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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Jun 22. 2023

나 먼저 간다

글쓴이의 덧붙임 혹은 변명 8


  ‘나를 태운 건 경찰 오토바이였다. 대입학력고사가 있는 날 아침이면 늦게 온 수험생을 태운 경찰 오토바이가 학교 정문을 쏜살같이 통과하는 장면이 늘 TV에 나왔다. 그 장면을 보며 한심한 듯 쳐다보던 내가 그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다.’

  - 늦었거나 혹은 추웠거나 中



  아침부터 하나씩 엇나가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 생각해 봐도 웃음이 납니다. 도시락을 챙기느라 아슬아슬하게 버스 한 대를 놓친 것이 화근이었죠. 하필 제가 탄 전철이 목적지를 앞에 두고 계속 멈춘 채 서 있었던 그때는 정말 식은땀이 났습니다. 전철 문이 열려 내리긴 했지만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 나머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뛰었던 학생이 아니면 그냥 포기하고 말았을 겁니다. 경찰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 안으로 들어간 것도 뜀박질이 제일 빨랐기에 가능했습니다. 대기 중이던 오토바이가 두 대뿐이었는데 같이 뛴 학생은 대여섯 명쯤 됐거든요. 뒤에 있던 학생들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네요.


  더 큰 문제는 1교시였습니다. 시험 중에 안경이 반으로 갈라질 거라곤 상상이나 했을까요? 정말 어이없던 것은 고치러 간 감독관이 다시 가져온 안경의 상태였습니다. 투명 테이프로 칭칭 감아왔는데 정말…. 더 집중이 안 되는 겁니다. 최선이었겠지만, 왼쪽 눈으로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신경 쓰이고 답답했습니다. 결국 안경을 벗고 말았습니다.


  대학에 가고 안 가고를 떠나 합격했는지 궁금했습니다. 불합격인 걸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속내는 그렇지 못했죠. 매우 아쉬웠습니다.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상당히 갈팡질팡했던 것 같아요. 가고 싶기도 하고 싫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예비 합격이라는 소식이 전해오자, 눈물이 났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참고 포기하는 것이 익숙했던 저의 삶이 싫었습니다.


  모든 것이 핑계일 수 있지만 그런 평가는 저에게 중요치 않습니다. 다른 이의 삶을 살아보지 않고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 삶이 가장 힘들었다 항변합니다. 맞습니다. 그럴 겁니다. 하지만 힘들다 투덜거리기만 한다면 남은 삶도 힘들겠죠. 스스로가 계속 힘들 수밖에 없는 선택에 익숙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이 인생이라 굳게 믿고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선택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더 좋은 내일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돌아보고 고민해야겠죠.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몇억 빚에서 엄청난 부를 이룬 사람 이야기가 넘칩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지금 당장 생각과 행동을 바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바꿨습니다. 다시 출발점에 선 기분이지만 분명한 건 제가 바꿔 가는 오늘이 모여 더 나은 내일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나마 빚이 없어서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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