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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Apr 11. 2021

사치부릴 돈은 없지만, 취미생활은 하고 싶어

아이 둘을데리고 클래스를 시작한사연

손으로 하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결혼하기 전에 참 많이 배우러 다녔다. 여행이나 필요한 물건을 사는 데 돈을 쓰기보다 수업료로 돈을 훨씬 많이 썼다. 캘리그라피에 빠져서 온갖 재료를 사 모으고 연습장 한 권에 붓펜으로 글귀를 써서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POP가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수강 신청을 하고 열심히 따라 그리기도 했다. 코바늘 수세미에 한참 빠져서 수세미를 원 없이 뜬 적도 있었다. 코바늘로 패턴을 만들어 이어 붙이면 예쁜 인형도 되고 넓은 담요도 만들 수 있어서 한참 코바늘과 실을 사서 모으기도 했다.     


아이를 낳기 전, 손으로 하는 것은 뭐든 배웠다. 우쿨렐레를 배우고, 코바늘로 직접 뜬 패턴을 이어 인형을 만들기도 했다.

그때그때 내 관심사인 것들을 하나씩 해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씩 늘어 가면 갈수록 ‘나’라는 존재가 업그레이드되는 것 같아서 좋았다. 결혼하기 전에는 내 월급이니까 마음껏 나를 위해 투자할 수 있었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내 월급이 없다 보니 내 마음대로 나를 위해서만 쓰는 게 불편해졌다. 

    

이사 때문에 집 안 구석구석에 쌓여있던 짐 들을 정리했는데, 먼지가 뽀얗게 앉은 화구들을 발견했다. ‘이게 언제 적 거야!’ 반가운 마음과 잊고 있던 그때 그 감각들이 떠올랐다. 한 시간 넘도록 붓에 물감을 칠하고, 섞고, 물에 붓을 닦아내면서 색을 섞다가 드디어 원하는 색감이 나왔을 때 기쁨에 겨워 눈물까지 찔끔 났던 날들, 함께 그림을 그리는 분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을 그리던 시간들, 작품이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마음이 뻑적지근 벅차오르던 순간들, 아이들을 키우며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가슴은 그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음속에 살랑살랑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은 마음이 불었다.    

 

집 근처에 민화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알아보면서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 이어졌다. 하지만 아직 엄마의 손이 많이 필요한 두 아이를 가정보육하는 상황에서 집을 나가기 어려웠던 것은 물론이고, 아이 물건을 사면서 지출이 많아지자 나를 위한 돈을 쓰기가 아까웠다.     


그렇게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일상을 살아냈다. 조금이라도 살림을 아끼고 싶어서 맘 카페에서 값싸고 상태가 좋은 중고물품을 찾아보고는 했는데 평소에 눈에 띄지 않았던 글이 눈에 띄었다. ‘엄마표 홈 클래스’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었다. 게시판에 적힌 글을 보니 집에 사람들을 초대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는 수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내가 앉아있는 식탁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이 공간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매번 글을 읽기만 했던 맘 카페에 글을 하나 써서 올렸다. 이사 준비를 하다가 민화 화구를 발견한 일, 혹시 가볍게 민화를 체험해 보고 싶은 분들이 있는지, 집에 아이 둘과 함께 있어서 화실처럼 아늑한 수업은 어렵다는 이야기를 적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 하셨고 집으로 초대를 하게 되었다. 기다리던 민화 수업 날이 되어 그림을 그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품이 완성되면 이 그림이 정말 내가 그린 게 맞는지 놀라며 좋아하시는 모습에 내가 다 기뻤다. 내 손으로 완성한 작품 위에 이름 석 자를 적으면서 마무리를 할 때는 집안 가득 웃음꽃이 피었다. 그 꽃이 나의 마음에도 아이들의 마음에도 번졌다.     


집에서 온종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집’은 ‘나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공간’, ‘내가 무엇이든 다 정리하고 치워야 하는 공간’이었다. 이 안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하루를 보내다 보면 철창 없는 감옥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도전을 시작하면서 ‘집’이라는 공간이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공방’이 되었다. 신기하게 집에 아이들은 그대로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시작하니 같은 공간이 전혀 다른 공간으로 바뀐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수업을 하면서 인연이 이어진 엄마들과 ‘민화테라피’라는 이름으로 마을 동아리를 결성했다. 그곳에서 4인용 식탁보다 훨씬 넓은 공간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활동비를 지원받아 원하는 재료를 마음껏 살 수 있게 되었다. 기관에서 주최하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행사 기획과 진행까지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사치 부릴 돈은 없지만, 취미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지역 도서관과 문화공간들은 그야말로 보물창고였다. 다양한 클래스에 무료로 참가하거나, 재료비 정도만 내고 참여해 다양한 강사들의 클래스를 경험하며 나만의 클래스를 기획해 볼 수 있었고, 공간과 재료비에서부터 시작해 함께할 사람을 모집하는 일까지 한 번에 해결되었다.     


집에 사람을 초대해 클래스를 시작하면서 민화를 함께 그리는 그림 친구를 만나기도 했지만, 어떻게 이런 클래스를 열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좋아하는 취미로 사람들도 가르치는 모습이 부럽다는 이야기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보다 더 훌륭한 능력을 갖춘 분들이 많았다. 마음속으로만 자신의 클래스를 꿈꾸며 시작할 용기를 못 내는 분들이었다.   

   

그런 분들께는 내가 클래스를 시작하게 된 사연과, 왕초보가 왕왕초보를 알려주는 요즘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묵히기 아까운 재주로 꼭, 클래스를 시작해 보시라고 응원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내가 즐겼던 혹은 즐기고 있는 취미로 충분히 클래스를 시작할 수 있고 소소하지만 노력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도 클래스의 매력이다. 그뿐만 아니라 클래스를 통해 나만의 콘텐츠와 브랜드의 기반을 다질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집이라는 공간이 온라인으로 연결돼 거리가 먼 지역에서도 방구석 1열에서 클래스를 열고, 클래스에 참여할 수 있다. 이제 다양한 플랫폼에서 누구나 자신의 노하우를 팔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내 마음을 따듯하게 했던 취미들을 혼자만의 추억으로만 담아두지 말고 다른 이들과 나누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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