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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y 06. 2022

남아공 집으로 처음 이사오던 날

두번째 집으로의 이사. 




2018년 1월 24일 남아공에 발을 디뎠다.

우리 다섯 식구는 캐리어를 끌고 지인의 차를 얻어 탔다. 남아공의 낯선 공기를 마시며 지인 집으로 향했다.

이사할 집도 차도 없는 상황에서 지인 집에 약 3주간 신세를 졌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감사했다.


우여곡절 끝에 3주가 지났고, 차도 구하고 집도 구했다.

자동차 사기당할 뻔해서 보증금 떼인 스토리,

중개인과 만났지만 부동산 주소지엔 아무런 건물이 없어 계약했으면 어쩔 뻔했나 했던 스토리.

남아공에 와서 적응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는 전부 나의 에세이 <삼 남매와 남아공 서바이벌> 책에 기록했다.



지금 부터는 책에 거의 없는 내용이다.


남편과 나는 한국에서 신혼집을 구할 때도 우리 손으로 직접 구한 집이 없었다. 신혼집은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친정엄마가 발품 팔아 월세 집을 알아봐 주었다. 그 집은 남편과 나의 안식처가 되었다.지금 와서 이야기지만 엄마는 내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어린애로 보셨던 같다. 물가에 내놓은 애 마냥 불안하고 걱정됐을거다.

그래서 신혼살림이며 신혼집이며 엄마 손이 안 간 곳이 없었다. 결혼 후 엄마한테 반찬 한 번 해달라는 소리를 안 해서 밤잠 못 이뤘다는 엄마 말을 떠올려 보니 충분히 그럴 법도 했을 거 같다.

그 이후로 남편의 사역지가 바뀔 때마다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다녔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 사택이 있는 곳으로 옮겨 다녔다. 덕분에 사역지를 옮길 때마다 집을 구하러 다녀야 하는 수고는 덜었지만, 내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집을 고르는 안목도 없이 결혼 후 약 8년 가까이 한국에서 살았다. 주시면 주는 대로 그렇게 사는 삶이 내 삶이었다.  깨끗하고 예쁜 집에 인테리어 해놓고 사는 다른 사람 집이 부러웠다. 내 집 마련의 꿈은 그냥 말 그대로 꿈이었다. 가진 게 쥐 뿔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남아공으로 오고 나서는 집과 관련된 모든 문제와 결정 앞에서 스스로 혹은 남편과의 상의하에 하게 됐다.


4년 전 첫 집에 들어가려고 할 때, 최종적으로 2 곳을 놓고 고민을 했었다.집세는 물론이며 위치와 집안 상태를 꼼꼼히 확인하며 결정해야 했지만, 한국에서도 어느 집이 좋은지 결정해 본적도 없는데 낯선 땅에 와서 어느 집이 좋을지 결정하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치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이 맞는다는 인증이라도 하듯, 어쩜 남편과 나는 둘 다 물러터져버린 모습을 어정쩡하게 고민만 하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살 집을 결정하고 들어갔을 때 그 기분.

지금 생각해 보면 '뿌듯' 했다.

여태 집을 사는 것도 아니고 그저 월세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살 집'을 골라서 결정했고, 그 집으로 우리 물건을 들여 보금자리를 새롭게 꾸려나간다는 사실에 마음이 설렜다. 아이 셋과 남편과 나. 다섯 식구가 살 집을 말이다.


"We did it !"


낯선 땅에서 우리가 어려운 일을 해냈단 사실에 스스로 기특하기도 했다. 이사하는 날은 짜장면에 탕수육을 먹어야 되는데, 이곳에서는 지극히 평범했던 중국음식 배달도 할 수 없어 아쉬웠던 기억도 난다. 아쉬운 마음에 그저 입맛만 다시며 다른 음식을 먹었다. 아이들과 함께 둘러앉아 앞으로 우리가 살게 될 그 집에서 그날 밤 함께 두 손 모아 기도하며 낯선 땅에서의 새 출발을 자축했다.


그러나,

살다 보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카펫에서 일어나는 먼지와 길가 집이어서인지 이곳저곳에서 날아든 씨앗이 정원에 뿌리를 내렸다. 비염 환자가 3명인 우리 집에는 불청객이었다. 그 뒤로 봄이나 가을이 되면 재채기 퍼레이드가 시작됐다.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이곳 문화로 이전에 살던 분이 몇 년을 살았던 그 카펫에 신발을 신고 다녔을 거다. 매일 청소기를 돌려도 그 바닥에 있는 흙먼지는 계속 나왔다. 시커먼 개미 떼와 함께. 그냥 개미와 함께 동거를 했을 정도다.

이후, 비염이 없던 나머지 2명은 불행하게도 비염 환자가 됐다. 재채기 퍼레이드는 5명이 돌아가며 돌림노래하듯 지속됐다.


공기 좋은 남아공에서 와서 비염에 걸렸다고요? 난 없어졌는데??
말도 안 돼. 이상하다~



지인들에게 비염이 없었는데 생겼다고 하니 의아해했다. 내가 의학적인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여기 와서 생긴 게 확실했다. 아이들 소음에 예민한 이웃, 집 먼지와 꽃, 잡초 등의 알레르기 유발 원인들 탓에 이사하고 싶은 마음이 늘 마음에 있었다. 그렇게 지지고 볶으며 그저 몸을 누이고 먹고 쉬고 자고 씻고 단란하게 생활할 수 있는 집이 있음에 감사하며 4년을 살았다.


올 초, 지금 집으로 이사를 했다. 무려 10일간 셀프 이사를 진행했다.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지금 집은 이곳의 인터넷 사이트와 앱으로 수 십 개의 집을 본 후, 마음에 집을 찾아다니며 발품 팔아 몇 개월에 걸쳐 본 결과 우리와 만나게 됐다. 그것도 남편과 아이들의 의견을 모두 받아 추리고 추리다 결국 이전 집에서 나와야 하는 날짜가 임박해서 구하게 됐다. 바닥도 카펫이 아닌 타일 바닥이며, 관리해야 하는 정원도 정말 작다. (남아공은 거의 다 집마다 크고 작은 정원이 있다.) 이전 집은 단층이었는데 지금 집은 복층이다.


집 뒤에는 공동 정원이 있어서 아이들이 나가서 뛰어놀 수도 있다. 학교와 좀 더 가까워졌다. 그동안 기도하며 걱정하고 염려했던 부분들이 해결된 환경이어서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다. 집 안으로 볕이 잘 안 드는 것과 월세가 비싼 것만 빼면 말이다.


뭐든 100프로 만족할 수 없는 게 삶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산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 천지다.

하다못해 이 휴지를 살까 저 휴지를 살까를고민하는 세상 아닌가.

낯선 환경에서 내 의지대로 결정하는 일

그 환경에서 적응하는 일

그렇게 하나 둘 경험하면서 시행착오를 겪고성장하는 일

그래서 다음번에는 이번 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삶.

그렇게 살면서 성장해 나가나 보다.

-최주선 작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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