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람 Feb 18. 2016

불가사의한 평안, 나무 그늘이여

Ombra mai fu / 헨델 G. F. Händel

감정과 음악은 경험적으로 분명한 관계를 갖고 있지만, 그 작용과정은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감정이 극소량의 호르몬에 의한 작용이라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몸 전체와 비교하면 측정하기조차 어려울 만큼의 적은 화학물질이 분비되어 뇌에 작용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 화학물질이 만들어내는 감정을 느끼고 거기에 굴복한다.


아주 가끔은 감정을 다루기도 하지만 대체로 인간은 감정에 휩싸이고 지배받는다.


그런데, 모든 감정을 잠잠하게 만들어주는 음악도 있다.

어떤 사람은 하드락을 들으면서, 어떤 사람은 포크 음악을 들으면서 스스로의 감정이 잦아드는 걸 경험한다. 개인적인 차이가 분명한 이런 음악과 감정의 관계에서, 특이하게도 대부분의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는 음악도 있다.

이탈리아어 제목의 아리아 Ombra mai fu는 '나무 그늘이여'로 알려져있다.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Xerxes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오페라 <Serse>헨델Georg Friedrich Händel의 작품이다. 독일인인 헨델은 영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그곳에 정착해서 작품 활동을 했다.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 Serse의 주인공 크세르크세스 1세의 역할은 원래 카스트라토castrato(거세한 남자 가수)를 위한 배역이었다. 카스트라토가 사라진 현재는 소프라노 혹은 카운터테너counter tenor(가성으로 여성의 음역을 노래하는 남성-테너)가 노래한다. 위대하고 잔인한 전사로 알려진 인물이 무대에서는 여성의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것이다.


현대적인 드라마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위대한 전사의 사랑을 소재로 한 이 오페라는 다른 바로크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다소 지루하다.


이 노래 Ombra mai fu는 가사가 아주 짧고, 몇 번을 반복한다.


Ombra mai fu

di vegetabile

cara ed amabile,

soave più


3분 이상을 연주하는 이 노래의 가사는 위의 4줄이 전부다.


그리운,

사랑스럽고 다정한 나무 그늘,

예전엔 이렇게 아늑하지 않았지.


아리아 앞에는 2배 길이의 가사로 만들어진 레시타티보recitativo가 있다.


Frondi tenere e belle
del mio platano amato
per voi risplenda il fato.
Tuoni, lampi, e procelle
non v'oltraggino mai la cara pace,
né giunga a profanarvi austro rapace.

내 사랑하는 플라타나스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무성한 잎이여,
너를 위해 운명은 미소 짓는다.
천둥, 번개, 태풍이라도
너의 아늑한 평화를 방해할 수 없다,
무례한 바람이 불어온다 해도.


복잡한 관계로 얽힌 사랑의 이야기 속에서 이 노래는 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가사로 어지러움을 유발하고 만다.


그런데, 이렇게 앞 뒤가 맞지 않는 드라마와 가사, 그리고 사실성이 전혀 없는 인물이 나타나서 부르는 이 노래는 듣는 사람을 평화롭게 만들어준다. 감정을 리셋하는 이 아름다운 바로크 음악은 1738년 만들어져서 2016년-현재까지 근 300년 동안 인류에게 평화를 들려줬다.


논리와 현실적인 감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음악의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Andreas Scholl)


Cécilia Bartoli


현대적인 무대로 재 해석한 Opera "Serse"의 무대.


매거진의 이전글 평범한 소리, 그러나 진실한 감동,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