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현진 Sep 20. 2024

복선

#1 프로포즈


     

 우리는 뜨겁고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그리고 그 사람으로 인해 행복한 나날이었고

 내 마음의 상처도 치유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오빠한테 이렇게 얘기 한 적이 있었다.

 ‘오빠..나는 아빠로 인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어.

근데 오빠는 하느님이 내게 유일하게 허락 해 주신 선물 같아.

고마워‘

 난 신이 있다면 이렇게 불공평하게 나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고

 나를 두려움에 떨고 고통 속에서 발버둥 치며 살게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빠의 절대적인 사랑으로 인해 내 마음의 트라우마가

 잊혀질 정도로 더 밝고 빛날 수 있었다.

 이런 오빠를 만난 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25살에 만나서 29살에 결혼을 했으니까 횟수로 5년을

 연애하다 결혼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토록 재미있게 학원 강사를 했었는데 28살에

 번 아웃이 왔다.

 20살 때부터 28살 까지 쉬지 않고 일을 했기 

때문에 28살이 됐을 때는 의욕적인 모습도 사라지고 신체적으로는

 너무 피곤했고 정신적으로는 여기서 벗어나서 쉬고 싶다는

 생각만 하게 되는 무기력함이 왔다. 

 그래서 결혼을 6개월 앞두고 쉬게 되었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보낸 6개월이다.

 자고 싶으면 자고 영화 보고 싶으면 영화 보고 등등 내

 인생에서 ‘휴식’ 이라는 단어는 없을 줄 알았는데 아무 

눈치도 안 보고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삶이 이렇게 

자유롭구나 싶었다.

 오빠는 내 사진 찍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데이트 할

 때 마다 거의 70장 정도를 찍었는데 거의 내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꼼꼼했던 오빠는 컴퓨터 폴더 란에 데이트 날짜를 

써 놓고 그 날 찍은 사진을 정리해 왔었다.

 우리가 만난 2003년도부터 2007년 까지의 사진이 모두 다 

정리되어 있었다.

 우리가 결혼하기로 결정하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상견례를

 앞두고 있는 상태였는데 오빠가 자기네 집에 가보자고 했다.

 우리의 연애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각자 집에서는 둘이 언젠가는 결혼

 하겠거니 생각하셨다. 그래서 오빠가 우리 집에 와서 몇 번 자고 갈 때

도 있었다. 근데 나는 오빠 집을 처음 가보는 것이었다.

 중앙대 근처에 있는 흑석동으로 가파른 골목길로 마을버스를 타지

 않으면 워낙 경사가 심한 골목길이라 힘들다고 해서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오빠 부모님은 그때 잠시 집을 비우셨다.

 30년이 넘은 집으로 낡은 파란색 대문에 밖에 위치한 세수하는 

곳이 보였고 문을 열어보니 바로 거실이고 작은 방 세 개와 조그마한 

부엌이 보였다. 또 다른 문을 열어보니 볼 일만 볼 수 있는 화장실이 있었다.

 오빠 방은 한 3평 되는 방으로 좁아서 침대는 없었고 초등학교

 때부터 쓰던 책상과 컴퓨터 그리고 옛날 식 TV 밖에 없었다.

 아직도 이런 집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처음에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오빠가 인하대 총장상을 받은 시 속에 등장하는 집의 분위기가

 딱 이 분위기였다.  

 풍족하게 자라지는 못했지만 우리 집과는 다르게 오빠는

 아들 둘만 있는 집의 장남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었기

 때문에 난 그 점이 좋았다.   

 사실 오빠네 집을 보고 조금 놀라긴 했지만 시댁을 

무시하거나 결혼을 결심한 것에 후회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계속 오빠가 남산을 가자는 거다.

 내가 계절을 많이 타는데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과 가을이다.

 여름은 몸에 열이 많아서 싫고 겨울은 추워서 움츠려 드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여름과 겨울을 싫어했는데 특히 겨울이 더 싫었다.

 그 때가 겨울이었다.

 계속해서 안 간다고 하니까 오빠도 포기했다.

 우리 집에 아무도 없었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막 나왔는데 불이

 다 꺼져 있었고 오빠는 케잌을 들고 있었다.

 난 촛불을 끄고 오빠가 이끄는 곳으로 갔는데 컴퓨터 앞이었다.

 갑자기 영상이 재생되는데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노래가 흘러 나오고 그 동안 오빠가 찍었던 나의 사진과 우리

 사진을 영상으로 만들었고 오빠의 프로포즈 내용은 자막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 영상을 보면서 정말 오랫동안 우리가 사랑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결혼을 하기는 하는구나 싶었다.

 맨 마지막 자막에

 ‘나랑 결혼해 줄래?’ 라는 말이 제일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에 오빠가 나와의 결혼을 기념하는 시 ‘항해’

 가 올라가고 있었다.

 프로포즈였다.

 이 프로포즈를 남산 야경이 보이는 곳에서 노트북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가자고 했는데 안 간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집에서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나는 영상 재생이 끝나면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오빠가

 반지를 끼어 주기를 기다렸는데 이것 말고는 전혀 준비한

 것이 없어서 당황했고 오빠는 나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당황했다.

 프로포즈 선물이 빠졌다는 점이 좀 서운하기는 했으나 행복했다.     


#2 상견례 

    

 오빠가 취직을 해서 28살 때부터 서른 살이 될 때 까지 모은

 돈이 놀랍게도 3000만원 밖에 안 됐었다.

 신입 연봉이 2200만원이었고 중간에 차를 샀고 매달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다고 한다.

 오빠가 사치를 부리거나 소비욕이 강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난 어느 정도는 모아 놓았을 거라 생각했고 연애 하면서

 얼마 저축했냐고 물어보기가 그래서 얼마를 저축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문제는 신혼집 마련이었다.

 연애할 때부터 오빠 부모님이 말씀하시기를 여태까지 키워 

줬으니까 나중에 결혼할 때는 너희들이 벌어서 장가가라는

 말을 들었지만 오빠는 설마 장남인 아들이 결혼하는데 돈을 

조금이라도 보태주시겠지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의 그 말은 사실이었다.

 부모님이 통장을 보여주시면서 돈이 이렇게 없는데

 무슨 돈으로 집을 사 주냐면서 말씀하시는데 오빠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3000만원 가지고 무슨 신혼집을 마련하겠는가?

 이 말을 부모님께 했더니 엄마는 너가 나처럼 결혼하고 나서 

힘들게 사는게 싫다고 말씀하시며 우셨고 아빠는 노발대발 

화가 많이 나셨다. 

 어떻게 5년을 만났는데 빌라 전세 값도 없는 남자를 

만났냐면서 반대를 하셨다.

 그리고 그래도 장남이고 아들 가진 부모인데 단 돈 10원도

 보태주지 않는 집이 있냐며 아빠는 생각에 잠겼다.

 나는 속상해서 계속 눈물이 났다.

 부모님을 가슴 아프게 하면서까지 결혼을 한다는 것이 마음

 아픈 일이었다.

 근데 아빠가 반대하는 것을 번복하셨는데 그 이유는 아빠도 

엄마하고 결혼할 때 반대가 심했었고 결혼식장에 가족과 가까운 

친지만 불러 놓고 결혼을 했을 때 상처를 받았다고 하며 반대하는

 입장에서 찬성하는 입장으로 바뀌셨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는 6년 동안 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기

 때문에 대학원 진학 문제 빼고는 아빠와 크게 부딪히는 일이 

없었고 술 마시고 널 힘들게 했다며 간혹 가다 미안하다고 하시

는 등 비교적 다정한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셨다.

 그래서 나를 생각해서 찬성하신 것 같다.

 일단 아빠는 남자 직장만 튼튼하다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자기 

집을 사 놓고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오빠가 인천에 위치한 매매가 1억 원의 21평 아파트를 보고 

있었는데 우리가 2000만원을 보태 줄 꺼니까 나머지 5000만원은

 아파트 담보 대출을 받아서 사라고 말씀하셨다.

 아빠가 그 때는 갈비 집을 하고 있을 때여서 집안에 여유

 자금이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내가 왜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그래서 내가 벌어 놓은 돈으로만 내가 알아서 시집가겠다고 했다.

 남자 쪽 부모님도 하나도 도와주는 게 없는데 왜 우리가 고개

 숙이고 들어가야 하냐고 했다.

 오빠와 상의해서 내 돈 1500만원을 보태기로 해서

 5500만원 담보대출을 받고 1억 짜리 아파트를 샀다.

 그나마 인천이니까 가능한 얘기지 서울은 어림도 

없을 것이다.

 집 문제가 해결되자 상견례가 이루어졌다.

 그 당시에 시어머니는 통장을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엄마

 친구들한테 그런 얘기를 하니까 그럼 보통 아니겠다는 

말을 했다고 하면서 약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만나게 되었다.

 우리 아빠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런데 시댁은 두 분 다 경상도로 굉장히 무뚝뚝하신 편에

 속하신다.

 내가 결혼 준비 등으로 오빠네 집을 몇 번 갔을 때 마다 

하도 말이 없으셔서 처음에는 오빠에게 나를 반대하시는 거냐고

 물어보기 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데 워낙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신 편이고 그나마 

어머니는 그렇게 말이 없는 편은 아니셨다.

 그래도 오빠 집에 갔을 때 처음에는 나 혼자 어색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는 했는데 워낙 시부모님이 

말씀도 없고 호응도 없으셔서 나도 가면 갈수록 말을 안 하게

 되었다.

 두 분이 말씀이 없다는 얘기를 미리 캐치해서 우리 부모님께 

말씀을 드려야 했다.

 분위기를 띄우려는 아빠와는 달리 시아버지가 이어서 하신 말씀이

 ‘아주 오래 전에 만나서 헤어질 줄 알았는데 이렇게 결혼까지

 하게 됐네요’ 라는 말씀을 하셔서 너무 놀랬고 솔직히 감정이 상했다.

 어떻게 상견례 장에서 ‘헤어질 줄 알았는데...’ 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마치 헤어지기를 바란 건 아니었는지 아니면 헤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내게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인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엄마는 더 인상이 굳어졌고 어찌 어찌 해서 상견례는 끝이 났다.

 엄마에게 왜 상견례 하는 내내 표정이 안 좋았냐는 물음에 시집 

보낸다는 것이 실감돼서 그랬고 시어머니 될 사람 인상이 너무 쎄고

 시아버지 될 사람은 별 생각 없이 말하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하셨다.

 그래도 니가 좋다는데 어쩌겠냐고 했다.

 사실 남편한테 결혼 전에 집 문제로 인해 잠깐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다는 사실이 오빠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까봐 절대로 말한 적이 없었다.

 상견례에 대해서도 우리 집 반응은 좋았다고 그냥 둘러 말했다.     


#3 혼수준비     


 혼수준비를 하면서 싸우는 커플도 많고 심지어 파혼 하는 

커플이 있는 등 많이 예민한 부분이다.   

 엄마는 나랑 같이 혼수 준비를 하러 다녔다.

 근데 요즘 가구와 가전 등은 인테리어니까 같이 쓸 사람인

 사위와 다니는게 어떠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특히 엄마가 강조하신 것은 딸이 없고 아들만 있는 집은

 딸 가진 부모의 마음을 잘 모르고 큰 며느리와 작은 며느리가

 해 오는 혼수를 비교하는 시어머니들이 있으니

 아무리 너가 집 사는데 1500만원을 보탰다고 

해도 그건 혼수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나중에 

괜한 소리 듣지 않게 하나도 빼 놓지 말고 

준비하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가전 일명 빅3에 해당되는 

TV, 냉장고, 세탁기는 그 때 CF에서 광고하는 모델로 장만했다. 

그리고 리모컨 전쟁을 하기 싫어서 TV를 두 대 샀다.

 그리고 가구도 명품은 아니지만 브랜드가 있는 모델로 세트로 구입했다.

 가전 및 가구를 고를 때 오빠와 함께 다녔는데 모두 

최신형으로 구입 하니까 오빠는 아주 신이 났었다.      

 특히 TV를 마음에 들어 했는데 자기 집에 있던 

뒤에가 두꺼운 옛날 TV가 아니어서 넒고 선명한 화질로

 자신이 좋아하는 프리미어 리그전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많이 들 떠 있었다.

 그리고 30년을 살면서 침대 없이 방바닥에 요를 깔고

 자야 했기 때문에 침대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매트리스만큼은 

본인이 마음에 들어 하는 것으로 선택했다.

 직접 누워 보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웃겼지만 나중에는 

창피해졌다.

 이렇게 우리 둘은 혼수를 장만하러 다녔고 그릇 등은

 엄마와 백화점에서 구입하는 등 자질구레한 것 까지 

준비 하느랴 나중에는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다행이 우리 둘은 결혼 준비를 하면서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다.

 근데 혼수 준비를 거의 마치고 웨딩 촬영까지 하고

 시댁에 갔을 때였는데 시부모님이 우리도 백화점 

다니면서 요즘 가전과 가구를 둘러보았다는 말씀을 

하셔서 혼수준비는 내가 하는 건데 왜 시부모님이

 혼수 물품을 알아보고 다녔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불쾌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결혼 준비 모임 동호회 인터넷 카페에서 시댁에

 TV나 냉장고 등을 바꿔주는 경우도 있다는 글을 봐서 

바꿔 달라는 뜻인가 싶기도 하고 우리가 요즘 것을 보고 

왔으니 최신상으로 해 오라는 뜻인가 싶었다.

 그냥 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혼수 준비를 할 때 여자들은

 부담을 느끼고 예민해진다.

 그것은 마치 내가

 ‘오빠가 집 살만한 아파트를 둘러보고 다니고 있어요’

 라는 말과 똑같은 것이었다.

 오빠가 그러는데 부모님 두 분 다 자존심이

 매우 쎈 편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남들에게 보여지는 

부분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시는 타입 이었다.

 내가 엄마랑 그릇을 보러 백화점을 다녀왔다고 말하니까

 벌써 그릇을 보고 왔다고 하니 하는 말인데 요즘 애들은 돈 아끼겠다고 

다이소 같은 천원 샵에서 그릇을 사는 경우가 있는데 거기서 사는 

그릇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을 하시는 것을 보고 눈이 

매우 높은 편이구나 라고 느꼈다.

 시동생은 나 보다 한 살 아래인데 직장인이었다. 하나 

밖에 없는 형 결혼선물로 컴퓨터를 사주겠다고 해서 혼수 

물품 중에 큰 거 하나를 덜었다고 좋아했고 시동생에게 고맙다고 했다.

 시아버지께서 우리가 사는 컴퓨터 화면이 이렇게

 TV만하다며 이런 것으로 준비했다고 강조 하셔서

 나는 그냥 고맙다고 말씀드렸다.

 근데 나중에 결혼하고 나서 알았는데 시동생이

 진짜 거의 돈을 잘 안 쓰는 편이다. 그래서 140만원 

하는 컴퓨터를 사는데 70만원 밖에 보태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대학생이었으면 그렇게 큰 선물을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직장인이고 하나 밖에 없는 형 결혼 

선물이라고 하면서 140만원은 무리니까 

자기가 반을 내고 나머지 반은 형이 내라고 했다고 한다.

 내 동생은 그 때 열심히 군복무 중이어서 제대해서

돈 벌면 그 때 누나한테 필요한 거 선물해줄게 라고

 말하길래 농담 삼아 열심히 벌어서 그 때까지 명품가방이 

하나도 없어서 명품가방 하나만 사달라고 했다. 

별 기대없이 말했는데 동생은 나중에 그 약속을 지켰다.

 엄마가 생략하는 거 하나 없이 준비하라는 말은 딱 

우리 시부모님들 같은 케이스에 어울리는 말이었다.

 집에 돈 보태랴, 최신형 가전과 가구 등 모든 것을 

빠뜨리지 않고 혼수를 장만 한 나에게 오빠는 내가 이런 

걸 받아도 되나 싶다고 미안하다고 했고 오빠 부모님도

 내가 혼수 해 온 것을 보면서 돈을 너무 많이 썼다며 말씀하셨다고 

하며 고맙다는 표현에 조금 서운한 감정이 사라졌다.

 

#3 자존심 싸움


 그러다 작은 사건이 터졌다.

 모든 준비를 해 놓고 결혼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빠가 말하기를 시아버지가 결혼식에 화환이 4개 들어오니

 우리 집에 코치를 해 줘서 화환 갯수를 맞추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부모님께 결혼식 때 우리 집에 화환이

 몇 개 정도 들어 오냐고 물어봤다.

 결혼을 앞 둔 신부가 화환 갯수를 물어보는 것이 

이상했는지 부모님이 왜 그게 궁금하냐고 물어 보셔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우리 부모님이 화가 많이 나셨다.

 우리 집을 어떻게 봤길래 화환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을까봐 화환 개수를 맞추라고 말하는 시댁이

 어디 있냐며 오빠를 집에 당장 오라고 하셨다.

 나는 처음에 별 생각이 없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시댁 쪽에 화환 개수가 10개가 넘어가면 

그나마 이해라도 하겠지만 달랑 4개 들어오면서

 우리 쪽 화환이 너무 들어오지 않으면 사람들 

보기에 챙피 하다며 우리 집에 몇 개 쯤 화환이 

들어오는지 체크하라고 하는 것은 대단한 실례였다.

 실제 결혼 할 때 우리 집은 화환이 7개가 들어왔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이럴 정도로 남에게 보여지는 

것을 중요시하고 굉장히 자존심이 강했고 시부모님 

두 분 다 고집도 대단하신 분들이었다.

 결혼한다고 시댁의 큰 집에 처음 인사를 갔을 때 큰 집 분들은 

아마 시어머니가 좀 까탈스러울 거라고 말했다가

 농담이라고 웃어 넘기셨는데 그 때 까지만 해도 몰랐다.

 은근한 시집살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4 수상한 문자     

 웨딩 촬영도 마치고 혼수물품도 준비해 놓고

 얼마 안 남은 결혼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오빠를 선택한 이유는 성실하고 나의 지나간 

상처까지 안아주는 따뜻함과 자상함, 그리고 오빠가 

영업사원으로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존경심마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오빠를 만난 건 큰 행운이었으며 

오빠에게 내 앞에 나타나줘서 고맙다고 했고 우리 둘을

 연결시켜 준 주선자인 내 친구한테 고마움을 표시했다. 

 하느님이 내게 주신 운명과 같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우리 때는 ‘미니홈피’ 라고 해서

 지금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보다 더 대중적이고 

안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가상공간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어느날 오빠 집에 놀러 갔었고 인터넷을 하기 위해 

오빠 컴퓨터를 켰다.

 일부러 보려고 한 것은 아닌데 한 싸이월드 주소에 

들어간 것을 발견하고 클릭을 해 봤는데 모르는 여자의

 싸이월드였다.

 나는 오빠를 불러 솔직히 말하라고 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내가 전에 말한 적이 있을 거야. 군산대 다니고 있을 때 

나의 첫사랑이자 짝사랑했던 여자가 있었다고 했잖아. 그 여자 홈피야’ 

라고 말하는데

 결혼을 이야기 하고 있는 상황에 예전 자신의 첫사랑 미니홈피를 

그동안 꾸준히 드나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까 너무 화가 나다

 못해 눈물이 났다.

 짝사랑에 그치지 않고 군대 들어가기 전에 고백을 했는데 차였다고

 했고 그 이후 군대에 있을 동안에도 꾸준히 편지를 썼는데 

한 번도 답장을 못 받았다는 얘기를 몇 년 전 들은 적이 있었다.

 언제부터 이 여자 미니홈피를 드나들었던 건지 알 수는 없었다. 

물론 말로는 최근에 그냥 심심해서 찾아봤고 몇 번 안 들어갔다고

 미안하다며 싹싹 빌었다.

 나한테 항상 강조하던 말이 있었다.

 자기는 나 외에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그리고 영업을 하다보면 진료 중인 의사를 

빨리 만나기 위해 간호사들에게 잘해 주고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친절을 베풀 때가 있는데 몇 번 

간호사들에게 대쉬를 받은 적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료과별로 팀 내 회식을 가면 병원 여자 

직원들이 여자 친구 있냐고 물어봤고 그 때 마다 솔직히

 있다고 대답한다고 했다.

 여자 직원들이 여자 친구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하면 

보여줬는데 생각보다 미인인 여자 친구가 있는 걸 알고는

 두 번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는 에피소드도 들려주었다.

 그래서 그 사람한테 나 말고 연락하는 다른 여자가 

있을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을 만큼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은 굉장히 컸다.

 근데 그 미니홈피를 보니까 배신감에 눈물이 났다.

 하도 미안하다고 하길래 그냥 호기심에 

들어갔겠지 싶어 다시는 안 들어가겠다는 

약속을 받고 넘어 갔었다.

 그런데 결혼 한 달 정도를 앞두고 오빠

 핸드폰으로 한 여자가 문자 보낸 것을

 우연히 보게 됐다.

 ‘나 썬글라스 사러 가야 되니까 나랑 같이 백화점 가서 골라줘’

 라는 내용이었다.

 그 문자를 보자마자 손이 떨릴 정도로 누가 봐도 의심할 만한

 내용이어서 이 여자가 도대체 누군데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남자한테 썬글라스 사러 같이 백화점을 가자고 하냐며 따져 물었다.

 오빠는 초등학교 동창생인데 이미 결혼을 한 유부녀이고 

초등학교 교사라고 했다. 그 여자 남편은 삼성 대기업에 다니고

 시댁에서 서울에 자이 아파트를 마련해 줄 정도로 조건이 

좋은 남자라고 한다. 하지만 결혼 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자기 남편하고 성격이 잘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면서

 솔직히 말하면 이 동창생이 자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난 어이가 없었다.

 결혼을 한 달 앞 둔 시점에 이런 문자를 보니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여사친이 있는 줄도 몰랐고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알고 지내거나 연락하며 지내는 남자가 없다고 했다.

 근데 어찌됐든 이 여자와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 

받았고 당신에게 썬글라스를 사러 같이 가자고 할

 정도이면 당신이 이 여자에게 일말의 빈틈을 

보였으니까 이런 문자를 보낸 거라며 화를 냈다.

 오빠는 아무래도 자기가 다 잘못한 거 같다며 더 이상

 내게 연락을 하지 말라고 할 거라면서 앞으로 이런 

일로 신경 쓰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했다.

 나는 찝찝했지만 5년을 연애하면서 나에게

 보여준 사랑을 믿었었고 결혼을 한 달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 문자를 간과해서는 안 됐었다.

 이 문자가 부메랑이 되어 다시 내게 돌아올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못했다.

 이 때 멈췄서야 했다.

이전 11화 그 사람에게 사랑을 배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