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을 만들어 온다면
어릴 적 토요일 점심시간 메뉴는 대체로 물짜장이었다. 물짜장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지역적 혜택이기도 했다. 물짜장은 전주 이외의 지역에서는 만들지 않기 때문에 어린 시절을 전주에서 자란 덕에 알 수 있는 맛이었다. 그 맛을 모르는 사람들은 용용 죽을 것이다.
당시의 동네 중국집의 물짜장은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그냥 뻘건 걸쭉한 국물에 잘게 썰은 양파와 잘게 썰은 돼지고기가 면과 버무려진 음식이었고 우리 가족에게는 마치 '일요일은 내가 짜파 xx 요리사'와 같은 공식 같은 거였다.
가끔 물짜장을 먹어보지 못한 이들이 묻곤 한다.
'대체 물짜장이 어떻게 생긴 거냐. 대체 어떤 맛이냐.'
일반 중국집에서 판매하는 볶음 짬뽕과 비슷하다고 말해줄 수 있긴 한데 비슷하지만 다른 맛이다. 궁금하면 그냥 전주에 가서 물짜장 잘하는 집을 찾아 가보라고 하고 싶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함정이 있다.
어른이 되어 전주를 떠나 살게 되었고 잠시 오랫동안 물짜장 먹을 일이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예전 생각에 당시의 그 중국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집주인은 이미 바뀌어 있었고 맛 역시 그 맛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맛있다 하는 집들을 찾아 가봤는데 어릴 때 먹었던 그 물짜장 맛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 집이 맛집이었더라면 유명했겠지만 너무도 평범한 동네 중국집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왜 다른 집에서 그 맛을 흉내 내지 못하는 것일까? 그 집만의 별도의 비법이 있었을까, 아니면 내 입맛이 변한 것일까.
비슷한 추억이 하나 더 있다. 전주에 살기 전에는 그보다 더한 시골인 진안에 산 적이 있었다. 그때 맞벌이를 하시던 어머니가 사 온 조갯살 튀김이라는 게 있었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야채튀김에 조개가 들어가 튀겨진 것으로 기억나는데 그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이게 또 간장을 찍어먹어야만 제대로 된 맛이 나는 거였다. 그때의 기억으론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를 그런 맛이었다.
그런데 그 조갯살 튀김이라는 건 전국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런 튀김이 판매되는 걸 본 적이 없다. 인터넷이 발달하여 인터넷을 가끔 뒤져보아도 조갯살만 따로 튀긴 게 있지만 어릴 때 맛본 그 조갯살 튀김이 아니라는 건 딱 봐도 알겠더라. 그냥 그 가게 아저씨만의 특별요리였던 듯싶다.
하여간 다시 물짜장으로 돌아가자.
상황이 이런지라 내 기억 속의 내 고향 물짜장은 맛있노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싶지만 사람들에게 말해본들 어릴 때의 그 맛이 아닌데 전주에 가서 물짜장을 먹어본 사람들에게 호불호가 생기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싶다. 또한 더불어 내 책임은 더욱 아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데려갈 수만 있다면 나의 어린 시절 그 동네 중국집으로 데려가서 맛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전주에 가서 물짜장을 먹어봤는데 그냥 그렇더라고 말한다면 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이 타임머신을 만들어 가지고 온다면 내 장담컨대 당신의 혓바닥을 놀라게 할 만큼의 물짜장을 대접하겠노라고 말이다. 그러니 타임머신을 만들어내지 못한 당신 탓이라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생각난 김에 전주에 내려갈 일이 생기면 물짜장 잘한다는 또 다른 중국집을 찾아가 봐야겠다. 혹시 아나. 그중에는 타임머신 없이도 어릴 적의 그때보다 더 맛있는 집이 하나쯤은 나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