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홀로길에 Jun 17. 2023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글쓴이의 덧붙임 혹은 변명 7


  어디에선가 온 전화를 받으며 주치의는 빠르게 병실을 나갔다. 마저 듣지 못한 말은 같은 병실의 선배 환자에게 들을 수 있었다.

  “최악엔 다리를 잘라야 해요.”

- 당신의 다리를 자르겠습니다 中



  119구급차를 타고 가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났습니다. 우습게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이들에게 주려고 산 호두과자가 전부 터진 건 아닐까였습니다. 역시나 등에 메고 있던 가방 안에서 묵사발이 됐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덕을 톡톡히 봤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두 상자의 호두과자가 완충제 역할을 해줘서 저의 허리는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한쪽 다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눈앞이 캄캄해져 왔습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생계는 어떻게 하나 걱정이 저를 압박합니다. 그렇다고 자책하고만 있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희망을 품어야 했습니다. 비록 긴 시간의 치료와 재활훈련이 필요했지만, 다시 두 발로 걷고 있는 걸 다행으로 여깁니다.


  정강이뼈 안에 금속 보조기구가 삽입되어 있지만 평소에는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겨울에 영하 10도 정도로 추워지면 종아리 속이 시려옵니다. 금속이 차가워지는 걸 느낍니다. 북유럽은 못 갈 듯합니다. 오로라를 직접 보고 싶었는데 포기해야겠습니다. 또 한 가지, 공항 검색대를 그냥 통과한 적이 없습니다. 금속 탐지기가 반응합니다. 제 몸을 여기저기 수색합니다. 


  뛰거나 물장구를 세게 치면 아직도 아픕니다. 달리기와 수영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일하게 달리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자전거를 타게 됐습니다. 그 덕에 한결 기분은 나아졌습니다. 한강 변을 달리면서 느끼는 자유로움이 그간의 많은 사건, 사고에도 불구하고 버텨낸 저를 위로합니다. 


  마치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사고처리는 시간이 지나 해결이 되었고,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더 열심히 살아내야 했지만 늘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살아있어 감사했고, 두 발로 걸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다시 가족과 정을 나눌 수 있어 감사했고, 저를 걱정해 주고 도와준 많은 사람에게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내일을 모릅니다. 아니 한 치 앞도 모릅니다. 잠시 뒤에 사고가 날 거라 생각 못 합니다. 옆에 있던 사람과 한순간 이별할 수도 있습니다. 알 수 없는 내일이 너무 궁금하지만, 몰라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어쩌면 오늘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데 집중하도록 하기 위한 신의 배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 번 더 웃어주고 안아주세요.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도록 말이에요. 다시 볼 일 없는 사람이 내 앞에 끼어들었다고 흥분하며 욕하는데 소중한 시간을 쓰지 말았으면 해요.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인생이란 시간의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빨라짐을 느낍니다. 


  저 역시 오늘도 늦는 아들에게, 들어와 줘서 고맙고 늘 응원하며 사랑한다고 말해줘야겠습니다. 




이전 13화 당신의 다리를 자르겠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