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사시는 동네에는 벤치그네가 있나요?
제가 사는 동네에는 분수광장을 에워싸고 두 명씩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 그네가 20개 남짓 있고 3분 정도 큰 도로 쪽으로 걸어가면 나오는 공원에도 10개 정도의 벤치그네가 더 있습니다. 이 그네들은 우리 동네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요. 원래부터 이렇게 많은 그네가 있었던 건 아니고 여러 차례에 걸쳐 조금씩 늘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달콤한 창작의 공간'연재에 왜 벤치그네 이야기를 할까 궁금하실 것입니다. 저는 이런 작고 사소한 것이 흙탕물처럼 뿌옇던 마음을 맑게 가라앉히고 새로운 생각과 새 힘을 갖게 하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벤치는 공원에 고정되어 있어요. 그러나 벤치 그네는 벤치와 유사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어릴 적 좋아했던 놀이터의 그네처럼 앞뒤로 움직이며 정적인 공간을 역동적으로 바꾸어주기도 하고 책을 보거나 글을 쓸 때는 거의 움직임 없이 조용하게 이용할 수 도 있지요.
'벤치그네는 놀이와 창작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공간을 경험합니다. 열린 공간도 있고 닫힌 공간도 있어요. 개인적인 비밀을 존중해 주면서도 개방감이 있는 벤치그네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공간인데요,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의 쉼터가 되어주기도 하고, 남자아이 여자아이가 사귀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기도 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친구와 일광욕을 하며 아들며느리 이야기를 하는 곳이며 직장을 구하지 못한 동네 아저씨가 유튜브를 보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다'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저자 서인국은 큰 기쁨보다는 일상의 작은 기쁨이 여러 번 자주 발생할 때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벤치그네는 우리 동네 사람들의 행복에 크게 기여합니다. 벤치그네를 타려고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거든요.
공원의 벤치그네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될 때 극도로 야외활동을 꺼리는 사람들에게 밖으로 나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안전하게 외부에 머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장소 중 하나였어요. 사람들은 여기에서 친한 친구와 만나는 최소한의 사회적 활동과 발을 구르며 그네를 움직이는 운동을 할 수 있었고 달리기나 줄넘기, 자전거 타기 등의 격렬한 운동 뒤에 휴식을 하기에도 좋은 장소입니다. 벤치그네는 이러한 야외 공간의 이로움 때문에 코로나 기간 동안 급격히 늘어난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공간에서 혼자 음악을 듣기도 하고 시를 쓰기도 합니다. 퇴근길에 잠시 앉아서 해가 지는 동네의 모습과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노라면 평범한 소시민의 작고 일상적인 행복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동네 커피집에서 사 온 커피를 마시며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저녁을 먹고 아이스크림바를 먹으며 그네를 타기도 하고 커피와 함께 달콤한 쿠키를 먹으며 아이들 이야기며 하고 싶은 일이나 고민되는 이야기, 무한 반복되는 다이어트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
이곳에 앉아 흔들흔들 그네를 타며 이야기를 나누면 무언가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분주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자전거나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이 경험하는 공간에 대해서도 생각이 깊어집니다.
자전거를 타고 옷자락을 휘날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줄넘기를 하며 공원 끝까지 힘껏 달리는 아이
전동보드를 함께 타고 귀가하는 아이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삑삑이 신발을 신고 걸음마 연습을 하는 모습
아이들은 자라나면 점점 더 넓은 공간을 경험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작은 공간에 갇히는 경험을 필요이상으로 많이 합니다. 영아가 가정에서 자랄 때는 안방 건넌방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심지어 보행기를 타는 아이들의 움직임도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다이내믹하다는 것에 놀라게 됩니다. 친숙하고 넓은 공간은 아이들의 탐색과 놀이를 한층 풍부하게 해 주어 좋습니다.
영아가 어린이집에 다닐 경우 어떤 공간을 경험할까요? 영아는 일과의 대부분을 어린이집 교실에서 주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경험하는 공간에 대해 토론하고 열린 공간을 만들어 교실과 복도, 교실과 유희실을 마음껏 오갈 수 있는 열린 공간에 대해 선생님들과 연구하고 실천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명의 아이가 집처럼 자유롭게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고 수용받으며 생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영아는 민감한 부모와의 상호작용과 자유로운 공간 이동이 가능한 가정에 있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기를 권합니다.
아이를 안고 벤치 그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가 보입니다. 저도 어릴 적에 아이와 놀이터 그네를 탔던 기억이 떠올라 미소 짓게 됩니다. 하루종일 육아에 지친 아이엄마가 저녁 산책을 하고 벤치에서 아이아빠와 나누는 이야기와 시원한 음료 한 잔은 꿀 같은 휴식이 될 것입니다. 기쁨의 빈도가 높아져 행복한 삶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겠지요.
엄마품에 안긴 저 작은 아이는 자라나서 친구와 이 벤치 그네를 탈 것입니다. 때로는 막 사귀기 시작한 이성친구와 생일축하를 하거나 대학입시 고민을 나누는 장소로 벤치그네를 이용할 수도 있겠지요. 아이들이 모두 독립하고 나이가 든 부부는 노을 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서로의 고단한 어깨를 토닥일 수 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아침해가 맑은 얼굴로 동네를 비추고 새들의 지저귐이 싱그러운 토요일 오전 6시 50분, 창문을 활짝 열고 이 글을 씁니다. 어제 하루종일 연수가 있었고 연수가 끝난 후 반가운 얼굴들과 저녁을 먹고 찻집에 앉아 오랫동안 못 나눈 이야기를 나누고 늦게 귀가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침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이제 호숫가로 산책을 나가볼까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