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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란 Dec 24. 2022

아침의 소리 듣기 연습

프로 ‘안들을러’의 고백

겨울밤의 무거운 잠에서 아침을 깨워본다. 핸드폰을 들어 몇 시인지 확인한다. 밖은 아직 고요하고 움직임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옆에서 자고 있는 두 아이들과 남편의 고른 숨소리는 방안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감사의 기도를 한다. 내가 지금 듣고 있는 이 소리에 대해. 이 방을 탈출해야 한다. 주저하다가는 다시 무거운 잠으로 빨려 들어가겠지. 아이들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 닌자처럼 음소거모드로 재빠르게 방을 빠져나온다. 일찍 일어날 수 있는 날은 그것으로 이미 나는 성공한 자다!  


어제부터인가 신기하게 새들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지저귐도 있었지만 이제는 가까이에서 분명하게 짹짹 거리는 소리도 들려온다. 어제가 일 년 중 밤이 긴 날이었다고 하던데 정녕 새들은 봄이 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어제 산책길은 유난히 맑았다. 갑자기 파란 하늘을 드러낸 겨울은 지난날들의 어둠의 흔적들의 행적을 묻게 했다. 이틀 전만 해도 태양은 나를 찾지 말라는 말로 우리를 남긴 채 떠나버렸었는데 이내 깜짝 출현해 주는 태양으로 사람들은 미뤄 두었던 정원청소를 분주하게 시작한다. 남편도 동지가 지나면 이제부터는 봄이 오라는 거라고 으스레를 떨었다. 오랫만에 느껴보는 태양이 콧등을 따뜻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희망고문에 빠져들면 안 되지 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줄리아 캐머런의 <아티스트웨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이라는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의 속도가 느려지고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녀는 자신의 책을 듣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소리들,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는 그동안에 소리들에 귀 기울이지 못했던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나는 듣지 않고 있었다. 내가 할 말만을 생각하느라 얼마나 듣는 시늉만을 하고 있었던가.


듣기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산책길에서도 듣기 연습을 시작해 보았다. 새들이 이렇게나 많이 지저귀고 있었는지 몰랐다. 여러 가지 목소리로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서 명쾌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둘째 아이를 태우고 온 유모차의 바퀴 굴러가는 소리도 아직도 푸른기를 지닌 잔디를 리듬감 있게 쳐대며 우리의 산책길에 함께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하는 말에도 듣기 연습을 해본다. 그들의 마음에 닿아보기 위해 내가 말을 하기 전에 그들의 말을 끝까지 듣는다. 가만히 들어보니 세 살의 작은 아이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들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하며 누군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길 바라고 있었다. 10년 이상 넘게 알아 온 남편을 듣는 것은 나중에 책 한 권을 써도 모자랄 것 같다. 고백하건대,


나는 사실 프로 ‘안들을러’다.


처음에 그를 만났을 때 나는 그의 사소한 말, 그의 목소리에 얼마나 귀 기울였던가. 나도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감탄했었던가.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그 능력은 어디론지 사라져 갔다. 사랑하는 마음이야 항상 똑 같다는 농담섞인 이야기로 가볍게 넘어갔다. 남편은 자신의 말을 들어 달라고 했다. 나는 나의 말도 들어달라고 반박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나의 가슴을 두번치며 ‘나’에 대해 강조했다. 나의 심각성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다들 그러고 사는 거라고 나를 돌아보기보다는 달래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어떨 때는 당신도 나를 잘 듣지 않는다며 화살을 그에게 되돌렸다. 아, 뒤통수 한 대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활짝 들며 이내 엄청난 후회가 밀려들어온다. 아 나의 듣지 않았던 죄.


그녀는 그래도 부드럽게 나를 타일러 주는 듯했다. 연습을 하면 된다고 했다. 하나하나 잘 듣는 방법에 대해 그리고 그 소리들을 나의 삶에 적용하고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 준다. 그리고 듣기 시작하면 좋은 아티스트가 될 수도 있다고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아침의 소리를 듣는것으로 연습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첫째 아이가 두 눈을 비비며 집안에 불을 켠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설레는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잠이 일찍 깨었나 보다. 아이는 며칠 전 중국 식품점에서 사 온 유자차를 꺼내어 미지근한 물에 타 주었다. 커다란 수프 스푼을 들고 한 스푼씩 유자차를 후후 불어가며 나름의 아침을 깨운다. 그리고 나의 나의 옆에 착석한다. 아, 나의 꿀 같은 아침시간 듣기 연습 시간은 이것으로 종료.




크리스마스이브의 하루. 오늘은 내 귓가에 어떤 소리들이 찾아올까. 나는 어떤 소리에 귀 기울일까. 조금은 설레는 하루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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