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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진 Sep 21. 2024

잃어 버리지 않았던 나의 꿈

결혼 전부터 6개월을 쉬고 결혼 하고 나서도

 약 1년을 쉬었던 것 같다. 

 번 아웃이 왔던 나는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 후에도 그냥 주부로서의 삶을 살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주부는 나와 체질에 맞지 않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학원 강사를 해 보려고 학원 수학 강사 

면접을 봤고 합격을 했다.

 그런데 고민이 됐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뭘까? 내 꿈은 뭐였을까? 

이런 물음이 계속 시작됐다.

 20대를 지나 서른살이 된 나는 진심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에 자지도 않고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유망 직업을

 검색하기도 했다.

 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열정과 깡 같은 의지가

 생기고 내가 원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계속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렇게 그 직업을 인정받으면 그것이 나의 유망 직업이

 되는 것이다.

 괜히 적성에도 맞지 않는 미래의 유망 직업 중에 본인

 직업으로 한 가지를 선택하고서는 오히려 내가 생각했던 

길이 아니라며 힘들어하는 경우를 보았다. 그리고 흥미가 

점점 떨어지기 때문에 언젠가는 스스로 지쳐서 손을 놓게

 된다. 그러는 순간 그 직업을 갖기 위해 물질적인 투자와

 노력했던 시간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 내가 얘기를 하면 아이들이 내 얘기를

 듣기 위해 내 주변으로 몰려서 아이들에게 항상 둘러 싸여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단순하게 레크레이션 강사를 해 볼 까 싶었다. 

근데 그 직업은 나에게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연예인이 된다면 오프라 윈프리처럼 자유롭고

 당당한 스타일 컨셉의 나만의 토크쇼를 진행하는

 진행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녀의 자서전 책을 사서 읽어 내려갔다.

 그녀에게 성공한 비결을 묻자     

“나는 흑인이다. 

사생아다. 지독히 가난했었다.

그리고 뚱보에다 미혼모였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라는 말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정서적 학대와 

신체적 학대를 당하면서 알콜 중독과 분노조절장애

 그리고 양극성 정동장애를 겪고 있는 아빠 아래에서 

가정 폭력을 당하고 항상 억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는 울지 않았고 쉽게 말해 

꼬여버린 내 운명과 싸우기로 결심하고는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난 눈물이 없는 편이었다.

 물론 마음이 많이 여린 편이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이번 일도 헤쳐 나가야 하며 엄마와 

동생을 위해 단단해져야 한다고 다짐했기에 

무의식적으로 눈물마저 억압하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눈물이 많은 편이다.

 예전에는 울면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울고 싶을 때나 저절로 눈물이 나올 때 웃을 수 있어

 좋듯이 울 수 있어서 좋다.

 지금 나는 더 이상 내 감정들을 억압하지 않는다. 

그냥 내 마음 가는대로 한다. 그리고 이것이 내면의

 자유라는 것을 깨닫고 자유를 얻게 된 지금에 감사해 한다.

 한번은 너무 힘들어 고등학교 때 집을 나가려고 

무작정 밤늦게까지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유흥가만 번쩍거리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가출한 청소년들이 주유소에 

취업해서 한방에서 혼숙을 하는 등 해서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아직 미성년자이자 여자인 내가 가출했을 경우 갈 수 있는 

곳은 10대를 고용하고 영업하는 유흥업소 외에는 갈 때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쪽으로 빠지는 순간 내 인생은 거기서 끝나고

 만다고 여겼다. 

 가출할 마음으로 충동적으로 집에서 뛰쳐나왔던 나는

 밤거리를 걸으며 다짐했다.

 절대 삐뚤어 나가지 않고 집을 나가 거리의 여인으로

 전락하지 않겠다며 말이다.

 그래서 학생의 신분인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공부이고 그것을 통해 내가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보다 더 넓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나에게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은 있어도 그들은 나를 

구원해 줄 수 없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스스로 느껴서 행동하는 주체는

 바로 ‘나’ 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쓴 책을 읽으면서 나와 결이 다를 수는 있지만

 공통점을 찾았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삶을 살았지만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꿈을 꾸었던 것이다. 

 내가 강의할 때 청중에게 그대의 꿈이 뭐냐고 물어 보면

 ‘꿈’ 이라는 막연한 단어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꿈’ 이라는 단어가 피부로 쉽게 다가오지 않고 멀게 

느껴진다면 다른 말로 “목표” 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 지금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러면 간단해진다.

 나는 내가 꿈꾸는 길은 ‘대중 강사’ 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이 곧 목표가 되었다.

 그래서 대중 앞에서 강의 하는 직업을 알아봤고 

그 중에 ‘이미지 컨설턴트’ 라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목표가 생기니까 30대로 집안 살림 하며 틀어 박혀 

있는 주부에서 뮤지컬의 주인공이 된 것 처럼 활기찬

 여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사람은 살아있는 한 허무맹랑한 꿈일지라

도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 그것이 

무엇이 됐든 꿈을 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이미지 컨설턴트가 되겠다고 하자 

내 주변에서는 대체적으로 회의적인 생각을 하는 

반응들이었다.

 보통 예전부터 이미지 컨설턴트는 승무원 출신들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미지라는 것은 내적 이미지도 있지만 우선 외적 

이미지에서 첫인상이 3초 만에 결정되기 때문에 키 크고

 날씬하며 어느 정도 미모가 있는 여성들이 그들의 

외적인 강점을 살려 이미지 컨설턴트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아나운서나 쇼 호스트를 지망하시는 분들도 이미지 

컨설턴트에 대한 꿈을 키우시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이분들은

 기본적으로 외적 이미지가 단정하고 품격 있으며 무엇보다 

스피치가 기본적으로 뛰어난 분들이다.

 그런데 나는 키 160cm미만의 작은 키에 왜소한 체형으로 

사람들 틈에서 확 눈에 띄는 그룹에 속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등장만으로 청중들이

 ‘와~ 멋있다! 역시 이미지 컨설턴트들은 다르구나’ 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에는 역부족인 신체적 조건을 가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다보니 시댁이나 남편에게 강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그냥 학원만 나오고 강사는 못 될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 우리 친정에서도 반신반의 했을 정도였다.

 친구들과 그리고 연락하고 지내던 학원 강사 선생님들은 

내가 웃음치료사가 딱 맞다며 그걸 준비하라는 조언을 하고는 했었다.

 그러나 내 목표는 이미지 컨설턴트였다.

 학원을 등록하고 첫 개강 날 나름대로 꾸미고 갔는데 역시 

외적으로 뛰어난 조건들을 갖춘 분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는 현직 스튜어디스들을 수련시키는 스튜어디스

 출신의 강사 분도 계셨고 기업체 홍보팀에 계시는 전문직 여성도

 있었으며 패션 업계에서 일하시는 감각 있는 전문가도 있었다.

 학원 수강생들 사이에서는 알게 모르게 기 싸움이 있었고 모두

 자존심과 자부심이 대단했다.

 나는 과연 내가 이 분야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었다.

 일단 학원에서 가르쳐 주는 모든 것을 마스터 하자가 내 목표였다.

 목표에는 단계가 있어야 한다.

 1단계, 2단계, 3단계 등을 거쳐 최종 목표를 달성하여 꿈을

 이루어 내는 것이지 바로 목표로 돌진한다는 생각을 하면 

막연한 생각이 들면서 중간에 포기하기 쉽기 때문이다.

 학원에서 “이미지 컨설턴트 전문가 핵심과정” 과 “매너 정규과정" 을 수료하고 

마지막 시간에는 각 지원자들이 주어진 10분 동안 강의를

 하고 평가받는 자리로 출강의 기회를 줄 만한 수료자를

 뽑는 자리였다.

 어쩌면 이날만을 기다리며 달려온 과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파워포인트를 다뤄 본 적이 없었고 강의는

 지금 생각해 봐도 형편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다.

 근데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리 전문기관에서 수료를 했다 하더라도 

약 2개월의 8주 과정만으로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미지 메이킹’ 과 ‘비즈니스 매너’ 그리고

 ‘CS' 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었다.

 그래서 서점으로 가서 내가 배워야 할 것에 관한 

책들을 사와서 메모해 가면서 공부했다.

 그리고 나만의 강의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파워포인트로 강의안을 만드는데 미숙했던 

파워포인트 스킬을 미리 완전히 마스터 했다.

 그리고 각 주제에 맞는 나만의 강의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남들과 비슷 비슷한 그리고 너무 뻔한 이야기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저 강사가

 이 날의 1~2시간 교육를 위해 얼마나 준비를 많이 했는지

 느낄 수 있게 독창적이며 지루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교육은 실무에 도움이 되는 것을 다루는 내용이기

 때문에 실용적이고 동기 부여가 되며 일에 도움이 되는 

강의를 하는 강사가 되고 싶었다.

 사실 그 때는 맨땅에 헤딩이었다.

 여자 나이 30살에 기혼자이고 강사로서의 경력도 

전혀 없어서 프로필도 기본 정보 말고 쓸 커리어가 단

 한 줄도 없었다.

 하지만 그 어떤 누구도 무언가를 시작할 때 처음에는

 모두 다 아무것도 손에 쥔 것 없이 시작하게 된다. 

 막연하게 나를 불러 주는 곳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회’ 라는 소중한 시간이 주어졌을 때 완벽히 해 낼 수

 있도록 준비된 것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즉, 나를 부를 수 밖에 없는 그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자만이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다고 판단했다.

 여성들은 누구나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어 하며 카리스마

 있고 전문직 여성으로 당당한 모습을 갖추고 싶어 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커리어우먼이 되기 위해 애 쓰지 말았으면

 한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일을 처리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는 다른 한 가지의 장점 즉, 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무기는 나를 더 성장시켜 줄 것이고 계속해서 

고민하게 만들 것이며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하게 

되면 내 커리어는 그 때 알아서 채워지는 것이다.

 나 또한 이런 생각으로 누가 언제 불러줄 지 모르지만

 ‘당장 내일이 교육입니다’ 라는 갑작스러운 기회가 생겼을 때

 ‘예. 알겠습니다’ 라고 답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일단 미리 강의안을 만든 것이다.

 나와 같은 기수였던 분들과 수료 후 안부를 물으며 연락을 

했는데 단 한 사람도 현직에서 뛰고 있는 분들이 없었다.

 아카데미는 말 그대로 학원이다. 물론 처음부터 뛰어나게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되면 출강의 기회가 주어지겠지만 

그런 케이스는 거의 없다.

 그래서 강사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교육 컨설팅 회사와 

파트너 강사가 되어야 하는데 경력이 전무한 강사를 

받아주는 곳은 거의 없다.

 강의 문의 수요는 일정하거나 경기 탓으로 줄어드는 

추세인데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없는 신입 강사를 채용하는

 것은 드문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바로 ‘나’ 를 알리는 것이었다.

 나는 일단 명함을 만들었다.

 ‘Fun Consultant 박현진’ 이라는 네임에 내 핸드폰 번호와

 이메일 주소가 있고 명함 뒤에는 강의 전문 분야를 기재하여

 전체적인 디자인을 해서 명함을 주문, 제작했다.

 물론 내 사무실이 없기 때문에 명함에 있어야 할 회사명과 

사무실 주소와 팩스 번호는 없었다.

 소속이 확실하지 않은 참 신뢰감과 무게감이 없는 명함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름과 핸드폰 번호가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주문한 나만의 명함이 나왔을 때 너무 뿌듯했다. 

마치 신입사원들이 회사의 출입증과 회사로부터 처음 

명함을 받았을 때의 기쁨과 자부심과 같은 것이다.

 주문한 명함을 받고 내가 한 일은 지금 생각해도 어떤

 마음으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일명

 ‘영업’ 을 하기 시작했다.

 영업을 하기 이전에 강사로서의 이미지를 더 구축하기 

위해 파격적인 변신이 필요했는데 항상 긴 생머리 헤어 

스타일인데 단발 보브 컷으로 잘랐다.

 그리고 전문적이고 신뢰감을 주는 정장과 적당한 굽이

 있는 힐을 준비했다.

 또한 시력이 0.1로 나빠서 때로는 안경을 쓰고는 했는데 

이제부터 렌즈를 끼기 시작했다.

 처음 렌즈를 낄 때 내 동공을 만지는 것이 무서웠고 손이 

부르르 떨려서 렌즈 끼는 연습을 한참이나 했다. 

 보통 강의를 나가는 곳은 기업체, 행정기관, 공공기관, 

고등학교 및 대학교 등인데 내가 교육 담당자를 만나기 

가장 쉬운 곳은 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이다.

 왜냐하면 요즘 행정기관과 공공기관 홈페이지를 가보면

 각 직원별로 직원 이름과 업무분야, 전화번호가 안내 되어 있다.

 그럼 나는 손쉽게 교육 담당자와 이름 그리고 사무실 직통

 전화 번호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집에서 무작정 교육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를 소개하려고 하는 것은 매너가 아니며 신뢰감도 떨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것 또한 실례가 될 수 있으나 강의 제안서를 들고 

직접 교육 담당자들을 만나러 다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때가 8월 한 여름으로 날씨가 매우 더웠고 거기다 몸에

 열이 많아 유독 여름과 체질이 맞지 않았는데 단정한 

머리에 렌즈를 끼고 정장을 입었다. 

 그리고 여름이라고 정장에 맨 다리는 T.P.O에 맞지 않기

 때문에 스타킹을 신었는데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

 힐을 신고 거리를 걷는데 인간적으로 너무 더웠다. 

 속으로는 문전박대 당하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에 매우 

떨리고 두려웠다.   

 그 때 마다 행정기관 같은 곳은 자유롭게 민원인이 찾아 

올 수 있는 비교적 접근이 쉬운 곳이라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미리 홈페이지에서 여러 ‘교육’ 을 담당하시는 공무원의 정보를

 미리 알고 각 층에 써져 있는 조직도와 직원 소개를 확인하고 

교육 담당자님께 다가가서 명함을 건네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너무 바뻐 보이면 밖에 자리에 앉아서 여유 있어 보일 때 

까지 기다렸다.

 승부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눈치가 밥 벌어 준다.

 나의 우려와는 달리 예상 밖으로 공무원 분들이

 미팅 기회를 주셨다.

 알고 보니 교육 담당자들은 질 높은 다양한 교육 전문 분야에

 있는 강사를 섭외 하는 것이 중요한데 정부 예산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강의료가 낮아서 강사 섭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셨다.

 또 어떤 분들은 강사 평가가 좋은 강사를 매번 모시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강사를 섭외해서 제일 만족도가 높은 강사와

 같이 협업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만난 대부분의 교육 담당자님들은 한 번도

 이렇게 직접 찾아 온 강사님은 없었다면서 나를 흥미롭게 

보셨다. 바로 이 부분에서 점수를 많이 딴 것 같다.

 또 강의료가 낮다고 하는데 죄송하지만 강의료가 어떻게 

책정되어 있냐고 여쭤 보니까 그 당시에 시간 당 10만원이 

기본인데 어떤 강의는 3만원이나 5만원, 7만원이라고 말씀하셨다.

 원래 강사로 첫 출발을 할 때 보통 1시간에 3만원으로 

계약을 하게 되는데 3만원을 받고 여기 저기 지방을

 다니며 ktx를 타고 부산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

 보통 대부분 1시간이나 2시간 교육을 하는데 교통비가

 지급된다고 해도 자기 돈이 더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대신 커리어가 생기기 때문에 강사비가 적어도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 회사에서 맡은 교육을 하기 위해 지역을 

가리지 않고 여기 저기 지방을 다니며 강의를 한다.

 나도 처음에는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을 봤다. 

이 회사의 시스템은 경력이 없는 강사는 시간당 3만원이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데 경력도 없는 주제인 나는 자존심에 금이 갔다. 

경력이 없으면 부족한 강사이고 경력이 많으면 훌륭한

 강사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 경력이 없어도 부족하지 않은 강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 가치는 내가 정하고 싶었다. 그래서 비록

 ‘영업’ 이라고 표현 했지만 직접 발로 뛰면서 나를 

마케팅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물론, 앞전에 얘기했듯이 모든 기관에서 나를 반겨

 준 것은 아니다.

 너무 많이 바쁘신 듯 한 분께는 간단히 명함과 강의

 제안서만 드리고 자리를 비켜 드렸다.

 또 오랫동안 한 강사와 교육을 진행하도 보니 강사와의

 유대관계가 커서 다른 강사와의 접촉을 피하려고 하는

 분들도 꽤 많았다.

 이렇게 주말을 빼고 평일에 출, 퇴근을 하면서 인천

 전역을 돌아다녔다.

 장마가 시작되었는데 오히려 비가 많이 오면 상대적으로 

민원인들이 별로 없다. 그리고 나의 나름의 전략이 있었는데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찾아 온 사람에게 조금의 시간을 더

 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오히려 비가 오는 날 쉬지 않고 나갔다.

 그러나 내 핸드폰은 울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2개월이 지났을 무렵에 어느 한 기관에서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교육 담당자께서는

 ‘죄송한데 이건 유료 교육이 아니라 무료 교육으로 

진행되는 것인데 강의를 맡아 주실 수 있나요?’ 라고 전화를 주셨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네. 감사합니다’ 라는 대답과 함께 교육 주제와 

교육 대상자 등을 꼼꼼히 물어봤다.

 교육 타겟을 잘 모르고 가서 그들과 거리가 먼 

강의안을 가지고 교육을 하면 교육의 만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리 만들어 놓은 강의안에서 교육 대상자에

 맞는 맞춤형 교육이 될 수 있게 강의안을 수정하고

 내용을 추가하기도 했다.

 한 기관에서 하는 문화 교실 강의였는데 특강 주제

는 ‘나의 이미지 찾기’ 였다.

 강의 준비 할 때는 무척 떨렸었는데 이상하게 

무대에 서니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교육 대상자가 20대부터 50대 까지 다양한 연령대였기

 때문에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며 강의를 

끝마무리 지었다.

 특강이 끝나면 ‘강의 만족도 설문 조사’를 한다.

왜냐하면 정부의 정책에 따른 교육이기 때문에 설문 조사를 

통해 교육 효과를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공공 및 행정기관, 기업, 대학교 등등의 곳은 교육이 

끝나고 나면 강사 평가를 한다. 피드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설문 조사 조항은 한 마디로 살이 다 떨리는 조항들이다.

 예를 들어 

 ‘이 강사가 이번 교육을 위해 교육 준비를 충분히 하였다고

 생각합니까? 라는 질문에 선택 답변은

 ‘충분히 준비 했다. 준비 했다. 보통이다. 준비하지 않았다. 

전혀 준비 하지 않았다’ 보통 이렇게 다섯 조항이다.

 그리고

 ‘이번 강의의 만족도는 어느 정도입니까?’

 ‘매우 만족한다. 만족한다. 보통이다. 만족하지 않는다. 

매우 만족하지 않는다’

 이런 내용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를 통계를 낸다.

 근데 이날 강의한 설문 조사 결과가 그동안 

유료 특강을 담당하고 있었던 강사 설문 조사 결과보다 

훨씬 좋은 반응을 보였고 교육 담당자는 다음달 유료 

특강을 한번 해 주실 수 있냐며 내게 유료 교육 

기회를 주셨다.

 난 열심히 파이팅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 그동안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 터널의 길이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모든 터널에는 끝이 있고 터널을 빠져 나올 때

 강한 햇살이 나를 반겨 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발로

 뛰어 다녔다.

 그런데 첫 강의를 무사하게 끝내고 그로 인해 또 한번의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강의를 준비하고 교육장소로 이동하며 무대에 서서 

마이크를 잡는 순간 나는 너무 행복하다. 물론 막중한 

책임감이 들고 때로는 부담감도 든다. 왜냐하면 모든 

청중들이 무대에 서 있는 오로지 나를 향해 모두 집중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의가 끝난 후에 나는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 

 호기심 어리고 기대하는 눈빛이 있는 반면에 하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교육이 짜증나서 무표정하게 내게 말을 거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청중은 어디 한번 해 봐 라며 나를

 지켜보기도 한다.

 그런데 교육이 끝나고 나서 청중들이 긍정적이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를 봐라 봐 주실 때 나는 오히려 에너지를 얻는다. 

그리고 나를 계속 무대에 서고 싶게 만든다.

 또 다른 센터에서 교육 담당자님과 처음 만나 미팅을 가질 때

 나의 적극적이고 붙임성 있는 성격의 털털한 모습이 오히려

 청중에게 거리감 없는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며

 강의 기회를 주셨다.

 이때 진행했던 교육은 기초 생활 수급자들 대상의 교육이었다.

 이번 교육를 통해 재기 하여 취업을 할 수 있도록 의지를 

심어주는 교육이다. 이 교육은 매년 진행되는 의무 교육으로

 일주일에 한번 교육이 있고 보통 한달 동안 교육이 진행된다.

 나는 셋째 주 교육으로 리더십 교육을 맡았다.

 매년 꾸준히 의무적으로 받아온 교육이기 때문에 교육생들은 

보통 식상해 하거나 처음부터 분위기가 많이 다운되어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일어난 사람들의 실제 사례를

 들어 성공 스토리를 들려주며 교육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셀프 리더십을 심어 주고 싶었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성공 스토리를 듣기 좋아한다. 그 이유는 

그 과정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이다

 교육 목표에 따른 교육 내용과 그리고 무엇보다 교육 방향이 중요하다.

 명함의 네임처럼 Fun Consultant 답게 지루하지 않도록 

교육생에게 질문을 하면서 주고 받는 요즘 말로

 티키타가를 하면서 강의를 진행했다.

 교육담당자님은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무려 4시간의 

교육인데도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좋았다며 칭찬해주셨다.

 그리고 교육 담당자님도 강의 중간 중간 들어 오셔서

 교육에 참여했는데 강의 내용도 좋았다며 다른 분들에게 

추천해 주시겠다는 말씀까지 해 주셔서 너무 기뻤다.

 그래서 소개와 소개를 통해 여러 기관에 출강해 특강

 외래 강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내가 직접 교육 담당자를 만나 미팅한 분들 외에 모르는

 분들에게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모르는 번호가 떠서 스팸 전화인가 하고 받았는데

 직접 자신을 소개하시면서 강사 분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선생님을 추천 받아서 전화를 주셨다면서 면접 이미지와 

스피치에 대한 취업 특강 프로그램 강의를 맡아 달라고 하셨다.

 어느 정도 나의 강의를 인정해 주셨다는 것과 내가 앞으로

 잠재력이 있는 강사라는 생각이 들어 뛸 듯이 기뻤고 더 힘을 냈다.

 역시 직접 발로 뛴 보람이 있었다.

 계속 힐을 신고 돌아다녀서 뒤꿈치가 까지고

 발은 퉁퉁 부었었다. 

 그러나 내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나는 이 때 정부에서 진행하는 ‘청년 인턴 사전직무교육’ 및 ‘취업 캠프 강사’, 

근로자문화센터의 ‘예비 근로자 교양 교육’, 

경인종합고용지원센터(노동청 특화 산업)

의 ‘담쟁이 특강’, 서울, 인천 각 고용지원센터 및 여성인력개발센터 교육 담당,

 인천여성취업센터의 ‘취업 상담사 대상 프리젠테이션 기법 교육’,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우먼 멘토링 프로그램’, 새일센터 ‘1/4분기 임직원 교육’, 

여성의 광장 ‘제14회 여성주간 기념 특강’ 대표 강사 등등의 정책 사업 

특강을 운영하는 다수의 공공 기관과 행정 기관에 출강을 하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 꿈을 꾸기 시작했고 미친듯이 꿈 속으로 빠져 들어갔으며

 그 꿈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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