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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Mar 25. 2021

당신만의 클래스를 기다립니다

‘이제 막 작은 그림을 하나 그렸을 뿐인데 이렇게 큰 그림을 어떻게 그릴 수 있지?’     

 까치 호랑이를 그리고 다음으로 그렸던 그림이 ‘모란도’다. 처음 모란도 밑그림을 받았을 때 세로 길이만 60cm가 넘는 그 크기에 깜짝 놀랐다. 이렇게 커다란 그림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났지만 하나씩 선을 그리고 천천히 색을 올리면서 그림이 조금씩 완성되어갔다. 그림을 그리면 그릴수록 이 그림을 그리게 한 선생님의 뜻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실력이기 때문에 ‘모란도’를 그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모란도’에 있는 수많은 잎과 꽃잎을 그리고 칠하면서 선을 그리는 방법과 붓을 다루는 방법을 수없이 연습했고 작품을 끝까지 완성하는 끈기와 인내까지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민화의 꽃은 바림 이라고 한다. 바림은 밑 색을 칠하고 그 색보다 조금 진한 색을 넓게 펼치는 민화 색칠 기법이다. 쉽게 말해 그러데이션을 넣는 과정인데 큰 모란도의 잎 하나하나 꽃잎 하나하나에 바림을 하다보면 저절로 바림 하는 능력이 키워졌다. 끊임없이 반복하는 작업 속에서 지겨움을 느낄 법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고요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명상을 하는 듯 붓을 잡고 색을 하나하나 올리게 되었다.     

 이렇게 모란도를 완성하고 나자 어떤 그림이든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모란도 다음으로 그린 그림은 신사임당의 8폭 초충도 이었다. 초충도에 있는 곤충과 풀꽃을 그리며 작고 섬세한 부분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관찰하고 스케치를 하는 것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 이렇게 밑그림을 대고 따라 그리는 과정이 좋았다. 다 그리고 나면 그럴듯한 멋진 작품이 완성되니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밑그림을 따라 그리는 민화를 창의력이 없는 그림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 창의력이 없는 그림일까? 창의력 이라 하면 어디에선가 갑자기 생각나는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창의력은 기존의 것을 적극적으로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이를 통해 얻어진 사실들을 새롭게 결합시키는 능력이다. 기존의 것을 다른 각도에서 관찰하여 비틀어 생각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 창의력이다. 창의력을 키우려면 사고하는 능력을 키워 줘야할 것 같지만 그 보다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다양한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관찰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민화를 모사하는 그림이라 하여 창의력이 없다고 하지만 모사를 통해 민화에서 소재를 어떻게 다루는지 다양한 색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관찰하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이렇게 쌓은 관찰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새로운 그림을 창작하게 되는 것이다. 

        

민화 클래스를 시작하고 다시 민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처음이라 많이 어색하고 서투르지만 그렇게 그린 그림이 모란리스이다. 매번 밑그림을 대고 그리는 그림만 그리다가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나니 그림의 수준과 관계없이 정말 기뻤다. 모란 꽃송이를 어떻게 그리는 것이 자연스러울지, 여기에는 어떤 각도로 꽃을 그려야 전체적으로 잘 어울릴지 생각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그림을 완성했다는 사실에 창작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클래스를 시작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누구나 하는 민화 클래스와 다름이 없었지만 거기에 차츰 나만의 이야기와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클래스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을 돕고 자존감을 되찾으면서 기존에 해 왔던 클래스 방식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의미를 담아 새로운 클래스를 창작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모란도를 칠하듯, 끈기있게 하나하나 나의 그림에 차곡차곡 색을 올렸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그 스토리를 디자인해 보면 각기 다른 클래스를 기획할 수 있다. 주제는 같을지라도 그 속에 담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결국, 각자 자신만의 클래스가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그림도 똑같은 그림은 없다. 틀린 그림도 없다. 나의 창의력으로 나만의 그림을 그린다. 그렇게 하나씩 나만의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들 만큼 세상에 다양한 클래스가 ‘창작’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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