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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람 Feb 04. 2016

몸이 아닌 다른 물체를 이용한 노래

이츠하크 펄만  Itzhak Perlman / Zigeunerweisen

악기를 연주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사람들은 왜 노래만 부르지 않고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는 걸까?

소리 나는 물체를 이용해 음악을 만드는 건 인간의 본능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어떤 물체든 악기로 만들어 소리를 내는 것도 인간이다.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악기를 통한 음악은 노래보다 감성적으로 조금 뒤늦게 전달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그건 공감에 이르기까지 한 단계를 더 거쳐야 하는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가사가 있는 노래는 언어가 또 다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더 직접적이라고 느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는 인간의 목소리보다 훨씬 감성적인 악기 연주를 만나기도 한다.

언제나 유머러스하고 장난기 넘치는 이츠하크 펄만Itzhak Perlman은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는 1945년 8월 31일,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3년 전에 텔아비브Tel Aviv에서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20세기 가장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라고 평가받는 그는 4살 때 앓은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하다.

언제나 앉아서 연주해야만 하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두산백과에서는 '현란한 기교로 유명하며… 오늘날 바이올린의 주요 레퍼토리를 가장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는 연주자로 평가받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영상 없이 음악만 들어보면 정말 손가락이 꼬이고 팔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가 상상된다. 하지만 막상 영상을 보면, 대가들이 늘 그렇듯이, 이츠하크 펄만은 무심하고 편안해 보인다. 다른 평범한 연주자들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그의 연주에서는 연주자를 볼 수 없다. 오직 음악만 남기 때문이다. 지고이네르바이젠Zigeunerweisen은 물론이고 심지어 재즈까지, 어느 자료를 봐도 마찬가지다. 그게 이츠하크 펄만이 대가로 인정받는 이유다.

https://youtu.be/wEmbFSiJzEQ

Itzhak Perlman / Zigeunerweisen, Sarasate

악기가 자신의 신체 일부인 듯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연주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성대가 다른 물질로 대체되고 확장되어 노래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기술이 뛰어나면 사람들은 놀라움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 수준에서는 감동이 쉽지 않다. 서커스가 예술이 되기 어려운 이유가 그런 거다. 기술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는 거기서 아름다움을 보게 되고,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런 수준에서는 기술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음악만이 우리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악기를 연주한다는 건, 이츠하크 펄만에게는 '또 하나의 몸을 이용한 노래'와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1995년 11월 18일, 뉴욕 링컨센터(Licoln Center) 에이버리 피셔홀(Avery Fisher Hall)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만의 연주회가 있었다.

그의 연주회를 본 적이 있다면, 작은 성취는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았기 때문에 목발을 이용해 걷는다. 무대를 가로질러 한 발 한 발을 느리고 고통스럽게 옮기는 그의 모습은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그는 의자에 도착할 때까지 고통스럽지만 당당하게 걷는다. 그는 의자에 앉아 천천히 바닥에 목발을 바닥에  내려놓고 한 발을 앞으로 다른 발을 약간 뒤쪽에 놓고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바이올린을 집어 들어 턱에 가져다 댄 다음 지휘자에게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보낸다.

그가 의자에 앉아 자리를 잡을 때까지 관중은 조용히 앉아서 기다린다. 목발을  내려놓을 때, 그들은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가 연주를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 잘못되었다. 처음 몇 마디를 연주하고 나서 그의 바이올린 줄 하나가 끊어졌다. 방을 가로지르는 총소리처럼 큰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가 일어나서 목발을 짚고 다리를 절뚝이며 무대에서 내려가던지, 다른 사람의 바이올린을 빌려서 연주하던지, 누군가 바이올린 줄을  가져다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지휘자에게 신호를 보내서 중단했던 지점에서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그는 전에는 본 적이 없는 열정과 힘과 순수함으로 연주했다.

사람들은 3개의 줄로 협주곡을 연주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다. 나도 알고 여러분도 알고 있지만 이츠하크 펄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즉석에서 원곡을 편곡하고 재구성했다. 그리고 이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를 만들어 냈다. 그의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는 경이로움의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고 발을 구르며 폭발적인 박수가 터져나왔다. 관중은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이마의 땀을 닦고, 바이올린 활을 내렸다.

그리고 조용히 차분한 어조로 얘기했다.

"아시다시피, 때로는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아도, 음악가는 지금 있는 것만으로도 연주해야 합니다."

이 얼마나 강렬한 문장인가! 지금까지 내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 이것은 예술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략)

1995년 휴스턴 크로니클(Houston Chronicle) 기사 발췌

https://youtu.be/GD9D1d1T4WQ

Itzhak Perlman with Modern Jazz Quartet - Summer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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