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
퇴근길 어쩌다 보니 또 혼밥이다. 음식점을 찾아 나섰다. 조용히 혼밥을 할 수 있는 곳으로.
퇴근시간대의 직장 근처 음식점은 대체로 술자리로 자리를 채운다. 술자리다 보니 여기저기 시끌벅적해서 조용한 혼밥의 공간은 찾기 어려웠다. 여기도 술판 저기도 술판 술판이 판을 치는 시간이다. 혼밥을 하려거든 분식점으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분식은 싫었다. 조용한 밥집을 찾으려다 보니 어느새 골목길 끄트머리다. 더 이상 갈 곳이 마땅치 않아 그래도 가정식 백반을 하는 음식점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거기도 술자리는 이어져 있었다.
지겹다 진짜.
그래도 가정식 백반이 된다니 자리에 앉았다. 더 이상 갈 곳도 마땅치 않았으니. 이윽고 밥이 나왔는데 먹을만했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떠들어대니 혼밥인은 괜히 주눅 들고 신경이 쓰였다. 내 돈 내고 내 밥 먹는데 왜 남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 훔쳐먹고 있는 듯한 느낌일까.
술자리의 혼돈에 쫓겨 도망가듯 먹고 나오니 얹힌 듯 소화불량이다. 속이 부담스러웠다.
한 200미터쯤 가서야 카드결제 문자가 날아왔다.
'6,500원.'
6,500원? 메뉴판에서 본 가정식 백반은 6,000원이었는데 문자에는 6,500원이 찍혀 있었다. 저녁에는 500원을 더 받나?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 가게로 전화를 걸었더니 아까 결제를 해준 듯한 젊은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상황을 설명하자 바로 본인이 바쁜 탓에 결제를 잘못한 것 같다며 미안하다며 죄송하지만 멀리 가지 않으셨으면 다시 와달라는 게다.
500원이야 뭐 쿨하게 됐습니다 라고 하고 그냥 집으로 가도 될 문제긴 했는데 얹히면서까지 먹은 밥인데 500원까지 못 돌려받는 건 왠지 억울(?)했다. 굳이 돌려받아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다시 되돌아가니 전화를 받았던 그 젊은 남자는 이내 결제한 내역을 취소해주었고 정말 정말 미안하다며 6,000원이 아닌 5,000원을 결제하였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다시 올 일 없는데 이러면 담에 또 와야잖아.
나 다시 여기 안 올 거야 라고 솔직하게 말을 했어야 했나?
담에 다시 오면 또 쫓기듯 먹어야 할 거 같은데. 그래도 마음씨가 고마우니 또 몇 번은 먹으러 와 줘야 할 모양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 보다. 이런 거에 꼼짝 못 하는 걸 보면.
에헤라디야.
담엔 내가 술판을 벌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