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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찌 Mar 13. 2024

엄마는 다시 달린다

생후 88일

2024.02.23(금)


아음아 오늘은 네 태명을 왜 톤톤이로 지었는지 알려줄게.


엄마아빠는 재작년 서른 중반을 넘기면서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어. 아이가 막 간절했던 건 아니었지만 나중에 절실해질 때 가질 수 없게 되면 조금이라도 어릴 때 기회를 가져보지도 않은 우리가 원망스러울 것 같았거든. 그렇게 반년 넘게 고민하다가 피임을 중단했는데 생각처럼 쉽게 임신이 되지는 않더구나. 그래도 사전에 만약 아이가 찾아오지 않더라도 난임 치료는 받지 않기로 약속했고, 그냥 엄마아빠 둘이 평생 즐겁게 살자고 다짐했었기 때문에 임신에 매달리기보다 우리 둘만의 취미생활을 만들기로 했어.


그렇게 작년 1월부터 임신이라는 키워드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열심히 달리기에 매진했지. 3월에 열리는 서울 마라톤, 11월에 열리는 JTBC 마라톤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마라톤을 예약해 두고 1월부터 겨울 내내 열심히 훈련에 임했단다. 그 결과 서울국제마라톤에서 PB(personal best)를 달성하기도 했어.


그런데 그즈음인가 유독 잠이 쏟아지고 생리 예정일이 10일을 넘어가는데 뭔가 싸하더라고. 혹시나 하고 확인해 보니 임신 테스트기에는 선명한 두 줄이 그어져 있더구나. 네가 찾아온 거지. 그것도 모르고 엄마는 서울 마라톤을 다녀오는 길에 더 열심히 달리겠다며 새로 가민(garmin) 워치까지 샀는데 세상에.


임신 사실을 안 날로부터 1주일 뒤에는 부산에서 열리는 기브 앤 레이스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엄마아빠도 미리 8km를 예약해 뒀었거든. 갈까 말까 엄청 고민이 되더라. 그런데 광안대교 위를 달리는 경험은 흔히 주어지는 게 아니라 포기할 수 없겠더라고. 결국 뱃속의 너와 함께 달리기로 결정했었지. 광안대교 위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기분은 정말 형언할 수 없었어. 임신한 엄마뿐만 아니라 이 레이스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모두들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연신 사진을 찍고 즐기며 달리는 분위기여서 참가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단다.


달리기 덕분에 몸과 마음이 건강해져 너를 임신할 수 있었고 그 결실로 너를 품고 2번의 마라톤을 나갔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기분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 네 태명을 톤톤이로 지었던거야. 흔한 태명은 아니어서 병원이나 조리원에서 ‘튼튼이’라고 적혀있는 이름표를 몇 번이나 요청해 ‘톤톤이’로 바꾸기는 했지만 아주 맘에 쏙 드는 태명이었어.


여하튼 기브 앤 레이스를 마지막으로 임신 기간 내내 그리고 출산 후 지금까지 달리지 못했으니 거의 11개월이 다 되어 가는구나. 그동안 엄마의 달리기 친구들이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런데이 어플 알람이 울리거나 인스타 사진이 올라오면 얼마나 부럽던지. 그들의 운동 알람에 응원 버튼을 누르기도 하고 댓글을 남기기도 하면서 대리 만족에 그쳐야 했다.


그런데 오늘 문득 꼭 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왜 오늘이었는지는 모르겠어. 그냥 문득 해가 지는 하늘을 보는데 오늘은 나가야겠더라고. 너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엄마가 먼저 달리고 와 아빠에게 바통터치를 했단다. 이전처럼 엄마아빠가 같이 달리지는 못해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달리고 오니 너무 개운하네.


아직 출산한 지 90일 밖에 안 됐기 때문에 절대 무리하면 안 돼서 조심조심 달렸는데도 조금 힘에 부치는구나. 특히 발목이 생각보다 아프네. 출산 후 온몸의 관절이 약해졌을 텐데 발목도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준비운동도 더 꼼꼼히 하고 신발끈도 잘 매서 쉬엄쉬엄 달려야겠어. 참고 참다 이제야 겨우 시작한 달리기를 부상 때문에 그만둘 수 없으니까 말이야. 


올 한 해 너를 키우면서 틈틈이 달려 올 가을 마라톤 10K를 신청하려고 해. 그때는 러닝용 유모차도 구매할 테니 우리 셋이 같이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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