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까만 양

by 남효정

나는 오늘 G시로 들어왔다.

어릴 적 아빠는 나에게 가끔 말했다.


우리 딸~양 보러 갈래?


그러면 엄마는 다 안다는 듯 웃으며 여행짐들을 챙겼다.

우리는 하얀색 준중형 미니밴을 타고 새하얀 양들을 꿈꾸며 양들이 사는 G시의 목장을 향해 떠났다.

그때는 차 안에서 창밖을 구경하다가 두어 시간 자고 나면 양 떼가 있는 곳에 도착해 있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가 직접 파란 바람을 운전해 내가 원하는 곳에 도착했다.


오월의 바람이 분다.

꽃내음을 머금은 훈풍이다.


저 멀찍이 풍차 근처에 주차를 하고 양들을 보러 목책 가까이 왔다.


얼굴이 까만 양. 눈에 장난기가 서리고 웃는 노인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이상한 양의 표정이 어릴 적부터 나는 참 아리송하게 느껴졌다.


내가 가까이 가니 한 마리가 나를 향해 다가온다.

역시 얼굴이 까맣다.

아빠엄마와 함께 봤던 바로 그 종류의 양이다.


아빠, 얘 좀 봐. 얼굴이 까맣다.


발레 블랙노즈(Valais Blacknose) 야. 매우 온순하고 친근한 성격이라 가까이 가도 괜찮아.


으...... 자꾸 나에게 가까이 오잖아.


이 양들은 호기심이 많아. 사람이 있으면 궁금해서 가까이 오는 거야. 너랑 좀 비슷하지? 주변환경도 가만히 바라보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얼른 그곳으로 가서 확인해 봐야 해.


양이 나에게 돌진하지 않자 나는 마음이 조금 진정되어 다시 아빠에게 물었다.


얘들은 뭘 먹어? 아빠.


여기 초원에서 자라는 풀을 뜯어먹기도 하고 겨울에는 풀을 말린 건초를 먹기도 해. 주인은 곡물 혼합 사료를 주면 그것도 잘 먹고 때때로 꼭 필요한 필수영양소를 섭취하기 위해 미네랄 블록을 핥아먹기도 하지. 양이 다가와서 다리에 얼굴을 비비면 널 믿는다는 뜻이야. 알았지?


아빠는 양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한 거 같은데 지금 기억나는 내용은 이 정도다. 우리가 어느 정도 크면 G시로 와서 얼굴이 까만 양을 키우고 싶었던 걸까. 아빠의 생각에 잠긴 얼굴은 왠지 모르게 쓸쓸했다. 하지만 얼굴이 까만 양의 이야기를 할 때는 눈이 따뜻하고 밝은 빛이 나오는 광원이 되는 듯했다.


이 양은 신기하게도 까만 양말을 신은 것처럼 발이 까맸다. 무릎도 까매서 얼굴과 다리, 발을 깜 싼 까맣고 곱슬곱슬한 털과 그 외의 하얗고 곱슬곱슬한 털이 조화를 이루어 풀밭에서 풀을 뜯거나 앉아서 졸고 있으면 인형을 보는 듯이 귀여웠다.


발레 블랙노즈 양과 교감하는 롱웨이브 헤어 한국여자를 수채화풍으로 생동감 넘치게 그려줘. 여자는 하얀색 티셔츠에 초록색 바지를 입었고 동그란 안경을 썼어. 배경은 5월의 양떼 목장으로 해줘..png 양과 교감하는 주인공 또야_이미지 Copilot+남효정

가만히 내가 있는 방향을 주시하던 얼굴이 까만 양 한 마리가 나에게 온다.

꽤 나이가 들어 보인다. 나를 본 적이 있는 양일까?

내가 손을 뻗자 나에게 다가와 냄새를 맡아보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목책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내 다리에 머리를 비비기 시작한다. 나를 언제 보았다고 이 양은 나에게 이토록 신뢰감을 표현하는가. 목책 안으로 들어가 본다. 양은 나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말을 거니 귀를 움직이며 나를 바라본다. 장난스럽게 앞발을 들어 보이기도 하고 '음메~~' 소리를 부드럽고 편안하게 내기도 한다.


나는 부드럽게 다가가 손을 내민다. 양은 놀라지 않고 그대로 서 있는다. 머리와 목을 살살 쓰다듬어 준다. 나는 미리 준비한 당근조각이랑 사과 조각을 내민다. 양은 '메에~'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는다.


언제나 오월이면 가족이 함께 왔던 목장에 나 홀로 와서 생각에 잠겨있노라니 조금 외로운 생각도 든다. 그런 감정을 떨구듯 나는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채 30분이 안되어 5성급 국립 야영장으로 불리는 아름답고 청정한하늘정원 캠핑장에 도착한다. 이곳은 캠핑장 안에 계곡이 흘러 여름에 물놀이도 즐기며 캠핑할 수 있다.


나는 산책길에 나선다.

5월의 숲은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숲은 시간을 녹여 자신의 모습을 연두색에서 짙은 녹색으로 치장한다. 나무들은 싱그러움을 뽐낸다. 이곳엔 소나무, 잣나무, 참나무, 단풍나무가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다. 소나무는 푸른 바늘잎을 흔들며 바람에 속삭인다. 바람결에 코끝에 닿는 솔잎의 향은 머리를 맑게 해 주고 스산한 마음을 평온하게 가라앉혀 준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잣나무의 줄기가 아름답다. 숲은 이 나무들로 인해 더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참나무는 넓은 잎을 펼쳐 부서지는 햇살에 빛으로 샤워를 한다. 아직 여린 초록빛을 띠는 단풍잎은 귀여운 손처럼 보인다. 나무들은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햇살아래 그대로 드러낸 체 여름을 향해 건강하게 달려가고 있다


걷다 보니 계곡이다. 물소리를 들으며 잠시 바위 위에 앉아본다. 맑고 차게 흐르는 계곡물은 언제나 가슴에 담고 싶은 소리이다. 느릿하게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는다. 그 물에 발을 담가본다. 청량한 물의 느낌이 어느새 온몸에 빠르게 흡수된다.


오월에 아름다운 것 하나 더.

그것은 빛이다. 숲의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빛.

야영장 곳곳에는 부드러운 햇살이 내려앉고, 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빛이 춤을 춘다. 새들은 활기차게 지저귀며, 숲 속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신선한 흙 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캠핑 사이트 주변에는 새하얀 찔레꽃과 은방울꽃이 소리 없이 피어나고 바람이 불 때마다 은은한 향기가 선물처럼 나에게 배달된다.


점점 숲은 어두워진다.


우주 공간에 이 모든 것들과 함께 내가 있다.

무언가 가득 차는 충만함.

이 고요를 깨고 싶지 않아 요란하게 요리도 하지 않는다.

간단하게 모닝빵 하나에 뜨거운 물을 부어 크림수프를 만들어 먹고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펼친다.


밤이 되면 숲 속은 더욱 고요한 어둠으로 채워지고, 계곡물소리는 하늘로 올라가고 별빛은 땅으로 내려온다.




#캠핑 #발레 블랙노즈 양 #얼굴이 까만 양 #양말 양 #남효정 놀이와 교육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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