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걸음
생애 첫 번째 브런치북을 내어 보면서,
저의 기대는 그저 무언가 찾고 싶었습니다. 내가 잡고 싶지만 닿을 수 도 가질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그것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싶었죠. 하지만, 그저 한풀이 푸념으로 끝나고 말았어요. 물론 이것이 제게 의미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굉장히 의미가 있었어요. 전 그 많다면 많은 시간을 살고도 일어난 일에 대한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를 잘하지 않았거든요. 소소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그런데, 내 삶이 한 걸음이라도 제대로 나아가려면 내가 힘들어하든 감사해하든, 그것의 시발점을 뚜렷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닫게 되었죠. 이 브런치북은 그 사실을 알아가는 첫 번째 러닝이었습니다. 뛰고 있다고 착각한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어요.
지금도 아직도 출발하지 못했지만, 출발선에 설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그 걸음이 지금, 여기였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에필로그까지 13번의 걸음으로 그 출발점에 섰네요. 아직도 무거운 걸음입니다.
가정이 갑자기 휘청이고
가족들은 모두 흩어져 살게 되고
앞은 더없이 어두운데 안개는 짙게 드리우고 있는 삶에서,
이제야... 이제서야...
제가 두려워하는, 그 시발점을 보려 조금 커튼을 움직여 본 것 같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가야 할지, 뒤로 물러서야 할지, 달려야 할지, 눈을 감아야 할지, 눈물 나도록 눈을 부릅떠야 할지... 아무것도 알아낸 것은 없어요. 하지만, 속이 조금 편하게 우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슬퍼할까, 남편이 무너질까... 내가 사라질까... 하는 걱정에 겉으로도 꿈에서도 조차 울지 않으려 노력했거든요.
이 브런치가 저의 첫 의도된 눈물방울들입니다. 이 조그만 방울이 짜기도 짜고 시원하기도 하네요. 사실 분명하게 설명할 길은 없어요. 그저 조금 우는 게 편해질 듯싶어요. 물론 혼자서 말이죠.
어떻게든 벗어날 수 있을까. 벗어나지 못한다면 견딜 수 있을까. 무엇이 날 견디어 나아가게 아니 사라지지 않게 만들어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한 이 짜디짠 눈물들은 이제 조금 익숙해지네요.
짜고 짜서 익숙해지면 저의 매운 순간들을 짠맛으로 싸워 이겨줄까요?
달리기 출발점에 선 저에게, 출발 신호탄 소리가 들려올까요? 들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글을 계속 이어나가려 합니다. 그것이 내 귀를 마음을 열어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저 내리는 비를 맞아 그 비를 내 온몸으로 흘러내릴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나를 회상해보려 합니다.
그것이 다음 브런치북의 플로로그가 되겠네요.
지금의 나는 어떤 조각들이 뭉쳐 만들어졌는지 어렴풋이 아니 희미하게, 아주 두꺼운 시폰 커튼을 통해 보듯 알고 있다. 그 조각들 중하나는 언제나 그 시간, 그곳을 벗어나 더 잘 살고 싶어서 주먹 쥔 손을 펴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구멍 난 양말을 친구들에게 보이는 게 부끄러워 해진 신발을 신고 달려 나왔던 친구의 생일 그날, 도시의 어두운 판자촌 사이 자신의 집을 바라보며 들어가지 못하고 섰던 아이의 꼭 쥔 주먹, 뼈밖에 없던 그 주먹에서 지금의 파란 핏줄이 튀어나와 거친 피부가 여전히 움켜진 주먹이 될 때까지 그 순간들을 기억해내고 싶다. 그러다 보면, 또 어디든 닿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출발 신호탄 소리정도는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보려고 한다.
다음 브런치가 정확히 언제 시작될지 모르지만, 다시 출발선에 서려 곧 돌아오고 싶다.
돌아올게 너에게.
너에게 가장 따뜻해야 할 내가 그렇지 못해서 언제나 미안했잖아.
그게 나여서 그게 너여서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나 보다.
이제 떼어보자 그 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