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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Jun 06. 2023

당신의 다리를 자르겠습니다

오늘이 낯선 지구 여행자입니다만 ep7

  응급의료센터 안의 모든 의사가 모여들었다. 다른 어떤 환자보다 응급한 상황임을 알리며 ‘의사들은 현재 긴급 후송된 환자에게 와 달라는’ 방송이 들렸다. 각자 전공에 맞춰 의견을 토해냈다. 잘라라 붙여라 꿰매라 묶어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점점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오토바이 사고래요”

  “야! 일단 바지 찢어!”

  “이거 심각한데?”

  “아무래도 무릎아래를 절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 오고 계시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멀리 아내와 아이들이 보였다. 언제 왔는지 회사 동료 중 한 명이 내가 와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대답할 힘이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난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안 아픈곳이 없다. 오른쪽 다리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부러지거나 찢어진 상태라며 옆에 있던 간호사가 얘기했다. 담당 교수와 나머지 의사들이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끔 나를 힐끗 보는 사람이 교수인 듯했다. 그중 한 명의 의사가 내게 다가왔다. 


  “환자분은 현재 정강이뼈가 피부 밖으로 모두 나와 있는 개방성 골절입니다”


  무슨 말인지 들리긴 했지만 뜻을 알 수가 없었다. 잠이 덜 깬 것 같은 몽롱한 상태가 이어졌다. 


  “내일 아침 바로 수술해야 하니 오늘 밤은 안정을 취하세요”

  “네”


  힘없이 내가 대답하자 대기 중이던 남자 간호사가 침대를 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회전할 때마다 어지러웠다. 구역질이 났다. 꽤 긴 시간을 이동해 어둑한 한 병실에 도착했다. 남자 간호사는 다른 간호사를 불렀다. 병실 침대로 옮겨야 하는데 혼자서는 불가능했던 것 같다. 내가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기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세 명이 힘겹게 합을 맞춰 밑에 깔린 하얀 커버째 들어 옮겼다. 나에게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쓰는 게 보였다. 병실 안은 이미 잠이 든 환자들로 조용했다. 나도 자고 싶었다. 자고 나면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날 것만 같다. 하지만 난 바램과는 다르게 밤새 혈압을 재고 진통제를 맞느라 안정은커녕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일단 수술실로 옮기죠”


  눈이 떠지지 않는다. 또 어디론가 침대가 굴러가는 게 느껴졌다. 얼마나 왔을까. 갑자기 추워졌다. 억지로 눈을 떴다. 연한 푸른 빛이 감도는 색깔의 방이었다. 벽에 걸린 톱, 망치, 이름을 알 수 없는 각종 도구가 보였다. 


  ‘여긴 어디지?’

  “환자분 이제 수술할 거예요. 마스크를 씌워 드릴 테니 심호흡하시고 편히 계세요”

  

  한 간호사가 와서 나를 안심시켰다. 


  “이제 10부터 거꾸로 세어보세요”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병실이었다. 옆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아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내 잠이 들었다. 드문드문 깨어났다 잠들기를 반복했다. 이제 정신이 좀 드는 것 같다. 힘겹게 살짝 고개를 들어 아래를 봤다. 내 왼발은 커다랗고 동그란 쇠뭉치에 이리저리 꼬치처럼 꽂혀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왼쪽 팔은 전체가 붕대로 감겨있고 역시 공중에 줄이 연결되어 있었다. 오른쪽은 그나마 멀쩡해 보였다. 일어나려고 힘을 주는데 가슴이 망치로 맞은 듯이 아프다. 갈비뼈가 양쪽으로 다섯 개나 금이 간 상태라 당분간은 움직이면 안 된다고 옆에 있던 아내가 말해줬다. 그리고 내가 이틀간 잠만 잤다고도 얘기했다. 


  주치의가 찾아왔다. 


  “1차 수술은 잘 마쳤습니다”

  “1차? 수술을 또 하나요?”

  “현재 환자분은 정강이뼈 개방성 골절입니다. 밖으로 튀어나와 있던 뼈에 염증이 생겨서 약 2주간 지켜보고 염증 수치가 내려가야 2차 수술을 할 수 있어요”

  “안 내려가면 어떻게 되나요?”

  “내려갈 때까지 기다려 보고 만약 염증으로 뼈가 괴사하면...”


  주치의는 뭔가를 말하려다 머뭇거렸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안심하시고 안정을 취하고 계세요”


  어디에선가 온 전화를 받으며 주치의는 빠르게 병실을 나갔다. 마저 듣지 못한 말은 같은 병실의 선배 환자에게 들을 수 있었다. 


  “최악엔 다리를 잘라야 해요”


  다리를 자른다니. 순간 다리 하나가 없는 나를 상상했다. 최악 중의 최악이다. 

  '아니야 좋게 생각하자.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다리 정도는 똑같이 만들잖아’ 

  긍정적인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모를 막연한 희망을 품었다. 


  입원한 지 며칠이 지났다. 하루는 아침인 듯한데 잠에서 깨지 않는 느낌이었다. 간호사가 나에게 얘기하는 것이 들렸다가 안 들렸다가 한다. 그냥 멍하다. 이상했다. 내 눈을 들여다보던 간호사는 급히 의사를 데려왔다.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웅성거리는 소리가 몹시 거슬렸다. TV 소리와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음들이 내 귓가에서 증폭되어 들렸다. 소리 지르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았다. 덥다. 며칠간 씻지도 못한 데다 땀으로 흥건해진 몸에선 역겨운 냄새가 났다.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들어? 선생님 불러올게. 기다려”

  “환자분 제 손가락 보이세요? 몇 개예요?”

  “두...두 개요”


  몇 가지를 더 물어보던 의사는 한시름 놨다며 웃어 보였다. 하루 전 아침 무렵에 급하게 수혈했다고 아내가 말해줬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절반 이하로 떨어져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피 흘리며 신음하는 주인공이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권총을 못 잡고 애쓰는 모습이 억지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현실이었다. 난 만 하루 동안 의식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수혈받은 지 2주가 지나서야 염증 수치가 낮아져 2차 수술을 하게 됐다. 입원한 지 3주째였다. 다리에 매달려 있던 커다란 쇳덩이들은 없어졌다. 대신 정강이뼈 안에 텅스텐으로 된 보조기구를 넣었다. 이제 난 무쇠 다리다. 


  사고가 나고 두 달을 채워갈 때쯤 집으로 돌아왔다. 목발을 짚고 계단을 오르는 것이 꽤 힘들었지만, 집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때까진 얼마나 오랜 시간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몰랐다. 온전히 내 두 발로 걷기까지 일 년이 걸릴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마저도 뛰는 건 불가능했다. 다행인 건 자전거는 큰 문제 없이 탈 수 있었다. 스스로 달리는 기분을 만끽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고의 흔적과 후유증이 남아있다. 종아리 근육은 조각나 있고 키보드 자판을 누를 때마다 불편함이 있다. 분화구처럼 깊고 검은 흉터가 그때의 고통을 기억해 낸다. 


  한 번의 사고였지만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 놓았다. 일단 꽤 큰 빚이 생겼다. 사고처리가 지연되면서 그동안의 치료비를 우선 자비 처리해야 했다. 수입은 끊어지고 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입원해 있는 동안 혼자 거동할 수 없어 아내가 늘 옆에 있어야 했다. 엄마에게 아이들의 아침 등교와 저녁밥을 부탁했다. 앞날이 막막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끔찍한 날들을 견디고 살아냈다. 매일 출퇴근을 도와줬던 친구, 새벽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던 분들, 내가 해야 할 일을 군소리 없이 자기 일처럼 도와준 동료들. 염증을 가라앉히는데 특효라며 개기름을 구해와 억지로 먹이시던 엄마의 정성. 무엇보다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도록 용기를 주고 곁을 지켜준, 지금은 좋은 친구가 된 당시의 아내. 


  삶이 살만하도록 믿게 해준 모두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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