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낯선 지구 여행자입니다만 ep8
“이번 역은 H대, H대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꽤 많은 사람이 내렸다. H대에서 시험을 보는 학생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문이 닫히자 이내 덥고 탁한 공기가 기관지를 괴롭혔다. 기침이 나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열차 출발합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선 밖으로 물러서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세 정거장 남았다. 내릴 곳이 가까워질수록 긴장됐다. 출입문에 기댄 채 습기로 가득한 창을 소매로 문질러 보지만 이내 차오르는 습기가 시야를 가린다. 답답하다.
“열차 신호대기로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승객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벌써 두 번째다. 잠시 멈춘다던 열차는 계속 서 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7시 52분이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8시 10분까지 고사실에 입실을 완료해야 한다. 대입학력고사 시절이던 그때는 학교와 학과까지 먼저 원서를 쓰고, 해당 학교에 직접 가서 시험을 치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열차 출발하겠습니다.”
K대입구 역에 도착해서 문이 열렸다. 8시 9분. 망했다. 멍해진 난 시계만 바라보고 있었다. 힘없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처럼 넋이 나간 듯 서 있는 학생이 몇 명 보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한 명이 냅다 뛰었다. 정신이 번쩍 든 난 계단을 두세 개씩 뛰어 내려갔다.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다. 역 아래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수험생이야?”
“네!”
“빨리 타! K대지?”
“네!”
나를 태운 건 경찰 오토바이였다. 대입학력고사가 있는 날 아침이면 늦게 온 수험생을 태운 경찰 오토바이가 학교 정문을 쏜살같이 통과하는 장면이 늘 TV에 나왔다. 그 장면을 보며 한심한 듯 쳐다보던 내가 그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다. 정문을 지나가는 데 방송국 카메라가 보였다. 난 옷으로 얼굴을 가렸다. 간신히 8시 20분에 고사실에 들어갔다. 시험을 못 볼 거라 걱정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안경을 쓰고 있던 난 렌즈에 낀 습기 때문에 안경을 벗어야 했다. 보이는 게 없었다. 감독관의 안내로 간신히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조금 전의 긴박했던 순간으로 인해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한 번, 두 번. 긴장이 조금 풀리자, 찬바람을 그대로 맞은 귀와 볼이 따끔거렸다.
1교시 국어. 한국인이 한국어를 가장 어려워하는 시간. 그래도 나름 국어는 자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집중해서 문제를 풀고 있었다. 시험을 시작한 지 15분쯤 지났다. 갑자기 ‘쩍’ 하는 소리가 나더니 글자에 초점이 맞지 않았다. 순간 앞에서 벌어진 일에 나는 너무 놀라 당황하고 있었다. 무테였던 안경 렌즈가 반으로 갈라져 문제지 위에 떨어진 것이다. 옆을 지나던 감독관이 더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안경을 들고는 급히 어디론가 가버렸다. 난 그 시절 꽤 고도 근시였기에 안경 없이 시험을 보는 것은 상당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5분쯤 후에 돌아온 감독관의 손엔 투명 테이프로 응급수술을 마친 안경이 들려 있었다.
아침에 버스정류장에선 사람이 꽉 찬 버스가 문도 제대로 닫지 못하고 그냥 가버리는 걸 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버스 한 대를 놓친 것부터 시작해서 전철의 신호대기, 경찰 오토바이를 타고 고사장에 가고 안경이 깨지는 일까지 정말 되는 게 없는 하루였다. 시험을 마치고 고사장을 나오니 저 멀리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학교 가운데 있던 호수에 별처럼 떨어지는 윤슬이 부드럽게 빛나고 있다. 길었던 하루였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끝나니 후련했다.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사실 기다리지 않았다. 어차피 대학에 갈 마음이 없었다.
혼자 다시 찾은 대학교엔 학과별로 합격한 수험번호를 적어놓은 커다란 판이 여기저기 있었다. 내 수험번호는 없었다. 불합격. 차라리 잘됐다는 안도감에 담담히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불과 5개월여 지났다. 5년간 투병 생활을 하시며 병원비로 생긴 꽤 많은 빚만 남기고 떠나셨다. 남대문 새벽시장에 점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 가시던 엄마의 수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대학 등록금이었다. 나라도 돈을 벌어 집에 보태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정오 무렵. 추운 날씨 탓에 나가기 싫어 며칠째 집에만 있었다. 혼자만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L학생 있습니까?”
“전대요.”
“네, 여기는 K대학입니다. 학생은 현재 예비 합격자입니다. 혹시 등록하지 않는 학생이 생기면 합격 처리되니 연락 기다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연락이 되지 않으면 다음 순번의 학생에게 기회가 돌아갑니다.”
“네? 아...네.”
예비 합격이라니. 별생각 없이 편하게 지내던 마음이 요동쳤다. 어찌해야 하나. 혼란스러웠다. 만약 합격통지를 받으면 엄마에게 이야기해야 할까? 하지 말까? 이미 불합격인 걸 알고 있으니 그냥 모른 척할까? 그날 밤 한숨도 못 잤다. 난 아침이 되자마자 전화 코드를 뽑아버렸다. 아무도 몰라야 할 비밀이었다. 이 비밀을 발설한 건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흐른 후다. 물론 엄마는 지금까지 모른다. 알아서 좋을 게 없다. 하나도 없다.
당시 ‘전기대’와 ‘후기대’로 대입학력고사가 나뉘어 있었다. 전기대에 불합격하면 후기대에 한 번 더 도전할 수 있었다. 거기서 떨어지면 마지막으로 ‘전문대’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졸업하면 바로 취직하겠다는 내게, 엄마는 무조건 후기대 시험을 보라고 하셨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엄마가 원하니 그러겠다고 했다. 내가 응시한 곳은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며칠 후 후기대 시험지 유출로 시험이 연기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TV에선 며칠 동안, 이 사건에 대해 다뤘다. 역시 나의 92학년도 대입학력고사는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연기된 시험 당일 새벽같이 엄마가 날 깨웠다. 전기대 시험 날 고생한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시장에 있어야 할 시간에 김밥 두 줄과 사이다를 사 가지고 아들을 깨우러 집에 오신 것이다.
평소 낮에 버스를 타보면 목적지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리기에 조금 서둘렀다. 아침으로 김밥을 나눠 먹고는 버스정류장으로 나섰다. 새벽 6시 30분이었다. 그날은 정말 추웠다. 잠시 서 있었지만, 손발이 오들오들 떨려왔다. 다행히 버스가 금방 와주었다. 시험 잘 보라는 엄마를 뒤로하고 난 버스에 올랐다. 새벽 시간에 버스를 처음 타본 난 불현듯 뭔가 잘못되어 감을 느꼈다. 버스는 승객이 없는 빈 정류장들을 빠르게 지나갔다. 도착할 때까지 거의 서질 않았다.
7시 5분. 학교 앞에 도착한 시간이다. 교문은 아직 닫혀있었다. 늦어서 못 들어 갈뻔한 전기대 때와는 다르게 너무 빨리 와버려 갈 곳이 없었다. 설상가상 너무 추운 날이었다. 추위에 떨던 나는 어디선가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들었다. 홀린 듯 그곳으로 향했다. 좁은 통로 안쪽으로 불이 켜진 카페가 있었다. 다행이었다. 따뜻한 유자차 한잔을 마셨다. 몸이 녹기 시작하니 졸음이 왔다. 이런, 졸았다. 그새 날이 밝아 있었다. 깜짝 놀라 시간을 보니 8시였다. 정신없이 뛰어나갔다.
1교시 역시 국어. 새로 맞춘 안경 렌즈를 깨끗하게 닦고 시험지를 받았다. 그런데 고사실 안이 너무 추웠다.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나왔다. 뒷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감독관에게 춥다고 이야기했다. 잠시 후 들어온 사람이 히터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고장 났다며 지금은 고칠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시험지를 멍하니 쳐다보다 정신을 차리길 여러 차례 반복했다. 망했음을 직감했다.
나의 대학 입시는 한편의 웃긴 시트콤 같았다. 물론 반드시 대학에 들어가야 겠다는 생각없이 치러진 입시였지만, 그 순간들 만큼은 최선을 다했다. 경제적인 문제로 대학을 포기한 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주경야독하던 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세상엔 넘쳐난다. 나역시 힘들더라도 학업을 선택 했으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속에 나의 선택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분명하다.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을 지라도 최선을 다한 삶이었기에 후회는 없다.
현재의 나를, 나는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