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언제 어른이 될까?
한창 사춘기쯤 나는 주변의 어른들이 삭막한 삶을 산다고 생각했다. 그 질풍 같던 시기에 기숙사 생활을 하며 다른 호르몬 기계들과 같이 어디에 그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할지 난감해하며 살았다. 날마다 학교에 갇혀서 공부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몰래 외출하거나, 치킨을 시켜 먹거나, 학교 구석구석의 감시가 제한된 구역을 찾아다니며 지금은 별거 아닌, 그때는 대단했던 일탈을 시도했다. 연애하는 것도 들키면 안 되고 폰도 제한된 환경에서 사용해야 했기에, 그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했던 선생님들은 계속해서 우리와 부딪히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선생님들을 어떻게 속여 먹을지 항상 고민했던 이유는 그들이 제대로 즐길 줄도 모르는 속물적인 존재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선생뿐 아니라 주변의 많은 어른들이 안정된 삶을 누리면서 자유와 열정 같은 '멋진' 것들을 스스로 놓아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사실은 무서워하면서도 겉으로는 항상 강한 척했다. 우리가 원하는 삶은 그들과는 전혀 다른 아주 멋진 어떤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옛날에 삼촌 방에서 본 그림이 <그랑블루>의 포스터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일종의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아주 어릴 때 본 아주 멋진 그 그림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나이 들어서 그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면서 불현듯 깨달았다. 매일 출퇴근 해야 하는 숙명의 인간들도 먼바다에서 손을 흔드는 포스터를 바라보며 잠에 든다는 것을.
회사에서, 학교에서 치이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한 때는 자기는 절대 저런 어른이 되지 않을 거로 생각했던 우리는, 정확히 바로 그런 어른이 되어서 이런 글을 쓴다. 알고 보니 어른은 되게 멋진 것도, 되게 속물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좀 더 오래 살았을 뿐인 인간일 뿐이었다. 어쩌다 보니 사회에 던져졌고, 어쩌다 보니 매일 출근해야 하게 되었고, 그러니 아무리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도 기꺼이 올라타야 한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말을 안 들으면 행동을 교정해 주어야 한다. 밖에서는 당당하게 돌아다녀도 결국 침대에서 뒹굴 거리며 노는 게 제일 좋은 건 나이 들어도 변함이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