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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굴씨 Aug 14. 2023

모닝 메뚜기 한 개 하실래요?

곤충으로부터 사람 5.




 휴일 아침, 달콤한 늦잠에 빠져있는 아들 대신에 부스스한 머리를한 남편이 채집통과 망을 들고 나간다. 180센티가 넘는 거구에 검은색 우의를 걸쳐 입으니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모습이다. 며칠째 비가 온 탓인지 대빵이 먹이 사냥에 계속 허탕을 친 아들은 잠들기 전까지 걱정을 내려놓지 못했다. 아들을 향한 아비의 사랑은 거센 비를 뚫고 풀벌레 몇 마리를 기필코 잡아 오게 하는 힘을 가졌나 보다. 

 사마귀 먹이용 밀웜이나 귀뚜라미를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도 있다. 다행히도 집 근처에 곤충샵이 있어서 천원짜리 한 장을 쓰면 팔딱거리는 귀뚜라미 스무마리를 집으로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수십마리의 먹이를 한꺼번에 들일 경우, 그것들 또한 케이지에 두고 ‘키워서’먹여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벌레를 키우기 위해 다른 벌레를 키워야 하는 너무나도 싫은 일이다!      




사마귀는 살아서 움직이는 먹이만 먹는다. 어쩌다가 생새우나 한우, 연어, 참돔 등의 살을 떼어 주는 경우도 있다는데 우리의 경우는 모두 실패였다. 살아있는 척 흔들어도 보고 소리도 내어보고 별 짓(?)을 다 해 봤지만 어느 놈도 먹질 않았다. 간혹 입을 대고 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수분만 섭취하는 것이라 한다. 그리하여, 아들과 남편은 먹이용 곤충을 잡아 오는 것이 자연스런 일과가 되었다. 게다가 대빵이는 식성이 좋은 암컷이어서 더더욱 먹이 급여에 신경을 써야 했다. 

   


대빵이의 모닝 메뚜기 먹방



 덩치가 6-7센티나 되고, 무리 지어 날아 다니며 작물을 닥치는  대로 갉아먹는 메뚜기는 황충蝗蟲이라 불리는 메뚜기목의 풀무치다. 이것들은 성경에도 재앙으로 기록될 만큼 오래전부터 현재까지도 인간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우리가 근처 숲에서 볼 수 있는 건 이 풀무치는 아니고 섬서구 메뚜기나 벼메뚜기 정도이다. 가끔 덩치가 큰 놈들을 잡아 오면 대빵이는 자기 머리보다 몇 배는 큰 먹잇감을 다리로 움켜쥐고 한 시간여를 음미하며 먹는다. 열심히 갉아먹다가, 쉬면서 다리를 다듬고(사마귀는 스스로를 가꾸는 데 꽤 공을 들이는 곤충이다. 틈날 때마다 다리도 핥고 더듬이도 핥고 바쁘다) 또 야무지게 먹다가 때로 한참을 멍하게 있고, 그렇게 하루의 만찬을 오래도록 성대하게 치른다.     




나도 어릴 적에 메뚜기를 꽤 먹었더랬다. 7, 80년대 태어난 이들은 한번쯤은 곤충을 먹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이후에도 시골에 살았던 사람들은 곤충식, 몇 번은 경험했을 테다. 초등학교 앞 혹은 시장에서 팔던 번데기는 그야말로 국민 간식이었고, 허리가 아플 때 직효라는, 수십 개의 다리가 적나라한 말린 지네를 파는 상인들도 종종 있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는 딱 그 배경에 딱 그런 이웃들이 있었던 유년 시절, 동네 주변엔 풀들이 무성했던 들판이 있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아침을 먹고 나서 꾸벅꾸벅 졸고 싶을 때쯤이면, 엄마는 딸들 손에 코카콜라 빈 병을 하나씩 쥐어 주었다. 그러면 우리 넷은 쪼르륵 대문을 나서며,     

원구야! 병식아! 은주 언니! 다 나와라! 메뚜기 잡으러 가자!     


하고 외치며 골목을 다다다닥 뛰어다녔다. 그러면 그걸 또 어찌 들었는지 동네 꼬마 녀석들은 저마다 빈 병을 하나씩 들고 들판 앞에 모여들었다. 우리는 쪽배가 바닷물을 가르듯, 키만 한 풀숲을 헤치며 닥치는 대로 메뚜기를 잡아 빈 병에 넣었다. 이놈들이 팔짝팔짝 튀어 오를 때면 얼른 엄지손가락을 병 입구에 쏙 넣어 탈출구를 막았는데 녀석들의 필사적 몸부림이 간질간질 손끝까지 닿았다. 

 이른 아침 일광욕을 하지 못해 비실비실한 메뚜기들은 제대로 도망쳐 보지도 못하고 코카콜라 빈 병의 잘록한 목구멍까지 그득그득 차서는, 만선滿船을 꿈꾼 꼬마들의 마음을 참 행복하게도 해 주었다. 삽시간에 채워진 병을 들고 발길 닿는 대로 누군가의 집으로 가면 그 집의 엄마는 병들을 받아 손가락 사이에 껴 들고는 주방으로 가서 무심히 메뚜기를 튀겨 주셨다. 누구는 마당에서 오줌을 갈기고, 누구는 땅따먹기를 하고, 누구는 마당에 나른하게 누워있다가 팬에 가득 담긴 메뚜기 튀김이 등장하면 더러워진 손가락을 쪽쪽 빨며 맛있게도 먹었다. 몸은 텅 빈 듯 하지만 나름 통통하니 바사삭 질감이 느껴졌고, 다리는 그야말로 오독오독 씹는 식감이 끝내주는 고소한, 최고 인기 부위였다.

 나는 아침보다는 노을이 질 때 메뚜기를 잡는 걸 좋아했다. 녀석들이 아침보다는 힘이 드세서 잡기는 힘들었지만 붉은 노을이 풀숲에 퍼질 때면 뭔가 야릇하고 아득하며 신비한 느낌이 들어, 이대로 앞으로만 쭉쭉 가다 보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살고 있는 그곳에 도착할 것만 같아 가슴이 콩닥콩닥 부풀어 오르곤 했다.



 

엄마나도 메뚜기 튀김 해 줘해 줘해 줘어어어어어어어!       

   

아들은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떼를 쓴다.

메뚜기를 달궈진 팬에 후드득 쏟아 넣으면 얘들이 미친 듯이 튀어 오르는데, 그때 팬 뚜껑을 잽싸게 덮어 주어야 한다.     


그걸 나한테 하라고나 벌레공포증인데?     


추억은, 그냥 추억으로 아름다운 거야. 꿈도 꾸지 마, 모닝 메뚜기튀김!     


나를 키운 것은 8할의 바람이 아니라, 1할의 메뚜기였을지도.     




다음 편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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