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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y 05. 2023

여전히 두렵다면 제대로 하지 않아서이다

수영 도전기 




 일곱 살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 여름 시골 계곡에 큰 아버지 식구와 놀러 갔습니다. 자주 가는 계곡이 있었습니다. 물이 세차게 흐르고 발 밑에 모래알과 돌멩이가 같이 밟히는 계곡이었습니다. 시원하다 못해 차디찬 계곡에서 튜브를 끼고 사촌 언니들이랑 놀았죠. 고기 낚시 그물을 던지면 피라미를 비롯해 좀 더 큰 물고기들이 많이 잡혔습니다. 아빠와 큰아버지는 한쪽에서 그물 낚시를 했고, 사촌 언니 2명과 사촌 오빠 1명, 사촌 여동생 1명 그리고 친오빠 1명까지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튜브형 베개를 끌어안고 물놀이를 하는 사촌 언니가 부러웠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무슨 객기가 있었는지 튜브를 빼고 나도 한번 해보겠다며 도전을 했죠. 순간 끌어안은 튜브가 미끄러지면서 땅이 발에 닿지 않은 곳까지 이동하게 됐고, 균형을 잃어 물속에서 머리가 뒤집힌 채 고꾸라졌습니다.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물에서 나오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는지 꽤나 물먹은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수 분이 지났고, 곧 떠내려가면 정말 깊은 곳을 갈 뻔할 찰나 큰 아버지가 저벅저벅 걸어와 저를 건져 올렸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물 공포심을 만들었고 나는 평생 수영을 안 배우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죽을 뻔한 경험을 했으니까 나는 수영을 꼭 배워서 다시는 물에 안 빠지겠다는 다짐을 했어야 맞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무척 공포스러웠고 다시 물에 들어가면 빠질 것 같은 두려움에 물을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겠죠. 


  그 뒤로 학교에서 수영장 현장학습이 있거나, 친구들과 놀러 갈 때에도 몸을 물에 담그긴 했지만 허리 이상 물이 차면 기겁을 했습니다. 중고등부 시절 교회 수련회에 가면 꼭 한쪽은 팔을 잡고 한쪽은 다리를 잡아 인간 해먹을 만든 상태로 물속으로 집어던지는 오빠들이 있었습니다. 물에 안 빠지기 위해 쥐 죽은 듯 요리조리 피해 다녔던 때도 많았습니다. 결국 붙잡혀 거의 반을 울면서 애걸복걸 제발 던지지 말아 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짓궂은 오빠들은 사정없이 물에 던졌고 질질 짜면서 물에서 나왔던 경험이 여럿 있습니다. 나중에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을 이야기 한 후로는 그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좀 더 크고 나서는 같은 일이 반복 됐습니다. 


 고등학교 때, 대학생 때,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할 때도 물 공포심을 극복해 보고자 동네 수영장에 등록했습니다. 매번 보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물이 너무 무서웠어요. 물속에서 코를 막고 잠시 참거나 숨을 참은 채 물 위에 동동 뜨는 건 하겠는데 그게 다였습니다. 발장구는 발장구일 뿐 앞으로 몇 번 가고 나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죠. 물에 빠져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돈을 내고 수영장을 가지 않은 날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에 한 번은 등록을 했습니다. 잊을만하면 도전한 거죠. 나중엔 요령이 생겨 수영은 못해서 물에서 콜라병 뜨듯 앞으로 갈 수 있게 되었지만 숨을 딱 참을 만큼만 이었습니다. 50m도 못 가서 발을 땅에 딛고 얼른 머리 들어 물 밖으로 나와 숨을 거칠게 쉬곤 했습니다. 


 수영의 '수'자도 몰랐던 아이들은 이곳 남아공에 와서 남편에게 수영을 배웠습니다. 수영을 제법 잘하는 남편은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좋은 수영 코치가 되어주었습니다. 수영장에서 아이들 수영을 가르치는 남편의 말에 귀 기울였습니다. 여전히 수영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무서웠습니다. 

 아빠 말을 이해 못 하는 다엘이 옆에 붙어서 제가 직접 설명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 수영도 할 줄 모르면서 음파도 못하는 주제에 물을 무서워하는 아이를 설득하고 있었습니다. 


 "물을 무서워하면 수영 못 해! 엄마가 잡아 줄게. 아빠가 설명한 대로 앞으로 가봐!" 


 "엄마는 수영할 수 있어요?" 


엄마 수영하는 모습을 본 적 없는 아이는 궁금했겠죠. 아이의 물음에 창피했지만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니, 엄마도 수영을 잘하고 싶은데 어렸을 때 물에 빠져서 죽을 뻔했어서 물이 무서웠어. 그런데 그 뒤로 잘하고 싶어서 수영장에도 가고 배우러도 갔는데 어렵더라. 엄마는 물속에서 숨을 참고 발장구는 칠 수 있어. 그런데 팔 돌리기랑 음파는 못해. 물속에서 숨을 못 쉬겠어. 엄마는 그게 무서워서 끝까지 못 배웠거든. 근데 엄마도 이번에 같이 배워보려고. " 


 다엘이가 엄마를 이해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수영은 못해도 잡아 줄 수 있으니 엄마를 믿으라고 했죠. 그렇게 아이는 몇 번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물에 빠졌고, 울면서 수영장 귀퉁이에 서서 다시 시도하기를 겁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떤 마음인지 백번 이해가 됐습니다. 경험이라는 게 가장 큰 공감을 할 수 있게 만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결심을 합니다. 내가 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나도 극복하고 아이도 극복하게 만들어야겠다고요. 남편에게 수영을 알려달라고 하고 다엘이는 엄마가 실패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됩니다. 물에 빠지지는 않지만 호흡이 안 되고 팔 돌리기가 안 돼서 몇 걸음 못 가 계속 중간에 벌떡 일어나 안경을 빼고 얼굴을 닦는 엄마를 지켜봤겠지요. 시간은 좀 걸렸습니다. 그렇게 같이 실패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함께 도전을 했습니다. 


 그 결과 다엘이가 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습득을 하고 먼저 치고 나갔습니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 별이도, 둘째 다엘이도 그렇게 수영을 배웠습니다. 저는요? 저도 결국 해냈습니다. 음파 호흡을 마스터하고 250m 수영장을 한번 갔다 돌아오는 정도까지 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정복하고 싶지만 두려워 넘지 못하는 대상이 있을 때는 그것을 마주할 때마다 그 두려움이 다시 올라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몸이 움직이질 않아 근처도 못 가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 두려움이라는 산은 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데 참 오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작 지점과 목표 달성 지점까지의 간극을 줄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단 맞닥뜨리고 매일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나아가는 거죠. 그렇게 하다 보면 그 간극은 점점 줄어듭니다. 산을 오를 때 출발 지점부터 목표지점까지 가기 위해서는 계속 산을 올라야 하는 것처럼요. 오르다 보면 목표지점에 가까워집니다. 정상을 찍고 내려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후련하고 시원해집니다. 그다음에는 더 높은 산도 오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자유형을 정복하고, 배영과 접영, 평영을 배워 보겠다고 도전하게 되죠. 

무슨 일이든 그런 것 같습니다. 일단 넘고 나면 낮아 보이는 산이 처음에는 높아만 보이고 불가능해 보입니다.  

 세상에 불가능한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없다. 안 할 뿐이다.'라고 생각하면 뭐든 할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무엇을 원하지만 하지도 못한 채 불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여전히 제대로 시작하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유형: 배영, 접영, 평영은 -영으로 끝나는 데 자유형은 자유영이 아닌 이유는 평영, 배영, 접영은 특정방식의 헤엄치기 방식을 지정한 단어이지만, 자유형을 영어 단어 그대로 자유롭게 어떤 영법으로 해도 되는 종목으로 본다. 게다가 수영 관련 단체에서는 자유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단, 국립국어원에서는 자유영, 자유형 (freestyle)로 둘 다 인정하지만 자유형으로 쓰는 게 더 옳은 표기법으로 쓴다.  (출처: 한겨레 신문, 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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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with3mom/223089095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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