치스러운 여가 생활로 남아 있다.
2018년 우연히 유튜브에서 찾아보았던 뮤지컬 ‘웃는 남자’ 프레스콜을 시작으로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푹 빠져들었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다양한 프레스콜이나 뮤지컬 넘버를 찾아 감상했다. 뮤지컬 넘버들은 스토리가 담긴 가사이기에 그 극 전체의 분위기를 말해주거나 당시 막의 상황 및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함께 담겨있다. 그중에서 가장 내 마음을 울렸던 뮤지컬, ‘레드북’의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넘버를 듣고 레드북 뮤지컬을 찾아보았다.
레드북은 성숙과 조신함을 추구하기보단 나로서 살고 싶은 주인공 안나가 사회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맞서 19금 성인 소설을 쓰고 편견을 이겨내려 노력하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직접 이 뮤지컬을 보았다면 더 다채로운 시각으로 줄거리를 설명해줄 수 있을 텐데, 나 역시 알고 있는 부분이 여기까지라 아쉽다. 곧 다시 새로운 공연으로 막을 올린다는데 코로나가 좀 잠잠해져서 꼭 한 번 보러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뮤지컬 넘버는 주인공 안나가 이 세상에 맞서 사회적 시선과 편견을 이겨내기 위해 부르는 노래이다. 여성인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쓰면서도 그것이 죄가 되고 벌을 받는, 너무나도 보수적인 세상에서 당당히 오답과 결점으로 남겠다는 안나. 이러한 터부시적인 성적 시선은 현대로 오면서 많이 발전했지만, 그 당시의 안나와 안나가 쓴 성인 소설들은 매우 타락하고 퇴폐적인 것으로 보였을 터다.
지금은 당연한 것들이 예전에는 당연하지 않았던 때가 있다. 평등을 추구하기 전 노예들이 그러했고, 여성의 참정권이 그러했다. 모두의 평등과 참정권조차도 제대로 얻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어찌어찌 잘 굴러가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사회는 수많은 문제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문제들을 지적하며 오답을 고쳐나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때론 이 문제를 지적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기 위해 당사자의 입을 막기도 하고, 이에 반하는 자들의 반론도 함께 들려오곤 한다. 수많은 논의와 싸움 사이에서 정답을 찾고 제 파이를 차지하려는 세력들의 운동과 경쟁이 더 완벽한, 더 제대로 된 사회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해 놓은 일종의 문제아일지도 모른다. 사회적 시선을 탈피하고 나의 권리를 추구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움직이는 건 당연하면서도 이를 달갑게 보지 않는 시선들 때문에 피해를 입기도 한다.
학교 밖 청소년으로 살아가면서, 그리고 학교 밖 청소년들의 권리를 이야기하면서 응원의 말도 많이 받았지만 시혜적인 시선과 차별도 얼마나 많이 받아왔던가? 당사자가 아니었을 땐 몰랐던 어렵고 서러운 점들을 직접 겪으며, 나는 미움 받는 걸 두려워해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선 내가 더 나대야 한다. 나의 존재를 알리고 내 주장을 듣게 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만 한 번쯤 돌아봐 주고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세력이 생긴다. 소수의 힘일지라도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노력하면 되지 않는 게 없다는 걸 깨닫는 요즘. 수많은 방해 공작과 무시가 뒤따라오며 무기력을 느끼기도 하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게 의미 있는 일이라며 나를 다독이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말하고 글을 쓰는 것이 곧 나의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고 해야 하는 일이기에 나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니 말하고 싶은 일에, 주장하고 싶은 권리를 적는데 더는 고민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문제아들이 짚어낸 오답들이 언젠가는 정답이 되고, 현재는 사회의 결점이나 얼룩처럼 보일지라도 언젠가 그것이 옳다는 걸 반드시 증명해내리라.
그러니 조용히 나의 글을 읽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자들이 있다면, 앞으로 내가 나아갈 행보에도 함께 힘을 실어 주었으면 한다. 레드북의 안나가 자신의 신념을 위해 꾸준히 글을 썼듯이, 나 역시 나의 신념을 위해 펜을 놓지 않고 쉼 없이 타자를 두드릴 테니까. 앞으로는 내가 지지하고 말하고 싶었던 주제들을 더 직접적으로 꺼내어 이야기 할 것이다. 가벼운 일상을 담은 ‘나의 인생 시리즈’ 이외에도 다방면에서 써내려갈 이야기를 궁금해줬으면 좋겠다.
<나의 인생 플레이리스트>는 10부작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잠시 한 달에서 두 달 내지 휴식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다음 번에는 다른 나의 인생 시리즈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