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에디터의 낱말 서재
Ep.02 가벼운 마음 - 크리스티앙 보뱅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로망을 와락 껴안고 오래오래 키스한다.
이번에는 호기심이 사랑에 한 발 양보한다.
수 세기를 이어온 진지함과 세련된 취향에
대홍수를 일으킨 사람과 어떻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이 책을 처음 마주한 날은 여름, 어느 작은 도시의 도서관이었다. 이 책의 첫 장을 펼친 날의 날씨, 기분, 시간, 도서관 주차장 앞유리에 펄럭이는 나뭇잎까지도, 페이지를 넘기던 질감까지도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막연히 책 제목처럼 ‘가벼운 것들’ 이 담겨있을 것이라는 짐작으로 펼쳤던 책 첫 장에서 끝.
나는 끝났다.
혹자는 특유의 프랑스 예술답게, 지상에 둥둥 떠있어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는 문장들에 어지럽다고 하기도 했지만. 그가 고독을 비관이 아닌 모습으로 수용하는 태도와 매력적인 문장을 사랑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 아닐까?
둔감하지 않은 마음, 그러나 절망하지 않는 마음.
그 단단한 마음이 바로 이 책 안에 있었다.
놓치기 쉬운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모든 문장이 시가 되는 그의 말들과 사랑에 빠진 날이 아니었을지.
사방에서 지글대는 불행을 뒤로하고, 우리를 우리답지 못하게 하는 관계 속에서 우아하게 헤엄쳐 나아가는 ‘가벼운 마음’을 작게나마 만나시기를.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즈음에는, 우아하게 헤엄쳐 마주한 침묵과 고독 속에서 ‘가벼움’이라는 실금이 생겼기를 기대해 보며.
에디터 si, sun.
이 책의 낱말들
¹ 노랑
밝고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멍들어있는 색. 이 책의 연노랑 표지처럼. 고독을 수용하고 난 가벼운 마음이 지닌 색이 아닐까 생각한다.
² 바흐의 작은 음악 초대권
주인공 ‘뤼시’가 뚱보라고 달리 부르는 바흐.
바흐를 빼놓고 이 책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음표가 어떻게 흘러가도, 결국 하나의 음표일 뿐이다> 삶을 바흐의 음률처럼 흘려보내는 뤼시의 태도처럼,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작은 음악 초대권 하나가 쥐어지는 거다.
³ 자유
‘즐거운 마음은 가벼운 마음이며,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홀로 있을 때 성장하는 가벼운 마음.
⁴ 필사
유독 필사하고 싶은 책이라는 독자들의 리뷰가 많았다. 구름 속을 유영하는 그의 언어들을 다시 꾹꾹 적어가며 마음에 새기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럴 만하다. 모조리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한 편의 시 같은 이야기를 필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이 책은 이런 날
취향과 즉흥적인 독서와
언뜻언뜻 머리를 쳐드는 지혜와
섬세한 미래를 껴안고
사방에서 떠드는 것들에 엿을 날려줄
두 에디터의 사유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