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아는 시작은 늘 그랬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비님이 오신다 한다.

by 생각하는냥

끝을 아는 시작은 늘 그랬다.


장대비의 끝이

흠뻑 젖은 신발과 양말, 그리고 바지의 초라한 꼴일 거라는 걸 알면서도

장대비 속으로 뛰어들었다.


시작해선 안 될 감정이라는 걸 알면서

흠뻑 젖은 눈물이 얼굴을 가득 매울 걸 알면서도

사랑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장대비가 서서히 그쳐 가는 것처럼

사랑은 끝에 다 달았고

눈물은 말라버렸다.


끝은 알던 대로 그렇게 끝이 난다.


하늘은 사랑을 품었고

빗물은 이별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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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비가 흠뻑 내리는 아침 잠시 망설였다. 이대로 출근하면 하체는 사망각이다. 신발과 양말, 그리고 바지는 흠뻑 젖을 게 뻔했다.


슬리퍼를 신고 가기에는 모양새가 나지 않았고 샌들은 오래되어 해어졌다. 또한 반바지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젖을 걸 알았지만 평소와 마찬가지로 입고 장대비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채 50미터도 지나지 않아 신발이 축축해지는 느낌과 함께 빗물에 젖은 바지춤이 무거워짐이 느껴졌다. 이미 돌아가기엔 늦어버린 출근길이었다. 흠뻑 젖어버릴 걸 이미 알았으면서도 뛰어든 대가는 발걸음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혹독한 대가로 돌아왔다.


드디어 비에 젖은 생쥐 한 마리가 건물에 입성하였다. 아무도 생쥐를 제지하지 않았다. 이내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여 사무실까지 잽싸게 숨어들었다. 의자에 앉고서야 겨우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뜨거운 체온 위로 선풍기 바람이 뒤엉켜 바지를 말리는 가운데 회사 동료가 아이스 수박주스를 사 왔다. 그렇잖아도 몸도 젖었고 선풍기 바람을 잔뜩 쐬어 추워 죽겠는데 하필이면 아이스 수박주스라니. 평소 같으면 정말 고마웠을 텐데 오늘 같은 날에는 조금만 고맙다. 한 모금 빠니 한 여름인데도 떨린다. 첫눈에 반하는 이성을 만났을 때보다도 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거세던 장대비가 서서히 그쳤다. 하루 종일 퍼부울 기세 더니 출근시간을 딱 골라 퍼부은 심술은 마치 전부터 날 노렸던 건 아니었을까도 싶다. 최근 들어 조물주의 귀를 어지럽힐 만큼 죄를 지었더니 그 죄를 묻는 걸까?


고작 인간이라서 되는 게 없어서 투덜대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데 그냥 좀 한 번쯤은 넘어가 주면 좋으련만 전지전능한 조물주에게는 그것조차 거슬렸던 모양이다. 일기예보를 보니 다음 주 월요일 (2020년 08월 03일)까지 비님이 오신다 한다. 너무 노골적인 응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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