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 위에서 만난다

나in나 essay 8

by 나in나


걷다 보면 걷는 사람들을 만난다. 한 사람 한 사람 걷는 이유와 종착지가 다르다. 나처럼 무심코 걷는 사람, 체력을 위해 걷는 사람, 누군가와 함께 걷는 사람,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는 사람. 나와 다른 곳에서 출발하여 다른 길로 걸었지만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결국 만나게 되는 아담한 도시,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길에서 마주하는 것으로 서로의 얼굴을 기억하는 작은 동네에 살고 있다.




자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조성된 산책로를 선호하지만 내가 걷는 길은 좀 다르다. 비포장 도로에 자칫하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 있는 불편한 길이다. 문득 한 번 더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길이다. 가끔 궁금해지고 왠지 끌리는 그 길이 좋다. 그곳은 일상적인 활동을 하며 걷는 길이 아니다. 익숙한 골목이나 대로가 아니다. 일부러 찾아가야 걸을 수 있는 좁은 길이다. 도시 안에서도 조금 동떨어져있다.


일상을 보내며 도시를 걸으면 여기저기에서 예기치 않은 상황이 불쑥 튀어나와 온갖 긴장감이 맴돈다. 자잘한 순간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잘 살펴보지 않고 길을 건너거나 인도를 걸으면 위험하다. 귓가에는 끊이지 않는 소리들이 스쳐간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반면 내가 선호하는 길은 그저 고요하다. 실잠자리의 날갯짓이 크게 들리고, 풀잎 움직이는 소리에도 개구리가 뛰는 것을 알 수 있다. 철 따라 달라지는 풍경, 나무, 야생화를 만나며 바람을 따라 그저 걷기 좋은 곳이다. 거리는 얼마 차이 나지 않지만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하다. 잠시 멈추어 서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누군가의 눈치를 볼 일이 없다. 오롯이 나의 공간인 듯 한가로움이 묻어나는 곳이다. 가만히 냇물 안을 들여다보며 물소리를 듣기도 하고, 풀밭에 앉아 네 잎 클로버를 찾기도 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개미를 관찰하기도 한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의 구름이 호기심 가득한 상상을 펼치게 해, 몇 번이고 보고 또 보고 흩어져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서있을 때도 있다. 꽃의 꿀을 찾아다니며 윙윙대는 벌들을 따라 걸어보기도 하고, 날렵하게 달아나는 청설모를 따라 발길을 재촉하기도 한다. 그 길 위에서는 마주치는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잊었던 동심을 되찾기도 하고, 길을 걸으며 옛 기억을 되짚어 보기도 한다. 시간을 거슬러 미래를 꿈꾸기도 하고 과거의 기억들에서 해방되기도 한다.


걷는 동안에는 비를 피하지 않고 추위를 피하지 않으며 바람과 눈도 기꺼이 만난다. 그래서일까. 걸으면 담대해진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의지가 샘솟는다. 강해진 나를 느끼게 된다. 그 길 위에서 나를 만난다. 길을 걷는 그 과정에서 어떤 것과 마주했느냐, 무엇을 느끼고 깊이 생각했느냐에 따라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나를 만나게 된다.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정신적 육체적 일깨움으로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품고 있던 불안과 고뇌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순간이다. 자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여유를 준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한다. 불안과 고뇌를 치유해 준다.


길을 오갈 때 멀고 가까움, 좋고 나쁨은 물리적인 거리보다 정서적 느낌과 체력의 여하에 따라 달라진다. 함께 걸을 때 걷는 사람의 정서에 따라 길의 객관성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여행을 할 때 각자의 피곤함, 즐거움, 한가함의 정도에 따라서 아직도 가야 해? 거의 다 왔네? 벌써 다 왔네? 하고 다르게 느끼는 것과 같다. 내가 걷는 불편한 그 길이 짧아서 아쉽고, 벌써 집으로 돌아왔나 싶은 마음이 드는 까닭은 걷는 즐거움이 내 삶의 중요한 행복에 더 가까이 이끌어 주기 때문이리라.




찰스 디킨스는 말했다. '걸어서 행복해져라! 걸어서 건강해져라!'

나는 말한다. "길을 걸으며 건강하고 행복한 자신을 만나라! 그 길 위에서 자신의 길을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