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개 Oct 06. 2022

두 얼굴의 고양이

세상에서 제일 순한 너 = 세상에서 제일 사나운 너



  어느 직장에서나 환경적인 위험요소는 늘 존재한다. 

  생산 제조업의 현장에서 종사하시는 분들, 실험실에서 위험한 약품들에 둘러싸여 일하시는 분들, 교통사고의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는 운수업 종사자분들. 위험요소의 정도는 소방관이나 경찰관처럼 높은 수준에서 사무직 종사자들의 낮은 수준까지 다양하겠으나, 우리는 모두 늘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일하고 있다. 


  동물병원에서의 환경적 위험 요소는 무엇일까? 도처에 있는 날카로운 처치 도구나 주사 바늘, 노출되면 위험할 수 있는 각종 검사 시약이나 약품들이 위험 요소가 될 수도 있겠으나, 뭐니 뭐니 해도 환자 자체가 가장 치명적인 위험 요소이다. 




  집에서는 순한 양, 병원에서는 호랭이?!


  동물들은 집처럼 자신이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긴장하지 않고 한껏 여유 부리며 자신의 귀여움을 뽐내지만, 병원 같이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환경에서는 주변을 경계하고 긴장하며 자기 앞에 있는 저 낯선 이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낯선 사람들에게도 친근하게 굴고 수의사에게도 의심 없이 달려와 안기는 사회화가 매우 잘 되어 있거나 천성이 착한 아이들이 더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히 많으며 사고는 늘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경우 발생한다. 

  특히 보호자분께서 본인이 키우고 있는 반려동물의 성격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시거나 동물의 습성에 대한 인지가 부족한 상태에서 사고는 더 자주 발생하게 된다. 


  진료실 안에서 잔뜩 긴장한 것으로 보이는 고양이에게 주사 처치를 하기 위해서는 바늘이 피부로 들어갈 때 고개를 돌려 물지 못하게 하기 위해 목에 넥 카라를 착용시켜야 한다. 

  그러나 한 번은, 보호자분께서 그런 것을 아이에게 착용시키기 싫다며 본인의 고양이는 절대 사나울 리가 없고 이제껏 발톱 한 번 세운 적 없는 착한 아이이니, 본인이 직접 안고 있을 테니 처치해 달라고 하셨다. 

  수의사의 감으로, 그 아이는 너무 긴장하고 있어 분명 돌발 행동을 할 수 있는 아이로 보였고 보호자분께서 다치실 수 있으니 그냥 저희가 안전하게 붙잡고 하겠다고 했지만, 보호자분은 끝까지 본인이 직접 안고 있겠다고 하셨다. 

  결국 고양이는 주사 바늘이 꽂히자마자 보호자분을 물어뜯었고 보호자분은 피를 철철 흘리며 응급실로 가셔야 했다. 이렇게 무리한 처치를 요구받고 수의사나 수의 테크니션 선생님이 같이 다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8년 전쯤 15kg 정도의 보더콜리 믹스견이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공격성을 보였다. 발가락에 상처가 나서 소독을 하러 온 아이였는데 하도 으르렁대며 온몸으로 거부하여 아픈 곳을 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보호자와 테크니션 선생님 도움을 받아 겨우 쭈그리고 앉아 소독하고 일어나려는데 진료실을 나가려는 나를 그 개가 뒤에서 공격하여 허벅지 뒤쪽을 물린 적이 있다. 보호자분이 목줄을 잠깐 느슨하게 잡은 찰나에 일어난 일이었다. 상처는 꽤 오랫동안 남아서 한동안 그 상처를 볼 때마다 불쑥 화가 나곤 했다. 




  무서운 고양이 짱구


  개에게 물리는 것도 그렇지만 고양이에게 물리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육식동물인 고양이의 이빨은 워낙 날카로워 물리면 송곳이 뚫고 들어오는 기분인데, 그 후유증도 개보다 훨씬 오래가고 상처도 깊게 남는다. 


  짱구는 가슴에 물이 잔뜩 차서 호흡이 곤란한 상태로 야간에 응급 내원하였던 노란 줄무늬의 예쁘게 생긴 고양이였다. 짱구는 유미흉이라는 질환으로 진단되었는데 이것은 림프액이라는 액체가 새어 나와 흉강에 가득 차게 되는 원인 불명의 질환이다. 

  흉강에 액체가 잔뜩 차있으니, 폐가 제대로 부풀어 오르지 못하게 되고 호흡하기가 어려워져 내원하게 된 것이었다. 밤사이 짱구는 너무 얌전했고, 진정제 한번 쓰지 않고 가슴에 바늘을 꽂아 액체를 뽑는 등의 처치를 모두 잘 이겨내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때 짱구가 얌전했던 것은, 너무 아파서 힘이 없어 얌전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낮 시간에 가슴에 차오른 액체의 양을 다시 한번 평가하기 위해 엑스레이 촬영을 하려고 하자, 짱구는 급작스레 화를 내며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분명 좀 전까지 천사 같은 얼굴이었는데 이렇게 돌변하다니. 

  넥 카라를 단단히 채우고 테크니션 선생님과 같이 앞다리 뒷다리를 나누어 잡고 촬영 자세를 잡는데, 짱구는 정말 심장 떨리게 큰 목청으로 비명을 질려대기 시작했고 사방으로 오줌을 뿌리며 반항했다. 짱구를 붙잡고 있던 테크니션 선생님과 나는 합심하여 둘 중 한 명이라도 다리를 놓치면 우린 다 죽는다는 생각으로 꽉 붙잡고 빠르게 촬영을 진행하려고 했으나, 짱구가 자꾸 오줌을 뿌려대는 통에 자꾸 지연되었고, 그러는 동안 짱구는 점점 더 화가 나고 있었다. 


  온몸을 비틀며 반항하던 짱구의 넥 카라가 결국 풀려버렸다. 짱구의 넥 카라가 풀리는 것을 본 순간 테크니션 선생님과 나는 동공 지진이 난 눈을 서로 마주쳤다. 정말 0.1초나 걸렸을까? 짱구는 넥 카라가 풀리자마자 눈앞에 바로 보였던 테크니션 선생님의 팔과 손을 와그작와그작 씹어댔다. 

  "빨리 놔!! 그냥 놔!!!"

  테크니션 선생님에게 짱구 팔을 그냥 놓아버리라고 소리를 질렀고, 짱구는 자유로워지자마자 엑스레이 기계 뒤쪽 구석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테크니션 선생님의 손에서는 선혈이 줄줄 흐르고 있었고 엑스레이실 바닥은 피바다가 되었다. 




  병원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일단 다친 선생님은 빨리 지혈을 하면서 응급실로 가게 하고, 짱구를 꺼내야 했는데, 엑스레이 기계 뒤에 웅크리고 매섭게 펀치를 날리며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물어뜯겠다고 위협하는 짱구에게 접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기계가 높이가 있는데 내 팔 길이로는 기계 뒤쪽에 있는 짱구를 꺼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다행히 키가 크고 힘도 좋은 남자 선생님이 엄청 큰 수건을 들고 나타나 수건으로 칭칭 감아 짱구를 힘겹게 잡아 올려 주셨고, 그 선생님이 힘으로 짱구를 몸부림치지 못하게 붙잡고 넥 카라를 다시 씌우는 과정에서 짱구는 자신의 분을 이기지 못해 기절해버렸다. 


  화가 나서 기절을 하다니. 나도 덩달아 패닉 상태가 되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보호자분께 전화로 급히 이 상황을 전하고 내원을 부탁드리고 나오자, 남자 선생님은 짱구가 기절한 틈을 타 엑스레이를 찍어놓고 깨우고 계셨다. 그 와중에 못 찍은 엑스레이 생각까지 하시다니,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 우습기도 하고 고마웠다. 이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자, 짱구는 모두가 다가가기를 꺼려하는 무서운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응급실에 갔던 테크니션 선생님은 양손 군데군데 찢어진 곳을 20 바늘 넘게 꿰매고 붕대를 칭칭 감고 돌아왔고, 결국 손이 너무 붓고 아파 2주간 병가를 내야 했다. 정말 어찌나 미안했는지. 그 선생님과 나는 지금까지 매우 친하게 지내는데 지금도 손에 남아있는 상처가 보일 때마다 마음 한편에 싸아한 느낌이 든다. 


  짱구는 그때부터 손을 대야 하는 모든 처치는 보호자 분과 함께 했다. 

  다행히 짱구도 보호자분께는 순둥이처럼 굴었고, (하지만 엑스레이를 찍을 땐 언제나 화를 내 보호자 분도 무서워하셨다) 보호자분께서도 짱구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전혀 아깝지 않게 생각하는 분이셨다. 짱구는 그 이후 잘 나아서 퇴원했다. 




  이처럼 병원에는 여러 성격의 동물들이 온다.

  너무 착해서 무슨 짓을 해도 순한 눈으로 쳐다만 보고 있는 아이들도 있고, 너무 화가 많아서 병원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공격을 시도하다가 스스로를 다치게 하거나 사람을 다치게 하는 아이들도 있다. 


  아무리 수의사나 수의 테크니션일지라도 사나운 동물은 무섭고 물리면 아프고 그 상처는 오래간다. 

  다만, 꼭 치료해줘야 하는 말 못 하는 동물들이기 때문에 무서움을 뒤로하고 어떻게 해서든 도와주려고 노력할 뿐이다. 

  이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보호자분을 만나면 참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도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인 것 같다. 동물병원에서 사고가 나지 않으려면 반려동물의 성격을 평소에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며, 아무리 착했던 아이라도 낯선 환경에 가거나 아픈 처치를 할 때엔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인지하고 만전을 기해야 한다. 

  서로 간의 이해가 전제되어 동물도 사람도 최소의 스트레스로 처치에 임할 수 있는 안정적인 분위기가 동물병원에 정착되길 바라본다. 

  


   

이전 13화 나는 5kg, 너는 0.5kg만 빼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