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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엠립의 느긋한 하루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by 도인

씨엠립에서 나의 하루는 대략 이렇다.


매일 푹 잘 자고 일어난다. 7시 30분쯤이면 눈이 떠진다. 너무 더워지기 전에 천천히 몸을 일으켜 동네를 한 바퀴 걷는다.



오늘은 강변을 걸어본다. 동남아 새해인 크메르 뉴이어가 곧이라 강변은 축제 준비가 한창이다. 쓰레기와 나뭇잎을 정리하는 공공 근로 아주머니들, 비계(스캐폴딩)을 세우는 아저씨들, 강에 띄워진 다양한 색상의 배를 느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크메르 뉴이어: 크메르 뉴이어는 캄보디아의 가장 큰 명절로, 매년 4월 중순(올해 4월 14~16일), 한 해의 끝과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며 사흘 동안 이어진다. 가족과 조상을 기리고, 집안을 정돈하며, 서로에게 물을 뿌리며 복을 나누는 이 명절은 조용한 기도와 흥겨운 거리 축제가 공존하는 시간이다.


캄보디아어로 적힌 Happy New Year


현지인들은 이미 분주하다. 거리 한편에선 캄보디아 아침식사인 놈반촉 쌀국수나 돼지고기 계란덮밥인 바이삿쯔룩을 먹는 사람들로 붐빈다. 오토바이에 가족 셋이 올라타 등교와 출근길을 서두르는 모습들. 이곳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좌) 놈반촉-커리 국수 우) 바이삿쯔룩-돼지고기 계란 덮밥
왓보 초등학교 등굣길


적당히 걷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가 보이면 망설임 없이 들어간다. 커피 한 잔 시켜두고, 창밖으로 스쳐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그러다 멍도 좀 때리고, 블로그도 쓴다. 맛있는 빵 냄새와 향긋한 커피 향이 가득한 이 시간은 언제나 만족스럽다. 다른 사람이 정해둔 스케줄에 따라 정신없이 살다가 이제는 스스로가 정한 시간에 따라 산다. 호젓하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지금이 참 좋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조급해지면 지금의 이순간을 떠올리며 아다지오 템포로 다시 내 속도를 조절한다. 천천히. 급할 필요 없어.



해가 조금만 올라가면 금세 더워진다. 그러면 후다닥 숙소로 돌아와 수영장에 몸을 푹 담근다. 한 시간쯤 찬물 속에서 식히다 보면 온몸에 닭살이 돋아온다. 요즘엔 이 시간을 활용해서 프리다이빙 스태틱 훈련을 해볼까 싶기도 하다. 아무 생각 없이 물속에 머무는 그 느낌, 다시 느껴보고 싶다. 5일마다 숙소를 옮기기 때문에 새로운 수영장을 경험해 보는 건 또 다른 재미이다.



몸이 충분히 식었으면 나와서 선베드에 눕는다. 다시 몸을 덥히는 시간. 나는 몸이 금세 더워지기에 오래 선베드에 있을 순 없다. 수영장에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하며 책을 읽거나 블로그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낸다. 어떤 날은 그냥 누워서 햇살이 비쳐 조금은 투명해진 나뭇잎을 하염없이 본다. H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랬나?



점심은 보통 1시쯤 먹는다. 미리 검색해 둔 맛집을 찾아 천천히 걸어간다. 사실 나는 달걀에 닭가슴살, 그리고 소고기 스테이크만 주면 하루 세 끼도 문제없는데, H는 매번 새로운 식당을 가고 싶어 한다. 로컬 식당부터 여행자 식당까지 다양하다. 매일 메뉴 고르면서 한바탕 실랑이. 그래도 새로운 곳에 찾아가면 또 다른 새로움에 기분이 좋다. 매번 새로운 것을 찾아주는 H에 감사를.



점심을 먹고 나면 근처 에어컨이 빵빵한 카페에 들어가 책을 읽거나 소설을 쓴다.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오후 4시. 체육관에 가서 두어 시간 운동을 한다. 바디빌딩은 내가 계속 이어가고 싶은 것. 해외 체류를 하더라도 체육관은 어디든 있으니 다행이다. 쇠를 만지고 땀을 쫙 빼고 나면 개운한 기분이 들고 에너지가 넘친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저녁 먹으러 슬슬 나선다. H는 펍의 나라에서 와서 그런지 맥주를 참 좋아한다.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소금과 크메르 양념이 가미 된 땅콩 두어알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동네를 한 바퀴 천천히 산책한다. 식사도 소화도 여유롭게. 그러다 숙소로 돌아와 각자 책을 읽거나 생각에 잠기다가, 어느새 꿈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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