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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람 Apr 22. 2016

아홉 살 육체에 깃든 오래된 영혼의 노래

O Mio Babbino Caro / Amira Willighagen

| 한 번도 노래를 배워본 적이 없다는 네덜란드 소녀


2013년 화면 속의 아미라 빌리하겐Amira Willighagen은 9살이다.

그해 10월에 열린 네덜란드의 오디션 프로그램 Holland's Got Talent에 출연한 이 소녀는 최종 경선으로 직행하는 골든 티켓을 얻었다. 진짜 아홉 살이냐고 묻는 심사위원이 있는가 하면,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다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다음 질문으로부터 듣게 된다.


"누가 이렇게 노래하는 걸 가르쳐 줬나요?"

아미라가 즉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생각에 빠진 듯이 보이자 다시 질문을 한다.

"노래 선생님이 있어요?"

이번엔 바로 대답이 나온다.

"아뇨, 노래는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어요."

객석에서 탄성이 나온다.

"혼자서 배웠다고요? 노래를 듣고 그냥 따라서 한 거예요?"

아미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Amira Willighagen - O Mio Babbino Caro

네덜란드 최대의 공휴일인 퀸스데이Queen's day에 뭘 하면 좋을지 생각하다가, 오빠는 바이올린을 자신은 노래를 부르기로 마음먹고 유튜브를 찾았다. 유튜브에서 찾은 아름다운 오페라곡. 그녀는 바로 따라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아미라가 부른 노래는 푸치니Giacomo Puccini의 오페라 쟈니스키키Gianni Schicchi에 나오는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다. 우리나라 클래식 FM 방송에 5월 8일 어버이날 가장 많이 신청된다는 이 노래는 안타깝게도 아버지를 '협박'하는 내용이다. 물론 오페라의 내용을 보면 이 노래를 부르는 라우레타의 아버지 쟈니 스키키는 다른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사기꾼에 가까운 사람이다. 


O mio babbino caro,
mi piace, è bello, bello.
Vo'andare in Porta Rossa
a comperar l'anello!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난 그를 좋아해요, 그는 멋있어요, 멋있어.
포르타 로사에 결혼반지를 사러 가고 싶어요
Sì, sì, ci voglio andare!
e se l'amassi indarno,
andrei sul Ponte Vecchio,
ma per buttarmi in Arno!
네, 네, 가고 싶어요!
만약 그를 사랑하면 안 된다고 하시면
베끼오 다리에서
아르노 강에 몸을 던질 거예요!
Mi struggo e mi tormento!
O Dio, vorrei morir!
Babbo, pietà, pietà!
Babbo, pietà, pietà!

전 괴로워요, 가슴이 아파요!
오 하느님! 정말 죽고 싶어요!
아빠, 불쌍히, 불쌍히 여겨 주세요!


라우레타가 사랑하는 리누치오Rinuccio와 결혼을 할 수 없다면 다리에서 강물로 뛰어들겠다고 호소 아닌 호소를 하는 이 노래는 연주시간 3분이 되지 않는 비교적 짧은 아리아다. 단막 오페라 쟈니 스키키가 총 연주시간 1시간 정도라는 점과 아리아라고 할 만한 곡이 몇 곡 되지 않는데다가 대부분 3분 내외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한 곡의 아리아는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많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명곡임에는 틀림없다. 게다가 단순해 보이는 선율은 Ab(4)에서 최고음인 Ab(5)까지 한 옥타브를 도약하는 쉽지 않은 진행이 반복된다. 아홉 살짜리 소녀가 동영상을 보고 따라 부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다. 더구나 이 어린 아미라가 '연주'라고 할만한 수준의 노래를 부른다는 건 사실 소설에서나 가능할 것 같다.

O mio babbino caro

많은 관객들 앞에서 노래하는 게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네, 하지만 그다지 많은 청중이 아니라 괜찮았어요."라고 말한다. 아미라는 1년 뒤에 1만 명의 관객 앞에서 노래한다. 그때도 전혀 긴장하지 않는다. 어색한 이탈리아어 발음은 그대로였지만, 음악은 오히려 깊어졌고 표현은 더 자연스러워졌으며, 노래하는 기술은 프로 성악가라고 할 만큼 유려해졌고, 작은 소녀의 표정은 경지를 뛰어넘은 예술가의 모습이었다.

André Rieu & Amira - O Mio Babbino Caro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월츠 음악가 앙드레 류André Rieu가 지휘하는 무대에 나타난 아미라,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객석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영상을 보는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 천재, 천재, 그리고 천재


천재적인 소녀 가수라면 1998년에 영국에서 데뷔한 샬롯 처치Charlotte Church가 원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샬롯 처치 이후 10년이 지난 2007년,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영국의 7살 소녀 코니 텔벗Connie Talbot이 나타나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고, 3년 뒤엔 미국에서 코니 텔벗과 동갑인 10살 재키 에반코Jackie Evancho가 어린아이의 수준을 확실히 뛰어넘는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줬다. 

재키 에반코 이후 다시 3년 만에 네덜란드에서 나타난 아미라는 위에 언급한 3명과는 확실히 다른 점이 보인다. 12살에 데뷔한 샤롯 처치의 목소리는 12살다웠다. 코니 텔벗은 7살 어린 나이로는 놀랄만한 모습이었지만, 감상을 할만한 정도의 높은 수준은 아니었다. 재키 에반코는 뛰어난 음악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지만 어릴 때부터 전문적인 성악 수업을 받았다. 때문에 아미라가 보여주는 모습은 이전에 주목을 받던 다른 천재들과는 조금 달라 보인다. 


그건 마치 지구의 시간에 맞춰서 조금씩 진보해 나가는 영혼들의 세계와 그 계획을 보는 것 같다. 우리의 시간이 미래로 흘러가면서 더 어리고 더 성숙한 천재들을 볼 수 있게 되는 게 우연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과거에도 이런 종류의 천재들이 있었다. 모차르트를 선두주자로,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많은 어린 천재들이 뒤를 이어갔다. 하지만 무대 위의 천재들은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가난과 불행 속에 살다 간 모차르트만 생각해 봐도 공감이 된다. 어떤 부모가 이런 장벽을 알면서 어린 자녀의 천재적인 재능을 후원해 줄 수 있을까? 물론 어린 자녀에게 그런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도 상당한 안목과 관심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세상이 달라졌다. 과거와는 다른 환경 속에서 천재들은 사회의 인정과 관심을 받으며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이런 재능을 알아보는 부모와 약간의 격려만 있으면 그들은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데 별다른 장애가 없다. 장애는커녕 유튜브 같은 강력한 도구까지 존재하는 세상이다.


그리고 이제 점점 더 어린 천재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의 재능은 성인을 거의 능가하는 수준이다. 발성 기술이나 프레이징, 해석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한 곡의 노래로 관객들의 자아와 영혼에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진짜 재능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아미라를 포함해서 위에 언급한 4명은 확실히 성인 예술가들을 능가했다고 할 만하다.


천재, 그들이 세상을 바꾸는 법


아미라가 노래를 시작하면 그녀의 목소리는 결코 아홉 살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카메라가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나면 적어도 10대 후반, 아니 20대 중반의 젊은 성인의 모습이 보인다. 더구나 그녀의 표정은 거장의 그것이다. 


노래를 하는 동안 그녀의 눈은 우리가 보는 것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신체가 아니라 영혼을 보는 것 같다. 이런 점은 대부분의 어린 천재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이다. 


천재들은 세상을 바꾼다. 그건 과학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또 작곡가들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영혼이 노래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정말 소중한 게 무엇인지를, 진짜 감동을 통해 삶이 진정 어떤 의미인지를 느끼게 된다. 그건 아는 것과는 다르다. 


설명이 필요 없는, 혹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하는 걸 느끼는 것이다. 언어의 한계를 넘는 이런 감동의 순간을 무대 위의 천재들이 만들어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들으며, 자신의 영혼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환희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 눈물은 내가, 그리고 당신이, 몇 살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내면에는 아홉 살 소녀의 몸 안에 있는 것과 같은 영혼이 살아 있다는 메시지다.


코니 텔벗Connie Talbot 영상 

Connie Talbot - Heal the World



재키 에반코Jackie Evancho 영상

Jackie Evancho/O Mio Babbino Caro,  Contest(2009)
Jackie Evancho first audition Americas Got Talent full with result and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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