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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Oct 05. 2022

느린 진심

나도 내가 널 이만큼 사랑하는지 몰랐어

  동물 병원에서 로비에 나타났을 때 수의사를 가장 긴장시키는 견종은 뭐니 뭐니 해도 진돗개다.

  충성심과 용맹스러움으로 우리나라 토종 품종의 자존심을 지키는 견종이기도 하지만 매우 예민하고 의심이 많아 낯선 사람이나 심지어 주인일 지라도 자신에게 수상한 행동을 할 경우 공격성을 띄는 경우가 많다. 또한 덩치가 작은 개들을 공격하여 무는 행동을 자주 하기 때문에 로비에 진돗개가 나타나면 작은 견종을 데리고 오신 보호자분들께는 강아지를 반드시 바닥에 풀어놓지 말고 안고 계셔 달라고 부탁드리고 원내를 산책 중이던 입원견이나 병원에 상주하는 개, 고양이들은 모두 입원장 안으로 안전을 위해 대피시켜야 한다.

  그만큼 진돗개는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다루기 쉽지 않은 견종 중 하나다.




  유난히 사나웠던 개, 아미


  매서운 바람이 부는 어느 겨울날, 병원 로비에 진돗개 한 마리가 들어왔다. 작지만 단단한 체형의 중년의 남자 보호자분은 목장갑을 끼시고 굵은 노끈처럼 생긴 목줄에 20kg쯤 되어 보이는 하얀 진돗개를 묶어 데리고 들어오셨다. 이름은 아미. 내가 만난 여러 마리의 진돗개 중에서도 손꼽히게 사나운 아이였다.

  낯선 이 가 제 몸의 털 끝 하나 건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 입마개나 넥 카라 (개나 고양이가 자기 스스로를 핥고 뜯지 못하게 하거나 검사나 처치 시 사람을 쉽게 물지 못하도록 목에 채우는 깔때기 형태의 보정 기기)를 이용한 물리적 보정이나 진정제를 이용한 화학적 보정이 없이는 어떠한 검사나 치료도 불가능한 성격이었다.


  보호자분의 다리 밑에 꼼짝도 않고 앉아 내가 한 걸음이라도 다가가기라도 할라 치면 이를 드러내며 불편한 심기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바람에 손을 대기는커녕 상태를 육안으로 보는 것도 힘든 상황이었다.

  보호자분께 입마개나 넥 카라를 채워주십사 부탁드렸지만 보호자분께서도 아미의 필사적인 반항과 몸부림 때문에 아무것도 하실 수가 없었다.

  구토 때문에 내원하였던 아미는 결국 그날 어떠한 처치도 받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아미가 그냥 저절로 나아져서 병원에 다시는 오지 않길 바랬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아미는 다시 병원에 나타났다. 구토가 멎지 않아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고 하시며 넥 카라를 미리 채우시고 내원하셨다. 보호자분께서 가장 의심하고 계신 구토의 원인은 이물 섭식. 며칠 전 토사물에서 8cm가량의 나무판자 조각이 나왔는데, 그게 문제일 것 같다고 하셨다.

  여전히 온몸으로 필사적으로 반항하는 아미에게 진정제가 투여되었고, 드디어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힘들게 검사를 진행하였는데 결과는 허무하였다. 위 벽이 약간 두꺼워져 보이는 외에는 별다른 이상이 감지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경우에는 두 가지의 진행 방향을 생각할 수 있다. 내시경이나 CT, 탐색적 개복술 등의 상위 검사를 진행하여 확진에 이르던지, 일단 증상에 맞는 처치만 진행하며 상태가 나아지는지 좀 지켜보던지.


  아미는 평균 수명이 12년인 진돗개 견종이었고, 이미 나이가 10살이라 노령견에 속하는 아이였다. 나이를 고려 시, 단순 위염이 아닌 종양 등의 심각한 질환이 있거나, 보호자분 말씀대로 나무 조각이 위 벽에 박혀 이 정도 검사에서 확인되지 않는 경우라면 심각해질 수 있다고 생각이 되어, 일찌감치 상위 검사를 해보는 것을 권유드렸으나 보호자분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지가 살려거든 살 것이고 죽으려거든 할 수 없는 것이지.
그냥 구토나 하지 않게 해 주세요."

  일단 아미는 입원을 하여 구토를 멎게 하고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는 주사, 수액 처치를 먼저 진행해보기로 하였다.




  아미의 입원과 처치, 그러나...


  아미는 너무나 사나워 그 누구도 섣불리 손 대거나 가까이 갈 수 없는 아이였고 그런 환자가 입원한다는 것은 병원 스태프들에게는 상당히 힘든 일이다. 입원장 안에서 소변을 보면 치워줘야 하는데 치워주지 못했고, 수액 줄이 배배 꼬이면 풀어줘야 하는데 입원장 문도 못 열게 으르렁대는 바람에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꼭 필요한 주사 처치조차 아미의 눈에 띄지 않게 멀리서 연결선을 통해서 진행해야 했다.

  며칠간 항구토제와 수액을 맞고 구토는 잠잠해졌으나 아미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억지로라도 먹이고 싶어도 수의사나 테크니션이 아미의 입에 손을 댄다는 것은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보호자분께서 직접 시도하시는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한 번 면회 시간에 강제 급여를 시도하게 되었다. 갈아서 으깬 습식 사료에 물을 섞어 주사기에 욱여넣고, 입에 넣어주는 시도를 하였는데 너무 반항이 심하여 주사기가 산산조각 나기 일쑤였다.


  이렇게 예민하고 사나운 개가 입원생활을 한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얼마나 스트레스일까? 아미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주변 경계를 늦추지 않으려 잠도 자지 않았다. 입원이 며칠간 계속되자 주둥이를 바닥에 박을 때까지 꾸벅대며 졸기 시작하였지만 그러면서도 절대 자세를 흩트리지 않으려고 혼신의 노력을 하는 것이 보였다.


  개도 다크서클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까?

  아미는 며칠간의 입원 후, 다크서클이 가오나시를 연상케 할 만큼 내려왔고, 정말 안쓰러워서 봐줄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컨디션 저하로 상태가 더 나빠질까 염려되었다. 구토도 멎었겠다 이제 먹기만 하면 될 것으로 생각하고 퇴원하여 집에서 쉬면서 식이 급여도 해보고 구토가 재발되지 않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증상은 악화되어 가고...


  퇴원 후, 아미에게 밥을 먹여 보려는 보호자분들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온 가족이 퇴근 후 저녁시간에 아미가 있는 집 마당에 모여 서로 도와가며 강제 급여를 시도하였다. 그중 아버님은 아미에게 물릴 것을 감안하여 두툼한 장갑을 끼고 아미의 입에 주사기를 들이대는 가장 위험한 파트를 맡고 계셨다.

  재진 오실 때마다 보호자분의 손에 상처가 하나둘씩 늘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보호자분들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아미는 절대 밥을 먹으려 하지 않았고 곧 다시 구토하기 시작하였다.

  

  이쯤 되자, 단순 염증은 절대 아닐 거라 생각이 되었고, 무언가 큰일이 아미의 뱃속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져갔다. 보호자분께 다시 한번 검사를 권유하였으나 보호자분께서는 동의하지 않으셨다.

  "사람 먹는 정로환 같은 거나 좀 먹여 보고 나아지면 사는 거고, 안 나아지면 이제 나도 모르겠어요. 그냥 죽는 거지 뭐."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나는 보호자분이 사실 마음속으로 아미를 정말 많이 아끼고 계실 것이라 믿었다. 아미에게 밥을 주려다가 물린 보호자분 손의 상처가 무뚝뚝하게 툭 뱉으시는 말보다 더 진실하게 느껴졌다.

  "말씀을 그렇게 하셔도 아미가 정말 더 아파져서 죽기 직전이 된다면 마음이 달라지실 수 있으실 겁니다. 집에서 좀 더 진지하게 검사를 고려해 주세요. 정로환은 절대 주지 마시고요."

  보호자분께서 '나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이나 '나아질 것이다'라는 바람이 섞인 마음에서 벗어나 좀 더 객관적으로 아미의 상태를 인정해 주십사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부탁드렸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미가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다시 한번 내원을 부탁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틀 후.


  아미는 응급상태로 병원에 내원하였다. 사망 직전의 상태였고 결국 심정지 상태가 되어 심폐 소생술이 이루어져야 했다. 아미는 다행히 심폐 소생술에 반응을 했고, 그렇게 다시 한번 삶의 세계로 돌아왔다. 집에서 정로환이나 먹이다가 죽으면 별 수 없다던 보호자분은 결국 아미가 진짜 죽어가는 지경에 이르자 정말 그냥 둘 수는 없으셨던 모양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야 자신의 진심을 깨닫게 되셨던 것일까.


  아미는 죽음에서 가까스로 돌아왔지만 다량의 혈액성 구토를 지속적으로 해서 수혈을 해야만 했다.

  항구토제를 3가지 이상 사용하는데도 구토는 멎지 않았다. 아미의 상태는 정말 말이 아니었다. 피골이 상접하게 말라있었고 계속되는 구토에 입 주변과 앞다리가 모두 젖어 흰 털이 전부 갈색으로 변해있었다.

  눈빛은 텅 비어 있었고 더 이상 사납게 굴지 못하고 입원 장 안에서 힘없이 누워있기만 했다.

  정말 이렇게 원인도 모르고 계속 구토만 하다가 기력이 쇄진 하여 죽게 둘 수는 없었다. 보호자분을 다시 설득하였고 결국 탐색적 개복술을 해서 육안으로 위 상태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미안해, 아미야.


  개복을 하여 확인한 결과는 참담했다. 악성 위 종양 말기 의심. 위가 이미 80%가량 돌처럼 단단해져 있어 수술로도 어찌할 방법이 없어 손도 못 쓰고 그냥 다시 덮을 수밖에 없었다.

  아 그것도 모르고 어떻게든 먹이겠다고 돌 같은 위 안으로 음식물을 밀어 넣었구나.

  마취에서 깨어난 아미는 옆으로 누운 채 꺼져가는 생명을 겨우 붙잡고 있었다. 그렇게 이틀째 되던 날, 결국 아미는 사망하였다. 구토로 처음 병원을 찾은 때로부터 약 4주가 되어가던 때였다.


  정로환이나 먹이다가 죽으면 할 수 없다던 남자 보호자분은 아미의 위암 진단 소식을 듣고 어떤 심정이셨을까. 드러나게 표현을 하지 않으시는 분이었기에 그 마음을 가늠할 뿐이지만 숨이 넘어가는 아미를 데리고 병원 문을 열고 들어오셨을 때 보호자분의 표정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 나는 그 모습이 보호자님의 진심을 엿볼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미 이후로도 나는 이런 보호자분을 자주 만난다. 뭐 이런저런 검사를 다 하느냐고. 제 명대로 살다 죽는 것이지 무슨 수술이냐고. 그런 분들을 볼 때 나는 아미 보호자분을 떠올린다. 저분도 저렇게 말씀하시지만 실제로 위급한 상황에 처해지면 태연하실 수는 없을 거라고. 심폐소생술이든 수혈이든 수술이든 해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해주고 싶어 지실 거라고 믿는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마음으로 이미 더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에서야 알게 된다. 아픈 동물을 보살피고 계신 많은 분들이 아마 공감하실 것 같다. 아이가 아프게 되면, 내가 이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고, 이 아이에게 얼마나 감정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는지를 뒤늦게 알게 된다.

  아미는 떠나갔지만, 아미 보호자분의 느리지만 진실했던 그 마음은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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