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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Jun 15. 2023

이제 불편하기 싫다

글쓴이의 덧붙임 혹은 변명 6


‘집에 돌아온 이후 며칠간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르침을 받아야 할 때 혼이 나고 혼이 나야 할 때 보듬어 주었던 엄마의 방식이다. 이는 나를 두고두고 괴롭히며 혼란스럽게 했다. ’

  - 2차시도 재산탕진 中



  저는 친구들에 비해 꽤 일찍 결혼했습니다. 제 나이 스물다섯에 첫 아이가, 스물일곱에 둘째가 태어났습니다. 남아선호가 분명했던 엄마는 첫딸을 한 번도 봐주신 적이 없습니다. 둘째인 아들은 딱 한 번 봐주셨습니다. 그것도 이틀 동안 말이죠. 평소 아이들을 보러 오신 적도 없습니다. 교회에서 매주 잠깐의 인사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명절을 제외하면 따로 용돈을 챙겨 주지도 않았죠. 그런 저의 엄마를 아이들은 ‘친할머니’라고 불렀고, 외할머니는 그냥 ‘할머니’라 불렀습니다.  


  엄마의 행동은 자주 저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특히 이해되지 않는 것은 가족에게 모질고 다른 사람에겐 한없이 부드럽고 관대하다는 겁니다. 명절 아침이면 식탁 앞에서 ‘머리 좀 잘라라’, ‘옷이 짧다’, ‘이래라’, ‘저래라’ 아이들에게 잔소리합니다. 좋은 기분으로 밥을 먹으려던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 갑니다. 결국 저의 입에서 ‘그만하시라’는 말이 나옵니다. 내 자식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가시 돋친 말이 집안의 공기마저 숨죽이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은 아예 신경 쓰지 않으니 관대해 보이는 것뿐이라고 누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가족에게 모질게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했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일엔 발 벗고 나서 도와줍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몹시 서운합니다. 제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도 별말씀 없으시던 분이 다른 사람의 자녀들은 굶고 있다며 밥을 사 먹이셨죠. 당신의 아들이 밥 먹을 돈이 없어 힘들어할 때도 말입니다.


  '버티면 어른이 된다'에서 언급했듯 친엄마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정말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라 생각했죠. 그런 마음 탓인지 청소년기엔 더 반항적이었고 틈만 나면 집을 떠날 계획을 세웠습니다. ‘에이 설마 엄마의 진심은 그게 아니었겠지…', '네가 오죽했으면…’, ‘그래도 엄마인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저의 행동들이 마치 원인인 듯 본질을 외면하고 있는 상황은 절 더 아프게만 할 뿐이었습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에 대한 생각을 글로 옮기다 보니 마음이 매우 불편합니다. 썼다 지우길 여러 차례. 화도 나고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져 옵니다. ‘내가 이렇게 아팠어요’ 소리치고 싶지만, 깊은 탄식만 남네요.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상처가 저를 아프게 했어도 ‘제가 잘못했어요’로 마무리했던 어린 날의 저. 그것이 순리인 듯 쓴웃음을 지어봅니다. 각자 너무 다른 세상에 살기에, 결코 닿지 않을 진심이지만 이 글을 통해 애증의 엄마에 대한 오뇌를 그만 멀리 떠나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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