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의 덧붙임 혹은 변명 5
‘아이들이 없어졌다. 동이 트기 전이라 밖은 아직 어두웠다. 새벽예배에 다녀온 우리 부부는 덜컥 겁이 났다. 분명 문은 닫혀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中
매사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편인 저였지만 집에 아이들이 없다는 걸 안 순간 멍해졌습니다. 뭐부터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온갖 나쁜 생각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휴대전화를 들어 ‘112’를 누르기 직전까지 숨이 멎고 온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이 다니던 어린이집 원장님의 전화를 받으며 짧고도 길었던 소동은 끝이 났습니다.
가슴 졸였던 부모의 마음과는 동떨어진 고백을 얼마 전 딸에게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새벽녘 어린이집 원장님은 아이들에게 참외를 먹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아빠 엄마가 도착한 겁니다. 자르다 만 참외를 둔 채 할 수 없이 일어난 것이 너무 아쉬웠다는 겁니다. 그 참외가 너무 먹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어이없는 웃음이 났습니다.
잠에서 깬 아이들은 소풍에 못 갈까 봐 가슴 졸였고, 부모는 없어진 아이들 때문에 가슴 졸였죠. 먹지 못한 참외가 자꾸 생각난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나니, 심장이 터질 것 같던 그때의 긴박했던 기억들은 사뭇 진지함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동생을 챙겨 반드시 소풍을 가야 한다는 딸의 행동이 기특합니다. 그 세심함이 예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추억으로 남은 이 사건을 저에게 선물해 준 아이들이 사랑스럽네요.
부모의 입장과 자식의 입장은 이렇듯 다릅니다. 어떨 때는 서로 다른 걸 알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방법대로 상대가 해주길 고집부립니다. 남자와 여자도 각자의 방식대로 사랑하고 표현하는 법이죠. 가까울수록 사랑할수록 더 그런 것 같네요. 돌아보면 저 역시 그랬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애써 설명하며 저의 이기심과 부족함을 가리기 급급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저에게 청개구리 같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이제는 가족과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이상 실수하지 않으려 합니다. 서로의 생각과 감정에 진솔한 자세로 임할 겁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주기 싫었던 겁니다. 제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거죠. 제겐 아니지만 상대에겐 긴박하고 엄청난 사건일 수 있습니다. 물론 좀 피곤하기도 하겠죠. 노력해야겠습니다.
가끔은 왜곡된 기억과 편향된 주장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저의 부족함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가진 지식의 넓이와 인내의 폭, 감정의 표현이 다양하지 못함을 깨닫게 됐죠. 글을 쓰면서 저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내일의 저는 어제의 저와는 달라지고 발전하는 모습이길 애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