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의 여신

어쨌거나 난 오늘 지각의 여신을 만났다

by 생각하는냥

출근하다보면 종종 마주치는 여인이 있다.

수많은 나날동안 마주쳐도 기억못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그녀는 기억을 한다. 이뻐서? 솔직히 많이 이쁜 건 아니지만 개성있게 이쁘다. 그런데 말이다. 그녀만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녀를 봤다는 건 지각이 간당간당하다는 게다.

그래서 그녀에게 준 애칭이 있다.

지각의 여신. ㅡ..ㅡ


버스를 내린다.

카드를 찍으려는데 앞선 처자가 손에 쥐고 있던 가방을 흔들며 내 손과 부딪혔다. 순간 카드를 떨어트렸다. 충격이 있었는데도 그녀는 미안하다는 말은 물론 뒤로 안돌아보고 가버렸다. 그녀의 엉덩이를 째려보며 떨어진 카드를 주워 다시 찍으려는데 이번에는 뒤에 서 있던 처자가 카드기에 먼저 찍는게 아닌가. 어차피 내가 내려야 그대도 내리는 것인데 카드를 들이미는데 같이 들이밀어서 오류를 일으키는 걸까? 쯔라는 의성어와 함께 그녀의 가슴을 째려본다. 일부러 본 건 아니다. 떨어진 카드를 줍느라 계단 하나를 내려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기억도 못할 만큼 0.1초의 찰나로 째려봐서 째려본 위치가 가슴이었다는 거지 가슴을 봤다는 건 아니다.

어쨌거나 난 오늘 지각의 여신을 만났다.


서울 바닥 지하공기는 늘 별루다.

멍때리며 시커먼 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유리창은 거울이 되어 옆 사람들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옆옆에 서 있던 처자가 서서 졸고 있는 게 보였다. 단지 눈을 감았을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졸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녀의 입술상태가 살짝 열려있었는데 딱 졸다가 침 흘리기 직전의 것과 똑같았다. 그래도 그녀가 참 희한한 건 내릴때가 되니 알아서 눈뜨고 내린다는 것이다.

그녀는 참 능력자다. 예전에 술에 취해 지하철 막차 기둥에 서서 졸다가 내릴 곳을 무려 네 정거장이나 지나는 통에 택시를 잡아타고 다시 가야 했던 무려 17년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다니. 기억소환자의 능력을 가진 그녀에게 축복을.

어쨌거나 난 오늘 지각의 여신을 만났다.


사무실에 도착했다.

시계가 9시 1분을 가리켰다. 1분 지각이다.

그렇다. 난 지각의 여신을 만났다. 그러니 당연한 결과다. 발버둥쳐봐야 운명의 여신은 늘 기대를 저버리는 않는다.


입안에서는 카카오 한알이 씁쓸하게 녹아든다.

매일 생과일즙을 배달하시던 아주머니가 그만두시고 얼마전부터 시커먼 안경테의 시커먼 남자분으로 바꼈다. 요쿠르트 아주머니에 익숙해 있던터라 45년만에 남자분의 손길로 받아드니 참 어색하고 낯설다. 며칠 지나면 적응되지 않을까도 싶다.


생과일즙을 쪽쪽 마지막 한방울까지 탈탈 털어마시고 또 씁쓸한 카카오 한알을 입안에 물었다. 누가 그랬다.

지각대장이라고.


지각을 하는 날이면 다짐한다.

내일은 30분 일찍 움직일거야.

내일이 오늘이 되면 늘 출근준비 30분 전에 깬다.

그리고 30분을 이것저것 하느라 낭비를 한다.

그리고 출근준비는 늘 똑같은 시간에 하게 된다.

그러다 뭐 하나 꽂혀서

씻다 보면

입다 보면

지갑을 챙기다보면

안경을 챙기다보면

버스를 타다보면

지하철을 타다보면

늘 데드라인을 간당간당 넘나든다.


그리고 오늘 또 다짐한다.

내일은 지각의 여신을 만나지 않을거라고.

과연 내일 그렇게 될까?


이제는 말야, 난 널 못 믿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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