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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진 Sep 21. 2024

2007년 4월 21일

 2007년 4월 21일은 내가 결혼한 날이다.

 내 나이 29살 때 나는 결혼을 선택했다.

 내 친구들과 지인들이 올 때 마다 너무 고마웠고 이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등 인생에 딱 한 번 있는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드디어 웨딩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CD로 보았는데 양가 어머니들이 화촉을 밝히러 가는데 엄마는 울면서 가고 있었다.


 내 삶의 목표가 엄마였듯이 엄마와 나는 많은 것을 함께 한 동지애 같은 것이 있었고 무뚝뚝한 아들과 달리 엄마 옆에서 쫑알 쫑알 얘기하는 나에게 의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 동지였고 그토록 의지했던 딸이 엄마 곁을 떠나기 때문에 내가 결혼 준비를 할 때부터 너 없이 어떻게 사냐며 눈물을 흘리셨다.

 철없는 딸은 그럴 때 마다 엄마를 위로 했지만 자신의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마냥 설레임과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아빠의 손을 잡고 버진 로드를 걸어가는데 아빠는 그 동안 자신 때문에 힘들게 살아온 딸에게 미안해 눈물이 나는 것을 참으려고 혀를 깨물었다고 한다.


 아빠의 손을 잡고 있었던 나는 이제 남편의 손을 잡고 있었다.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우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부모님들도 눈물을 흘리는 등 눈물바다가 되는데 결혼식 날 다행이 내가 거쳐 온 힘든 지난날이 떠오르지도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내 인생의 2막에 행복했었다.

 우리 부모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계속 그렇게 웃으며 행복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부모님도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축가는 내가 남편한테 부탁했다.

 다른 사람의 축가는 듣고 싶지 않고 오빠가 우리의 결혼을 축하하면서 내게 노래를 불러 달라고 부탁했고 오빠는 몇 번 생각하다가 자기가 축가를 부르겠다고 했다.


 내게 축가로 부를 노래에 대해서 철저히 비밀로 붙였는데 에코의 ‘행복한 나를’ 을 부르기 시작했다.

 예식장에서 잘 부르지 않는 옛날 노래라 왜 이 곡을 선택했는지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오히려 지금 되 뇌이게 되니까 가사 하나 하나가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에코의 ‘행복한 나를’     

몇번인가 이별을 경험하고서 널 만났지

그래서 더 시작이 두려웠는지 몰라


"하지만 누군갈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건

니가 마지막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우- 나처럼     

바쁜 하루 중에도 잠시 네 목소리 들으면

함께 있는 것처럼 너도 느껴지는지

매일 밤 집으로 돌아갈 때 그 곳에 네가 있다면

힘든 하루 지친 니 마음이 내 품에 안겨 쉴텐데     

지금처럼만 날 사랑해줘 난 너만 변하지 않는다면

내 모든걸 가질 사람은 너뿐이야 난 흔들리지 않아

넌 가끔은 자신이 없는 미래를 미안해 하지만

잊지 말아줘 사랑해 너와 함께라면 이젠 행복한 나를     

바쁜 하루 중에도 잠시 네 목소리 들으면

함께 있는 것처럼 너도 느껴지는지

매일 밤 집으로 돌아갈 때 그 곳에 네가 있다면

힘든 하루 지친 니 마음이 내 품에 안겨 쉴 텐데     

지금처럼만 날 사랑해줘 난 너만 변하지 않는다면

내 모든걸 가질 사람은 너뿐이야 난 흔들리지 않아

넌 가끔은 자신이 없는 미래를 미안해 하지만

잊지 말아줘 사랑해 너와 함께라면 이젠 행복한 나를

난 많은 기대들로 세상이 정해 놓은 사랑을 버리고

니 마음처럼 난 늘 같은 자리에

또 하나의 니가 되고 싶어 소중한 널 위해     

지금처럼만 사랑해줘 항상 너만 변하지 않으면

내 전불 가질 사람은 너뿐이야 난 흔들리지 않아

자신 없는 미래 넌 미안해 하고 있니

넌 이제 혼자가 아니야 이젠

잊지마 너와 함께라면 언제나 행복한 나를"

   

 1부가 이렇게 끝나고 2부가 시작되었다.

 2부드레스로 갈아 입었는데 레드 탑 드레스였다.

 하객으로 와 주신 분들이 신부가 너무 예쁘다며 신랑이 잘 사는 집안인가?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결혼식 날 특히 예뻤다고 한다.

 특히 레드 탑 드레스를 입었을 때 빨간색이 참 잘 어울렸고 참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친구들은 레드 탑 드레스를 입은 저 여인이 부디 잘 살기를 바랐다고 한다.


 폐백을 하고 결혼식이 끝났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해서 결혼식이 끝나고 나니 배가 고팠다. 그리고 긴장이 풀려서 인지 몸이 천근 만근이었다.

 우리는 웨딩카를 타고 바로 인천국제공항으로 갔고 비행시간이 한 시간 정도 남아서 식사를 했다.

 우리가 결혼한 날 결혼식이 끝 날 무렵에 가랑비가 와서 걱정을 했는데 비가 조금 오다 멈춰서 다행이었다.

 마치 내가 비 오는 날 태어난 것처럼 내 결혼식 때도 비가 왔었다. 

 우리는 ‘세부’ 로 신혼 여행지를 떠났고 풀 빌라에서 그냥 쉬는 여행이 아니고 액티브 한 스포츠와 활동적인 패키지 프로그램으로 떠나는 신혼여행을 선택했다.


 수상에서 할 수 있는 레저란 레저를 모두 한 것 같았다. 쉬는 타임 없이 계속 프로그램이 진행되니까 피곤함이 몰려 왔다. 마치 내가 해병대 체험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패러 글라이딩을 할 때 공중에서 바다를 내려 보니 갑자기 멀미 같은 현상이 나타면서 하늘에서 구토를 했다.

 님편이라는 사람은 그저 신났고 토하는 나를 걱정하는 대신에 옆에서 막 웃고 있었다.

 남편이 물을 좋아해서 스노쿨링을 계속하는 등 남편은 나와 함께 하기를 원했는데 나는 잠시 쉬기 위해 바닷가에서 누워 있었다.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을 정도로 힐링이 되는 곳이다.

 남편과 우리는 아이도 없으니까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자고 했다. 특히, 미국이라는 나라는 꼭 가보고 싶었다.

 우리는 수상 스포츠 뿐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나이트 투어’ 였다.

 일단 어느 바를 들어갔는데 전부다 남자 손님들만 있었고 무대가 마련되어 있는데 노래가 시작되자 예쁘고 섹시한 필리핀 여성들이 비키니 의상을 입고 춤을 추었다. 그리고 번호표를 달고 있었다.

 그러니까 마음에 들면 그 번호를 선택해서 같이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으로 신혼부부들을 데리고 온 가이드가 대단해 보였다.


 우리 네 커플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혼이 나가 있었다. 오히려 남자들은 일부로 무대를 보지 않고 자기네들끼리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모두 다 예쁜 여자들에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카지노를 갔다.

 많은 외국인들이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간단히 할 수 있는 게임을 했고 돈을 두 배로 땄다.

 우습게도 여기가 천직인가 싶었다.


 그 다음은 트렌스젠더 쇼를 보는 것이었고 마지막은 나이트를 가는 일정이었는데 나이트에서 신나게 놀려고 왔는데 세상에 우리나라 70년대를 연상시키는 무대와 노래 때문에 스테이지에서 적당히 놀다가 자리로 돌아왔다.

 근데 남자들이 나이트 투어를 하면서 이런 저런 술을 섞어 마시면서 너무 술을 많이 먹은 것이다. 나이트에서도 데킬라를 시켰고 네 남자들은 자기네들끼리 서로 주량이 쎄다면서 거침없이 술을 먹었다.

 이제 봉고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야 하는데 오빠를 뺀 나머지 남자 세 명이 완전히 취해서 여자들의 부축을 받아 겨우 차를 탔고 오빠는 남자들이 다 술에 취했으니 자기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정신력으로 버텼다고 한다.


 완전히 뻗어버린 자기 남편들에게 신부들은 화가 났다.

 그리고 어떤 분은 인사불성이 된 상태인데 어디 가서 한잔 더 하자고 외치고 있는데 그 광경이 너무 웃겼다.

 또한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오빠가 든든하고 자랑스러웠다.

 오빠는 호텔로 가는 봉고차 안에서 가이드에게 필리핀으로 이민 가는 법에 대해 물어보며 필리핀으로 이민 오고 싶다고 했다.

 오빠는 결혼 전부터 호주로 이민 가고 싶은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나는 엄마를 두고 차마 이민을 갈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어찌됐든 호텔에 도착했고 뻗어버린 세 남자들을 몇 명이 달라붙어 부축해서 호텔방으로 다 옮기고 나서 오빠와 나는 우리 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나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한참을 얘기하고 있는데 오빠의 리액션이 없길래 봤더니 세상에 호텔방에 들어오자 정신력으로 버텼던 오빠는 침대까지 못 가고 바닥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어제 있었던 일이 다 생각 나냐고 물어보니까 나이트부터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이드랑 이민에 대해 한참을 얘기했는데 그것도 생각이 안 나냐고 물어보니까 왜 자신이 뜬금없이 이민에 대해 얘기했냐며 그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신혼 여행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어 남자인 자기가 그나마 깨어있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버틴 것 같다고 하는데 그런 자세가 너무 마음에 들어 든든해서 좋다라고 안아 주었다.

 마지막으로 '날루수완(nalusuan)' 섬을 갔는데 바닷물이 에머랄드 색으로 밑에 있는 모래가 보일 정도로 투명했다.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아름다운 섬이었다.

 이 섬이 인상적이어서 인터넷 아이디를 섬 이름으로 변경했다. 왜냐하면 신혼여행 중에 가장 좋았던 곳을 평생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로 내일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인데 네 커플 중 세 커플들은 나이가 비슷 비슷 했다.


 그런데 한 커플은 50대로 보이는 커플인데 남자 분은 프로그램에 잘 참여하지도 않고 말씀도 없으셨다. 대신 여자 분이 애교 있게 말을 많이 하셨다.

 그리고 남자 분은 직업 상 얼굴이 타면 안 되는 직업인지 자외선 차단제를 바를 때 얼굴이 패왕별희처럼 하얗게 변할 정도로 듬뿍 바르셨다.

 그래서 특이한 그 분을 볼 때 마다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말씀이 쭉 없으시다가 내일이 한국으로 떠나는 날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내일이라고여? 맙소사...‘ 이란 말을 하시고 실의에 빠진 표정을 지으셨다.


 알고 보니 신문사 편집장이셨다. 매일 휴일 없이 뱅뱅 돌아가는 하루 하루를 일하시는 바람에 매우 지친 상태였다고 하셨다.

 신혼여행을 오면서 휴식을 얻게 되니 너무 행복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자유로움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제서야 그 분의 특이한 행보가 이해되었다.

 우리는 다음날 각자 인사를 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근데 오빠랑 나는 뭐 때문에 싸웠는지 몰라도 공항에서 싸웠기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도 서로 말이 없었다.

 사람들이 신혼 여행지에서 싸워서 각자 들어오고 파혼을 하는 커플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지금 그러고 있었다.

 일단 내가 먼저 화를 냈으니까 내가 먼저 비행기 안에서 말을 걸었고 우리는 금방 풀어져서 무사히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양가 부모님 집에서 1박 2일을 하고 이제 우리 신혼집으로 왔다.

 본격적인 결혼 생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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