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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정 May 27. 2024

강릉 고즈넉한 고택에서


지난겨울에 강릉에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저희 자매들의 힐링여행이었는데 바다를 좋아하는 저를 위해 특별히 바닷가 가까운 호텔에서 묵으면서 차가운 바닷가 모래 위를 맨발로 걸었습니다. 겨울 바닷가에서 파도소리를 듣고 모래의 차가운 감촉을 맨발로 느꼈지요. 처음엔 언니와 동생이 신기한 듯 바라보았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발끝으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며 걸었습니다. 바람 자는 동안은 따사로운 햇볕이 두꺼운 외투를 통과해 살갛에 닿았습니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이 이런 느낌일까요? 대기에 노출된 몸은 따스해지고 모래에 묻은 발은 차갑습니다.


 "차갑지 않아?"

 "아니, 시원해. 그리고 머리가 맑아져."

 "한겨울에 맨발 걷기라니, 감기 걸리지 않을까?"

 "괜찮아. 꾸준히 하면 오히려 감기 예방이 되지."

 "오, 그래?"

 "같이 하자. 바닷가에서의 어씽이 가장 좋대."


 결국 자매들은 맨발 걷기의 효과와 즐거움에 설득되어 둘째 날에는 모두 같이 바닷가를 맨발로 걸었지요. 저는 건강한 편이지만 최근 급격하게 체력이 저하되고 피로감이 느껴져서 맨발 걷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맨발이 땅에 닿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답답했던 발이 시원해져서 좋았습니다. 차가운 날씨 때문에 20분 정도 발을 씻은 후 잘 말리고  우리는 강릉에서 유명한 고택인 선교장으로 향했습니다.

2024년 1월 강릉 선교장


 오죽헌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강릉 선교장은 고택의 예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고즈넉하게 오후의 햇살 속에 그렇게 있었습니다. 잔뜩 긴장된 체 웅크리고 있던 마음의 실타래가 사르르 풀리는 듯합니다. 저는 하늘을 배경으로 유연한 곡선을 그리는 기와지붕을 참 좋아합니다. 창호지를 발라 정갈하게 유지되고 있는 여닫이 문 위로  비치는 야리야리한 겨울 빛도 좋아하고요.


 "집에 안긴다는 느낌 알아? 그냥 집터가 주는 감싸 안는느낌 있잖아."

 "나도 그런 생각하고 있었는데."


 서남향의 집은 시루봉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팔로 아이를 안듯 이 집을 안고 있는 형상처럼 저에게는 느껴졌습니다. 현재는 중요민속자료 제5호로 선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옛집. 길게 늘어선 행랑채의 규모로 보아 격식을 갖추고 살아가는데 많은 인력의 도움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집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하인들의 숙소가 길게 늘어서 있었고 지금은 고택체험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숙소로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며 솟을대문을 지나고 평대문을 지나고 잘 가꾸어진 마당을 걷습니다. 이제 뉘엿뉘엿 해가 지는 시간. 고택 뒤쪽으로 소나무와 오죽이 자라고 있는 오솔길에 오릅니다. 이곳은 선교장 둘레의 청룡길입니다.


 "와, 2024년 1월의 태양이야."

 "올해도 건강하고 행복하자."

 "더 자유롭고 더 날씬해지자."


이런 덕담 뒤엔 꼭 기념사진을 찍고 그곳을 기억하려 애씁니다.

해가 지고 있습니다. 빛이 조금씩 거두어지는 고택에서의 발걸음은 겸손해집니다. 찬란했던 것들은 모두 그 자신만의 빛으로 빛났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시간. 마당의 자갈도 조심조심 밟습니다.


 "저녁 시간이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차 한 잔 해야지."

 "이런 멋진 집 안의 카페를 언제 또 만나겠어."

 " 이모들이랑 차 한 잔 하라고 결이한테 용돈도 받았어. 내가 살게."

 " 오, 기특하네. 다 키웠다. 이제."

 " 이제 신나게 놀면서 살아."

 "응, 그래야겠다."

 "여기  다식도 파나 봐."


 쌍화차 두 잔과 오미자 한 잔을 시킵니다. 한옥카페에서는 다식 체험도 하고 있어서 젊은 커플이 자신들이 만든 다식을 포장해서 가지고 나가며 저녁으로 뭘 먹을지 의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창가에 앉았습니다. 고택의 뜰이 한눈에 보입니다. 잘 가꾸어진 나무들, 단정하게 정돈된 마당. 마른 풀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강릉 고즈넉한 고택에서는 눈이 닿는 곳 어디나 다 편안합니다. 연못 위에 세운 활래정에 연꽃이 필 때도 참 좋을 것 같아요. 아, 지금이 연꽃 계절이네요!


 간단하게 짐을 챙겨 그곳에 가서 시를 읽고 나를 돌아보는 글을 쓰고 고택이 주는 세련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천천히 느끼고 싶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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