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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Mar 11. 2020

임신 9주~10주 : 친정에서 요양하기

온 가족의 애물단지가 되는 기쁜 경험 

내가 가족들에게 임신소식을 알렸다는 걸 아기도 알았던 걸까? 이제 맘 편히 고생하라는 의미인지 9주 ~ 10주를 즈음에는 입덧으로 수시로 토하기를 반복했다. 노란 물을 토한다던가, 물도 못 마신 던가 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길을 걷다가도 헛구역질이 올라오고, 그냥 단순히 '우웩' 하는 수준의 구토가 아니라 단전에서 모든 것을 다 끓어 올리는 것 같은 구토가 올라왔다. 입덧이 좀 있다는 말을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에게 드리니,  입덧 약을 처방해줄지 물어보셨는데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참을 때까지 참아보기로 했다. 


한창 입덧이 심한 시기에 남편은 일이 바빠서 서울을 오가느라 주 3~4일을 집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스스로 음식을 챙겨 먹는 것이 쉽지 않아서 상의끝에 엄마아빠가 있는 친정집에 한동안 내려가 있기로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집에서 툭하면 토하던 내가 무색할 정도로 엄마 집에서는 컨디션이 좋았다. 구토감이 수시로 올라오긴 했지만 참을 수 있는 수준이었고, 갑자기 참을 수 없이 올라오는 심한 구역질은 거의 하지 않았다. 밥을 같이 챙겨 먹을 사람이 집에 있으니 혼자 밥 먹는 것보다 밥맛도 좋았고, 동생이 퇴근하고 올 때 마다 수시로 내가 먹고 싶은 과자나 과일들을 사다 줘서 먹고 싶은 것도 그때그때 모두 챙겨 먹었다. 


이때 2주 정도 친정집에 있었는데 결혼하고 나서 가장 오랫동안 친정집에 있었던 시간이었다. 할머니, 이모, 동생, 엄마, 아빠 모두가 내 컨디션을 걱정해주고 내가 먹고 싶은 반찬이나 음식을 챙겨주셨다. 차를 타고 외출할 때도 내 컨디션을 수시로 살펴주는 부모님을 보고 있으니 꼭 어린아이 같이 취급받는 것 같아 기분이 몽글몽글했다. 이때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다며 엄마 아빠는 나를 데리고 수시로 바람을 쐬자고 외출을 나가주셨는데, 이렇게 내 주변 모두의 살뜰한 챙김을 받는 시간이 앞으로 또 있을까? 생각했다.


집에만 갇혀 있으면 안 된다고 나를 데리고 태화강변을 산책하러 나간 날!


나를 열심히 챙겨주는 부모님 덕분에 부산의 멋진 바닷가에 유명 셰프의 중국음식점, 우리 가족의 소울푸드인 경주의 칼국수집과 보문단지의 멋진 카페, 울산 바닷가의 분위기 있는 브런치카페 등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음식과 좋은 풍경은 다 구경하고 다녔다. 


바람쐬러 나가자는 말에 목란 부산점에도 가봤다.


약 2주간의 친정 요양을 마치고 우리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때가 마침 막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할 때였다. 임산부인 내가 KTX를 타고 올라간다 했더니 아빠는 직접 차로 3시간 걸리는 우리 집으로 나를 데려다준다고 하셨다. 이 소식을 들은 남편이 힘들고 위험하다고 극구 말려서 남편이 차를 몰고 친정과 집의 중간 지점인 도시에서 만나 나를 교환(?)하기로 합의를 봤다.


운전을 진짜 싫어하는 아빠가 기꺼이 나를 당신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하는 걸 보고 엄마는 '그래. 너희 아빠 김서방이지.'라고 했다. 자식이라면 끔찍하게 생각하는 아빠가 임신까지 한 나를 이 시국에 기차를 태워 보낼 리가 없다며. 내가 태어났을 때, 막 태어난 딸을 어마어마하게 이뻐해서 직접 나를 낳은 엄마도 '애가 저렇게까지 좋을까?' 하고 혀를 내두르게 했던 아빠인데, 엄마가 잠시 잊고 있었다며.


그 주 주말에 나와 여동생, 엄마를 태우고 아빠는 2시간 반을 달려 남편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나를 데려다주셨다. 남편과 친정식구들이 같이 중간지점에서 점심을 먹고 차를 한잔 마시고 나서, 아빠는 엄마와 동생을 싣고 친정으로 출발했고 나는 남편 차를 탔다. 나 한 명 데려다주는 걸로 몇 명이 움직였나 생각해보니 웃음이 났다. 임신은 반갑지만 임신으로 인한 입덧은 절대 반갑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온 가족의 애물단지가 되어 보살핌을 받는 것은 쑥스럽지만 기분 좋고 기쁜 경험이었다. 두고두고 기억해 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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