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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May 29. 2024

9. TDP(2) : 버킷리스트 실현 중

2024. 3. 8 Paine Grande - Cuernos

  Paine Grande 산장 - Italiano 산장 - Mirador frances 왕복 - Cuernos 산장

오늘이 산행 길이가 가장 길고, 몬스터를 메고 가야 해서, 트레킹 중 가장 힘든 하루일 것으로 예상했었으나, 실제로 두 번째로 힘든 날이었다. (마지막 날이 죽음의 날이었음을 미리 알려둔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니, Italiano 산장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보슬비가 내려 모자 위로 토독토독 떨어졌다. 평소의 나라면 비를 맞고 걷는 것이 좋았을 리 없지만, 산행 시, 아주 약하게 내리는 비는 오히려 좋다. 햇볕도 강하지 않고, 약간 시원하게 해 주어서 걷기에 쾌적하다.

(단, 비 맞고 땀 흘린 옷을 계속 다시 주워 입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음)


보슬비가 내리는 이른아침에~ 베낭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빨간베낭 노랑베낭 찢어진베낭~(?)


  오늘의 트레킹 루트도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산허리에 걸친 안개와 잔잔한 호수, 조용히 걸으며 즐기는 나만의 시간.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이렇게 오래 걷는 것은 처음 해 보는 일이었는데, 패딩을 입어 쿠션을 형성해주지 않으면 골반뼈가 눌려서 멍들 것 같은 것과, 허벅지에 힘이 두 배로 들어가서 살이 갑자기 10kg가 찐 듯한 느낌이 드는 것, 내리막길에서 잘못하면 고꾸러지겠다는 두려움이 든다는 것 등을 빼고는 할 만했다!

  가방을 내렸다 울러메는게 힘들다 보니 아예 가방을 풀고 쉬는 시간 없이 계속 걷게 된다는 개이득..(?)

생각보다 가방이 무게 지탱을 잘해주어서 어깨나 목 등 상체에는 힘이 적게 들어갔다. 세계인의 백팩 브랜드 오스프리의 위용이 아닐까! ㅋㅋ (오스프리 관계자 아님)

  적절한 배낭을 사려고 들인 시간이 상당히 길었었는데 그 시간들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Italiano 도착!


  거의 10kg가량의 배낭을 메고 7.5km를 걸어 Italiano 산장에 도착했다. 비와 땀에 절어 몰골은 말이 아니었지만 누가 트레킹 하며 외모 신경을 쓴다더냐! 이 꼴로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웃으며 Hello! Hola! Gracias! 이러며 잘도 다녔다. 다들 몰골은 비슷한 수준이다.


   Italiano 산장에 짐을 잠시 내려두고 간단한 짐만 들고 Mirador Frances까지 다녀온다.

  이때 나는 거의 울며 올라갔다. 그래도 평소 등산을 꽤 해왔던 나는, 남들 하는 정도의 등산은 다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건 너무 자존심 상한다. 역시 산쟁이들이 몰려드는 세계적인 트레킹 코스여서인지... 공식적으로 표기된 소요시간을 맞추려면 짧은 다리로는 거의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해 걸어주어야 했다. 급경사 돌길을 죽을동 살동 스틱도 없이 오르려니, 다리가 더 이상은 못하겠단다. 그래도 Frances까지는 무조건 다녀와야 한다고 정신력이 시킨다.


빙하수가 콸콸 쏟아져내린다. 이걸 계곡이라 불러도 될지...

 

  드디어 Frances다!! 이곳은 산 꼭대기 빙하를 눈앞에서 가까이 바라볼 수 있는 View point였다.

  산을 오르는 내내 우르릉 쾅쾅하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산꼭대기에서 빙하가 부서져 내리는 소리였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소리 중에서 손꼽히게 웅장하고 근엄한 소리가 아닐까. 그 소리는 나의 마음을 압도하면서도, 어쩐지 편하게 해 주었다. 저음의 콘트라베이스나 베이스드럼의 울림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가루처럼 부서져내리는 얼음조각들을 보며 자연의 신비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직관할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았다.

  우르릉... 하는 소리만 나도, 트레커들의 고개가 일제히 산등성이로 향하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죽기 직전에 Italiano 산장으로 돌아왔다.

온이는 Frances까지 오르지 않고, 산장에서 나를 기다리기로 했었다. 평소 산행에 별 관심이 없던 온이는 이번 여행에서 나의 버킷리스트였던 트레킹에 덥석 합류하게 되었지만,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추워서 우의까지 꺼내 입고 앉아있는 온이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우리는 다음 산장으로 무조건 또 걸어가야 한다. ;;;;; 살려면....

아직 몬스터를 메고 4.5km를 더 걸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미 내 다리는 파업 상태였다. 살려달라고 아우성이다.

 '아직 안돼 임마.'


  Cuernos 산장으로 가는 길 만난 바다처럼 넓고 파도치는 호수는 정말 아름다웠다. 맑디 맑은 천연호수. 빙하 때문인지 아주 쨍하게 차가운 물은, 수반을 연상케 했다. (힘들어 죽기 직전에도 호수 예쁜 건 또 참을 수 없게 감동적인 개복치)




  드디어 도착한 산장. 오늘은 텐트에서 묵기로 한 날이다. (미리 텐트를 쳐놓은 campsite를 대여)

생각보다 튼튼해 보이는 텐트. 초등학교 아람단 시절 이후, (나이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 한 번도 텐트에서 잠을 자본 적이 없는 나는, 이 텐트가 밤사이 우릴 잘 지켜줄지 약간 걱정이 되었다.

  오늘 밤. 너무 춥지 않게. 우릴 지켜주렴.

혹사당한 나의 허리, 다리, 무릎, 발목, 발바닥... 내일까지 회복되길 빌며. 내일까지 Adios!


생각보다 튼튼했던 우리 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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