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그 삶을 살기로 한다

으이그, 엄마가 이렇게 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by 김나현 작가

“이 아이는 아들인 게 틀림없어!”

“왜?”

“지금 내 꼴 좀 봐.”

아이가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것처럼 내 몸의 반응도 계획처럼 되지 않았다. 그 아이가 아들일지 딸일지조차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임신 사실 확인과 함께 휘몰아친 입덧은 이 아이가 아들임이 틀림없다고 확신하도록 했다. 배 속의 아이는 첫째만큼이나 강력한 존재감을 뽐내며 엄마 몸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봤다. 심지어 물 한 잔도 얌전하게 찔끔찔끔 마셔야 탈이 나지 않았다.



“또 아들이면 속상하지 않겠어? 첫째가 아들이니까 둘째는 딸이면 좋잖아.”

“아니, 나는 아들이 좋아. 둘째도 아들이면 좋겠어.”

“왜?”

“그냥, 여자의 삶은 너무 고달프잖아.”

“지금 자기도 그렇게 고달파?”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남편이 진짜 몰라서 묻는 건지 아니면 ‘아니야, 나는 그래도 행복해’라는 식의 대답을 듣고 싶어서 묻는 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그 순간만큼은 입덧이라는 상황이 너무 극단적이어서 고달프다는 대답밖에 생각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설상가상 첫째가 피부가 워낙 약해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끼고 있었던 터라 낳은 아이와 배 속의 아이 둘을 같이 케어해야 한다는 것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아니다, 어쩌면 첫째 덕분에 둘째의 입덧을 견뎠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필요하다는 오빠의 격렬한 몸짓이 술을 잔뜩 마신 다음 날의 숙취 같은 입덧을 버티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힘들다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 속이 울렁거려서 더 힘들었다. 차라리 몸을 움직이는 편이 나았다. 일부러 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 수업을 다녔고 연우 친구 엄마들과 조금 먼 거리로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다니기도 했다. 입덧 때문에 힘든 날들이 이어졌지만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아나갔다. 얼린 포카리스웨트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녹여 먹으면 그나마 속이 좀 편안해진다는 것을 알아냈고, 조금만 음식을 먹어도 속이 울렁거릴 때면 남편에게 등을 두드려달라고 했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남편에게 등을 들이밀면서 폭풍 같은 입덧 시기를 살아냈다. 그러다 보니 둘째가 생긴 지 한참 지났는데도 태명도 짓지 않은 채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둘째 태명도 아직 안 지어줬네.”

“이렇게 등을 두드려주고 있으니까, 토닥이 어때?”

“와, 진짜 신기하다. 나도 그 생각 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첫째는 나름대로 정성스럽게 의미를 담아서 튼튼이라고 지었는데, 둘째는 너무 막 지었나?”

“아니야, 토닥토닥하는 느낌이 좋아. 뭔가 위로해주는 느낌이잖아. 엄마를 토닥여주는 아들이라니 생각만 해도 스윗한걸!”

그렇게 입덧을 이겨내고 있을 즈음이었다. 정기 검진일이 되어 병원에 갔더니 오늘 성별을 알 수 있는 날이라고 하셨다. 보나마나 아들일 텐데 뭘 검사를 하나 싶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두근거렸다.

“산모님, 아들일 것 같아요, 딸일 것 같아요?”

“아마 아들일 것 같아요.”

“왜요?”

“첫째 때 입덧을 엄청 심하게 했는데 지금 둘째도 장난 아니거든요.”

“아, 첫째가 아들이에요? 그럼 더 잘됐네!”

“네? 뭐가요?”

“둘째는 딸이에요. 아들 하나, 딸 하나. 완전 백 점짜리 엄마네요!”

워낙 아들이라 확신해서였는지 딸이라는 소식이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다. 늠름하게 커서 엄마를 토닥여주는 아들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엄마를 토닥여주는 딸의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도 이 아이는 아들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던 날, “축하합니다. 예쁜 공주님이에요”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아, 내가 진짜 딸 엄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복실에 누워서 앞으로 그 아이가 경험할 일들을 떠올리니 그저 마음이 먹먹해졌다.



“어때? 좀 괜찮아?”

“아이는 어때요? 피부는 괜찮아?”

“응, 피부 완전 좋더라. 막 털도 있어.”

“털? 어찌 됐든 다행이네.”

“아기 사진 보여줄까?”

“어디 봐요.”

첫째가 피부가 안 좋아서 둘째가 딸이라는 소식에 부디 피부가 좋기를 바랐는데 감사하게도 둘째는 피부가 좋았다. 분만실에서 제대로 보지 못한 아이의 얼굴을 남편의 휴대폰 화면으로 처음 확인하는데,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우리 딸 맞아?”

“아, 인큐베이터 들어간 건 잠깐 상태를 살펴보느라 그런 거래. 걱정 마.”

“아니……. 너무 못생겼잖아! 진짜 우리 딸 맞아요? 왜 이렇게 못생겼지?”

“응?”

아이의 모습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막 출산한 엄마가 할 말은 아니었다. “아, 예쁘다. 진짜 우리 딸 맞지? 엄마가 되다니! 정말 행복해!” 같은 말을 하는 것이 ‘보통’의 상황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찍어온 사진을 보니 정말 못생겼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첫째가 워낙 작고 이목구비가 뚜렷했던지라, 상대적으로 더 크게 태어났고 양수가 충분했던 둘째는 못생겨 보였던 것 같다. 출산했다는 소식을 사진과 함께 가족들에게 전했다. 사진을 보내면서도 ‘혹시 아이가 바뀐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구, 복덩이네!”

“엄마, 진짜 못생겼지? 누구 닮은 거지?”

“그런 소리 하지 마. 첫째가 워낙 작게 태어나서 그래. 아기들은 원래 막 태어났을 때는 다 저렇게 생겼어.”

“그래요?”

‘정말 그런 걸까?’ 첫 아이의 경험이 나의 기준이었다. 초음파 사진을 보면서 첫째와 닮은 이목구비가 또렷한 신생아를 기대했던지라, 출산 후 아이의 모습을 보고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즈그 엄마 어렸을 때랑 똑같아.”

“정말?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라고 생각했던 것이 점차 ‘말이 돼’로 바뀌어갔다. 태어났을 때 외모에 대한 기대가 낮았던 탓인지 크면서 유독 예뻐 보이는 둘째 딸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하는 행동도 어쩜 그렇게 아들과는 다른지, 애교 섞인 말투며 안았을 때 착 감기는 것 하며 전부 사랑스러웠다.



“은수는 진짜 내 딸 맞는 것 같아.”

“왜?”

“웃는 입이 진짜 똑같거든.”

잘 시간이 되어 첫째와 둘째 사이에 누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일 무얼 할지 꽁냥꽁냥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낮잠을 자지 않는 첫째가 먼저 잠이 들었다. 아직 잠들지 않은 둘째를 꼭 안고 “엄마는 은수가 좋아!”라고 속삭이고 아이의 얼굴을 보면 마주치는 눈빛에서 첫째 때는 느낄 수 없었던 묘한 심장의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그리고 씩 웃는 미소에서 나를 본다. 내 품속으로 파고드는 딸을 꼭 안으면 아이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준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저녁, 딸이 두드려주는 토닥임에 고단함이 싹 녹아내리고는 했다.



“그런데, 자기 그거 알아?”

“응? 뭘?”

“자기랑 은수랑 웃는 입만 똑같은 게 아니라 울 때도 똑같아. 특히 입 모양이.”

“진짜? 이렇게?”

“응! 맞아, 정말 똑같아.”

문득 자꾸만 나랑 똑같다는 이 사랑스러운 존재의 앞날이 그려졌다. 어떻게 학창 시절을 보낼 것이며 어떤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할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이 아이의 삶이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져서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오곤 했다.(아! 어쩌면 결혼을 안 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면 어린 나이에 결혼하려는 나를 보고 걱정하시던 엄마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 걱정하지 말아요. 나도 엄마처럼 살 거야! 일찍 결혼해서 아이도 일찍 낳고 나중에 내 몸 편하게 살래!”

“이그, 이년아. 그런 말 마라. 지금 보기에는 편해 보여도 이렇게 되기까지 쉬웠는 줄 알아? 그리고 자식들이 다 컸어도 그게 편한 게 아니야. 하긴, 아무리 이렇게 말한다고 알겠어? 네가 엄마가 되어봐야 알지.”

그때 엄마가 말했던 ‘이렇게 되기까지’라는 말의 무게를 아이를 낳고 키우는 지금에서야 조금 알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며 문득, 어린 시절 마주했던 엄마의 모습을 나에게서 발견한다. 정말 내가 말했던 대로 나는 그 누구보다 우리 엄마처럼 살고 있는 중이다.



만약 나를 닮은 너의 삶이 나의 삶과 같다면, 그래. ‘이렇게 되기까지’ 조금 더 쉽게 살아보련다. 네가 살았으면 하는 그 삶의 모습을 내가 먼저 살아보기로 한다. 그럼 네가 ‘엄마처럼 살 거야’라고 말했을 때, 웃으며 ‘그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엄마처럼만 살아’라고 말할 수 있도록.




(((❣)))

브런치 스토리에 썼던, '진짜 내 딸 맞아요?' 의 일부가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자존감 수업'의 한 꼭지가 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nahyeon096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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