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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찌 Jun 15. 2022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의 수영

이런 날은 빈 속에 수영하지 마세요

전날 드라마 마지막 편을 본 게 화근이었을까.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서 움직일 때마다 골이 흔들리는 느낌이다. (왜 K-드라마는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눈물 콧물을 다 빼게 만드는 슬픈 플롯이 주를 이루는 걸까) 호기롭게 갔던 첫 수영 이후로 다음날은 일이 많아서, 그 다음날은 사무실에 출근해야 해서 수영장을 못 간 터라, 오늘도 안 가면 나 스스로에게 너무 실망하게 될까봐 기어이 수영가방을 메고 늦은 오후 수영장을 향했다.


주말이라 사람은 꽤 많았고, 물은 약간 차가웠다. 왜 첫날의 따뜻했던 느낌과 다르게 차가울까 갸우뚱했지만,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들어와서 그런가 하고 넘겨짚었다. 첫날 수영을 마칠 때쯤에 숨이 차는 현상은 금방 해소되었어서 그래도 수영 감각이 몸 깊숙한 곳 어딘가에 남아있었나보다 내심 기뻤었는데, 오늘도 다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얼굴에서도 어마무시한 열이 올라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누가 보면 열 바퀴 쉬지 않고 돌고 온 사람인 줄 알겠네' 게다가 수경에 샴푸칠이 잘 안 됐는지(수경과 손에 물을 묻히지 않고 샴푸를 짜 문질문질하고 2-3분 정도만 뒀다 물로 헹궈내면 안티포그 제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동일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몸에 열이 계속 차올라서인지, 반 바퀴만 돌아도 수경이 뿌옇게 변해버려서 도저히 흐릿해지는 시야를 무시하고 남은 반 바퀴를 바로 이어서 돌 수가 없었다. 재택으로 그동안 피해온 코로나에 걸린 건 아닌지 겁이 날 정도였다.


결국 아무래도  되겠어서 600M 채우지 못하고 기진맥진해 샤워실로 향했다. 몽롱한 상태로 샤워를 하고 탈의실에 나와 거울을 보니 얼굴이 사과처럼 엄청나게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했으면 쓰러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수영장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직 쌀쌀한 날씨 덕에 몸의 열기가 조금씩 내려가는 게 느껴졌는데, 그 와중에 가게 매대에 있는 웨하스 과자를 보게 됐다. 어 이상하다. 순간적으로 입맛이 확 도는 걸? 순간 아 코로나는 아니겠구나 안도의 한숨을 쉬는 한편, 당이 급격히 떨어져서 갑자기 힘들었구나 깨달았다. 그렇다.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에서 충분한 에너지원을 섭취하지 않고 수영장을 가면 이렇게 되는거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엔, 너무 부담감 가지지 않고 푹 쉬거나, 하더라도 절대 빈 속으로 수영하지 않기로.



2022년 4월 9일 (토요일)

오늘의 수영 로그

총 시간 : 36분 04초
거리 : 460M (20M * 23랩)
평균 심박수 : 131BPM


Photo by Markus Spisk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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