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in나 essay 23
차갑지만 기분 좋은 바람이 스쳤다. 며칠 어두웠던 잿빛 하늘이 밝고 따사로운 햇살을 가득 품었다. 눈을 감고 황금빛 햇살을 맞으며 숨을 들이켰다. 온몸이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 부풀어 올랐다. 파란 하늘 어디로든 둥둥 떠다닐 것처럼. 한결 가벼워진 몸을 일으켜 세웠다. 더 밝고 강한 빛은 나를 이끌었다. 슬며시 베란다 문을 열었다.
베란다에는 크고 작은 식물들과 장을 봐 온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정신이 번뜩 들었다. 식물들도 나도 물건들도 원하지 않는 환경이었다. '한동안 바빴다는 거 알잖아......' 민망함에 핑계를 댔다. 하지만 모면할 수 없었다. 구석에 놓인 하얀 부직포 가방 하나가 나를 질책했다. 못 본 척 눈을 돌렸지만 뜨끔했다. 제법 내려앉은 먼지를 보니 질책받아 마땅했다. '나답지 않게 왜 그랬을까......' 회심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불필요한 물건을 산 것은 아니잖아. 여분으로 산 것이고 조만간 교체해서 사용할 거였는데 뭐. 그래서 그동안 여기 둔 것이고......'
평소처럼 곧바로 정리하지 않았다는 것은 팩트(fact)였다. 수없이 베란다를 오가면서 방치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니.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지......'
더욱 강해진 햇빛이 베란다에 가득 찼다. 구석에 있던 하얀 부직포 가방을 집어 들었다. 지퍼를 열고 하얀 이불을 꺼냈다. 날이 좋으니 세탁하여 마르면 사용하던 이불을 걷어내고 교체할 셈이었다. 언제나 새것은 설렘을 느끼게 한다. 고르고 골라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찾았을 때, 내 곁에서 쓰일 때 뿌듯하고 보기에도 좋다. 새 이불은 햇빛을 받아 더 하얗게 눈 부셨다.
설렘은 잠시, 낯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우리 집의 냄새는 아니었다. 어디서 나는 건지 냄새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종종 이웃집에서 풍겨오는 각종 음식 냄새, 세탁세제 냄새는 익숙해지고 있다. 분명 이웃집은 아니었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냄새인가 싶어 창문을 열고 코를 킁킁댔다. 아니었다. 창을 닫고 나니 다시 냄새가 느껴졌다. 불쾌한 냄새에 질끈 감은 실눈이 새 이불을 지목했다. 새 이불은 말이 없었다. 범인이었다.
'뭐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얀 이불을 세탁기에 넣지 못하고 거실로 들고 갔다. 이불을 펼쳤다.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내 눈을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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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다음 화 "좋은 게 좋은 거야(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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