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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Mar 25. 2021

일 하지 않는 엄마에게 돈, 이란

초심을 다잡아주는 엄마의 요술봉

 아……. 수강료가 너무 비싼데. 이 돈이면 오늘 저녁 고기 먹을 수 있을 텐데, 그냥 나 혼자 해 보지 뭐. 별거 있겠어?

클래스를 시작하며 바닥까지 내려갔던 자존감을 되찾았고 나만의 육아법을 찾아가며 아이들과의 관계도 많이 좋아졌다.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 졌고 조금 더 나를 발전시키고 싶었다. 새로운 수업을 알아볼 때마다 걸림돌이었던 것은 바로 돈이었다.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월급이 없었고, 월급이 없었기 때문에 남편 돈이 우리 집 살림의 전부였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도 이상하게 남편 눈치가 보이고 부탁을 해야 할 것 같은 상황이 자존심 상했다. 평소에 남편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라고 얘기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사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인데도 내가 돈을 벌고 있지 않으니 그 돈을 나를 위해 쓰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현아, 이거 생물낙지인데 혼자 해 먹을 수 있겠어?”

 “뭐 해서 먹어요?”

 “그냥 탕탕 쳐서 참기름이랑 조물조물해서 탕탕이 해서 먹어.”

 “그냥 썰기만 하면 되는 거네! 쉽네! 알겠어요. 잘 먹을게요 고마워 엄마!”     

 낙지 탕탕이는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날 우여곡절 끝에 낙지를 그냥 데쳐서 먹고 아이랑 놀고 있는데 연우와 실수로 부딪혔다. 그리고 엉엉 울었다. 


 “엄마, 미안해요. 많이 아파?”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엉엉 엉엉 낙지가 너무 불쌍해.”     

부딪힌 게 아파서 운 것이 아니었다. 낙지한테 미안해서 엉엉 울고 싶었는데 마침 아이와 부딪힌 것이었다. 살아있는 낙지를 요리한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경험이었다. 그날 잠 못 이루고 밤새 ‘채식’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다 우연히‘채식 베이킹’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첫째가 아토피가 있어서 버터랑 설탕이 들어가는 기존 베이킹 레시피는 피부에 맞지 않았다. 건강한 간식을 내가 직접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만들다 보니 아이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그런데 맛도 좋고 아토피에도 좋은 건강한 베이킹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당장 배우고 싶어 졌다. 블로그에 적힌 마감된 수업 공지 글에 수업 문의글을 올렸다.     


'선생님, 채식 베이킹을 배워보고 싶은데 언제 새로운 수업을 모집하실까요?'

'아, 가장 빠른 수업은 다른 곳에서 특강으로 하는 수업이 있는데 알려드릴게요.'

'혹시 수업료는 얼마일까요?'


알아보니 수업료도 생각했던 가격 정도였고 무엇보다 원하는 걸 배우면서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남편에게 수업에 대해 얘기할 때도, 수업을 들으러 가는 마음도 가벼웠다.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것이다.’라는 이유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콩비지로 채식 베이킹을 연구하는 선생님께 어떻게 이런 베이킹을 연구하게 되셨는지 물었더니 갑상선 암으로 몸이 많이 아프셨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건강한 것을 찾아먹게 되었고, 좋은 재료로 만들어 간식도 되지만 끼니도 채울 수 있는 건강한 베이킹을 연구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열정과 에너지가 대단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깨끗하고 건강한 베이킹이라는 자부심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졌고, 그 에너지를 이어받아 나도 배운 것을 응용해 다양한 빵을 만들어 보았다.

이렇게 멋진 클래스를 듣고 나면 내가 진행하는 클래스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물론,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찾아서 배울 수 있는 게 많아진 요즘이지만 직접 실습을 하면서 모르는 것은 바로 물어보면서 강사에게 직접 배우는 클래스는 배움의 깊이도 깊었다. 돈을 내고 배우는 수업인 만큼 수업시간 1분 1초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았다. 더 귀를 쫑긋 세우고 더 많이 물어봤다. 수업료를 낸 만큼 수업시간에 많은 것을 얻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결혼 전에는 수업료를 내면서 귀찮으면 수업을 빼먹기도 했고, 우선 재료를 잔뜩 사두고는 조금 하다가 말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돈과 시간을 들여 무엇인가 배운다는 것은 정말 간절하게 내가 그것을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엄마가 되어서 눈치 보여 배우고 싶은 것도 마음껏 배우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정말 내가 배워보고 싶은 것인지 조금 더 깊이 고민했고 결정했다면 그만큼 수업에 임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수업을 듣는 마음가짐과 집중도 자체가 달랐다.         

돈이 없어서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고 있다 생각했지만 이 경험 이후 ‘돈’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돈 때문에 못 배우는 것이 아니라 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정말 배우고 싶은 것인지 한 번 더 깊이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돈’이라는 허들을 넘으면 이왕 넘었으니 최대한 몰입해서 많이 배우기 위해 노력했고, 허들을 넘지 못한 다른 수업들은 아직 내가 그만큼 절실하고 간절하게 배우고 싶은 것은 아님을 의미했다.  

재능기부로 클래스를 운영했던 것도 어쩌면, 나를 위해 돈을 잘 쓰지 못하는 엄마들을 위한 배려였다. 내가 그랬듯이 다른 엄마들도 그럴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클래스를 진행할 때 얼마만큼의 수업료를 내는 것은 클래스를 준비하는 사람도 힘이 나고, 참여하는 사람도 조금 더 집중해서 적극적으로 클래스에 임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내가 원하는 금액으로 시급을 정할 수 있다면 한 시간에 얼마를 벌고 싶으신가요?


그래서 재능기부로 클래스를 운영할 때, 위에 있는 질문을 꼭 넣는다. 비록 직접적으로 돈을 내지는 않지만, 그만큼 귀한 나의 시간을 투자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위 질문에 답변을 들으면 나도 재능기부 클래스지만 허투루 자료를 준비하지 않게 된다. 시급 1억 인 분의 귀한 한 시간을 투자하여 신청한 클래스인 만큼 더 정성스럽게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돈은 그렇게 초심을 다잡게 하고, 클래스를 열심히 준비하게 도와주는 ‘요술봉’이 되었다. 마음이 해이해질 즈음 ‘돈 요술봉’을 뾰로롱 휘두르면 더 절실해지고 열심히 하게 됐다.  요물 같은 ‘돈’을 잘 활용하면 얼마든지 나를 도와주는 도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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